brunch

매거진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상갑 Dec 26. 2021

#2 나이 50에 샐러리맨이 되다

2021년을 돌아보며 감사하고 반성하기  

2021년을 회고하는 글도 하루에 몰아쓰면 숙제같고 힘들테니 오늘은 하나만 더 쓸 생각이다.


나이를 구체적으로 밝힐 생각은 없었는데...

뭐 어떠랴. 나만 나이 먹는 것도 아니고 누구도 이 나이가 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을테니

떳떳하고 자신있게 나이를 밝히며 내 느낌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내 글에서 종종 밝혔지만, 나의 본업은 IT컨설팅을 하는 컨설턴트다(이젠 '였다'라고 써야겠네).

2021년을 기준으로 볼때,

(2001년에 전업을 했으니) 경력 21년차였고..(2008년에 프리를 선언했으니) 프리 14년차였다.

내 스스로 '역마살이 쌔다'라고 얘기할 정도로 이 직업을 택한 이후에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고객사의 사무실에 프로젝트룸을 구성하고 수행하는 프로젝트의 특성상 우리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고객사로 출근을 한다. 2003년 결혼할 즈음부터 해외프로젝트에 발을 담그기(여기에도 발담그는 표현을 쓰게 되는구나) 시작하면서 부터 난 해외로도 참 많이 돌아다녔다.

미국,멕시고,중국,베트남,네덜란드,벨기에,헝가리 등.. 짧게는 3개월 길게는 볼모로 남은 연장기간까지 해서 햇수로 3년을 체류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해외경험을 얘기하면 다들 '좋았겠다' 라고들 한다. 역시 본인이 해보지 않아서 상상만으로 부러워 하는 것이다. 해외출장은 1~2주가 베스트이다. 일단 그 기간을 넘은 장기출장으로 가게되면 이건 출장이 아니라 체류, 즉 현지생활로 바뀐다. 보통의 해외프로젝트가 평균 10개월정도 한다. 취업비자가 아닌 관광비자로 (불법)출장가며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때문에 현지에서 3개월을 체류하고  비자 갱신을 위해서 Fly-Back하여 1주일만에 다시 해외로 나가는 스케줄을 반복하게 된다. 출장(비지니스)이지만 비행기는 가장 저렴한 이코노미 클라스를 탄다(고객사 비용이기 때문에), 숙소는 장기 체류자에는 기간대비 가성비를 고려한 장기숙박(민박, 오피스텔 렌트)이 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여행가는 것과 비슷하게라도 상상하면 안된다. 큰 이민가방에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곳에 깜깜한 밤에 도착해서(보통 싼 비행기를 택하다보니 현지에 한밤 중에 내리는 경우가 많다) 짐을 풀고 (시차적응은 전혀 고려없이) 바로 다음날 아침부터 일을 시작하는 하드코어 스케줄을 견디며 일한다. (아이쿠 이 얘기를 이토록 길게 할 것이 아니었는데)


올해 2월에 집 근처(걸어서 25분 거리)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게다가 10시출근-7시퇴근 이다. 야근을 해도 집에 금방 올 수 있고, 아침 먹고 커피까지 마셔도 아직 출근시간이 남는다. 그 여유로움이 주는 만족감이 매우 컸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어찌 출/퇴근의 여유만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을까.

https://brunch.co.kr/@chinkap/127  이 글을 참고해주시면..


프로젝트에 적응하고나니, 고객사(카카오)가 참 맘에 들었다.

젊은 조직 그리고 스마트한 직원들.. 회사의 부유함으로 부터 오는 것일까 싶게 피마르게 함이 적고 내가 컨설팅하는 내용들이 매우 잘 받아들여 졌다. 

이러한 일터가 집 근처에 있다는 것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고민하게 된다. 여기에 오래 남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둘러보니 길이 보였다.

내가 하는 시스템 SAP는 구축 후에 유지보수 인력(조직)이 필요하다. 이 공동체(그룹사라는 용어대신 우리는 공동체 라는 용어를 쓴다)는 SAP 시스템을 처음 사용하기 때문에 SAP를 유지보수할 조직도 새롭게 꾸려지고 있었다. 기회다!

그러나, 올해 내 나이 50이다. SAP 경력 21년차는 Advantage 요소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역시 조직 입장에서 보면 나이 50은 감점요인이 될꺼 같았다. 플러스(+), 마이너스(-)를 합쳐봐서 뭐가 더 클지는 부딪쳐 봐야하지 않을까? 몇가지 탐색전을 끝내고, 난 입사지원서를 제출했다.

프로젝트 수행 중인 프리랜서(2021년 12월까지 계약되어 있는)가 시스템을 인수할 유지보수 고객사로 입사를 하게되는 것도 매우 드문일이다. 아니 어쩌면 계약중도해지 등을 이유삼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부딪쳐봐야 하는거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으로 도전했다. 그래야 후회가 없을꺼 같았다.


서류전형-면접-그리고 길었던 연봉협상 의 과정을 거쳐서 회사로 부터 합격(입사허락)을 받았다.

큰 산을 하나 넘었는데, 또 하나의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프로젝트에서 중도 오프를 해야하는 문제다.

내 이익을 위해서 내가 약속을 져버리고 떠나는 것이니, 그져 낮은 자세로 사과하고 허락을 구할 생각이었다.

그 방법밖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속해 있던 팀의 리더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이러이러 하게 되어서 프로젝트 수행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당황하고 놀란 표정이었지만 "헉! 알겠습니다. PMO(관리조직)에 보고드리겠습니다" 라는 짧은 답변이 있었다. '뭐야 이게 다야?' 나도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프로젝트 최고 리더인 담당 임원이 이 소식을 듣고 내가 입사허락을 받은 회사의 담당자를 찾아가 "이 사람이 이 회사로 가게되면 가서 갑질을 할 것이니 우리는 보낼 수 없다" 라는 막말을 하게 된다. 반나절사이에 참 많은 일이 생겼다. 입사할 회사에서는 "불편하게 된 일은 없는지, 무엇을 도와줘야 해결이 될런지" 등으로 여러번의 연락이 온다. 참 감사했다. 그리고 난 깊게 고민했다. 어떻게 결판을 낼것인가.

그 다음날 '갑질' 발언의 당사자인 임원과 만나서 얘기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이 프로젝트 수행사는 내가 2003년에 입사해서 약 5년정도 일했던 회사다. 사번으로 따져봐도 나이로 따져봐도 내가 이 임원보다 선배다. 하지만 수행사의 임원이니 그 예우를 갖추는 것이 예의기에 언제나 존중하며 업무를 했던 사이였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카페에서 만나니, 본인의 얘기부터 늘어 놓았다. 한 20분정도 들어줬다. "얘기 다하셨습니까? 그럼 이제 제가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이게 지금 뭐하는 짓입니까??!!" 그렇게 시작하여 나도 한 20분 쏟아부쳤다.

그리고.. "사과 드리겠습니다"는 답을 들었다. (자세한 얘기는 그냥 에피소드로 묻는다)

말로서는 "하루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로 마무리를 했었지만 이미 마음은 벌써 떠나있었다.


욕심이 나는 자리였지만 옮겨가기 불가능해보였던 곳.. 그러나 한발 한발 한계단 한계단씩 딛고 올라보니

난 오늘 지금의 이 자리에 앉아있다.

2008년 삼일회계법인을 퇴사한 이후에 정직원으로 무려 13년만의 재입사다.

삼성전자의 SDS같은 역할을 하는, 카카오의 Dktechin 이라는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만약 그때 주저했다면, 이 프로젝트나 제대로 마무리 짓고 생각해보자고 했었더라면..

이 자리는 다른 또 누군가에의해 차지되었지 않았을까?


판교테크노밸리로 출근하는 많은 IT인력들이 아침이면 판교역 출구로 나와서 테크노밸리까지 걸어하는 길이 있다. 여러해 전에(아마 프로젝트를 끝내고 잠시 몇일 쉬는 기간이었을꺼다), 이 출근 행렬들을 보면서 '아 부럽네..'하고 지켜보던 때가 기억이 났다. 그리고 난 요즘 그 행렬에 같이 출근을 하고 있다.


고민을 시작하고 최종 사원증을 목게 걸게 되기까지 4개월 정도 걸린거 같다.

지나고나서 이 과정을 친한 지인들한테 풀어놔보니 '나같으면 못했을꺼다' 라는 얘기들이 많았다.

내가 그런 일을 저지르고 이뤄낸거구나 싶었다.

이제 입사한지 5개월차이고, 2022년 1월이면 입사 2년차가 된다.

조직의 일원으로, 내 고정된 자리가 있고 꾸며놓을 책상이 있고 가끔 신문기사에 나오는 최고급 허먼밀러 의자에 앉아서 일한다. 겪어낸 일이 꿈만 같다.

2022년에는 더 좋은 일들이 많기를 기도한다.


써놓고 보니 #1 공인중개사개업 에서는 '~합니다.입니다' 라고 썼었는데..
#2 나이 50에 샐러리맨이 되다 에서는 '~다, 이었다' 라고 일기처럼 써버렸네.  어쩔 ㅋ



매거진의 이전글 #1 공인중개사 개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