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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Jun 06. 2020

[지리산인] 민들레 진 후에

지리산인 2020년 여름호


민들레 피는 계절, 나는 산내에 왔다. 들레가 산내에 온 것도 같은 시기였다. 그래서 이름이 들레가 되었다. 들레를 처음 만난 곳은 실상사였다. 사람을 졸졸 쫓아다녔지만, 다가가면 줄행랑을 쳐버리는 겁쟁이 백구였다. 털은 하얗지만 때가 꼬질꼬질했고, 사납지는 않았지만 다리가 튼실한 것이 떠돌이 생활을 오래한 것 같았다. 왜 이렇게 사람만 보면 꼬리를 치며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맞출까. 들레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했다.


나는 인드라망 공동체의 생명평화대학에 다닌다. 나와 같은 신입생들과도 들레는 금세 친구가 됐다. 우리가 밥을 준 것도 아닌데, 들레는 우리를 잘 따랐다. 언덕배기에 있는 대학 숙소까지 따라오곤 했는데, 숨도 안 고르고 폴짝폴짝 노루처럼 뛰어오르며 우리를 앞질러 갔다. 들레 뒷모습을 보면서 헉헉거리며 언덕을 오르자면, 꼭 내가 들레 집에 초대받는 기분이었다. 그 드넓은 언덕을 주인처럼 자유롭게 쏘다녔으니까.


신입생들과 들레.


들레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실상사에서는 들레를 내쫓기로 했다. 지금껏 모든 들개에게도 그래왔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점점 들개 친구들을 데리고 올 거라고 했다. 또 들레가 사람을 공격할 수 있다고 했다. 실상사는 아이들도 많이 오기 때문에 특히 위험했다. 들레는 사람 신발을 물어가는 고약한 버릇까지 있었다. 들레는 그게 놀자는 의미였는데, 사람들은 반기지 않는 방식이었다. 들레가 해우소가 아닌 곳에서 볼일을 본다는 점도 이유가 됐다.


실상사 사람들은 들레를 만나면 손뼉을 치거나 훠이훠이 위협을 하며 내쫓기 시작했다. 갈 곳 없는 들레는 대학 숙소에 더 자주 놀러 오게 됐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대학 숙소 사람들도 들레를 내쫓기로 했다. 절과 대학만이 아니었다. 어느 농장이나 과수원 주인도 들개가 밭을 헤집고 다니는 걸 원치 않았다. 닭을 소유한 농부들은 더 강경했다. 들레는 위험한 시멘트 찻길 외에는 어느 곳에서도 왕래할 것을 ‘허락’받지 못했다. 동네의 개들이 왜 다리를 절뚝이곤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들레를 내쫓는 것이 이상했다. 들레는 사람을 좋아했다. 사람들을 보면 반갑게 인사했고, 절에 매일 눈도장을 찍었다. 나는 들레가 우리 공동체에 문을 두드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들레는 이웃으로 받아달라고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한 셈이었다. 공동체에서 사람을 내쫓지 않는 것처럼, 우리에게 내쫓을 권리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다. 개도 당연히 산내의 어느 땅이든 오갈 수 있는 생명이었다.


개가 친구들을 데려오지 말라는 말, 해우소에서 볼일을 보라는 말, 신발을 물지 말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내쫓는 것은 차별이었다. 공동체 규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내쫓는다면, 규칙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유아나 지적장애인들도 내쫓을 셈인가? 개가 사람을 공격할 수 있어서 내쫓는다면, 사람도 사람을 공격할 수 있는데 왜 내쫓지 않는가? 개에 물려 죽는 사람보다, 사람에게 죽임당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텐데. 들레는 개라서 차별받았다. 우리와 다른 종이기 때문에 차별받았다.


들레와 친구였던 신입생들은 인드라망 공동체에 대화를 시도했다. 먼저 대학 숙소 식구들이 이야기를 나눴다. 논의주제는 ‘들레는 어디에 있어야 하나?’였다. 들레의 보호자를 찾아주자거나 유기견 보호소에 보내자는 의견이 있었다. 산으로 들로 즐겁게 쏘다니는 들레를 갇힌 장소로 보내는 건 납치나 다름없다는 반박이 따랐다. 대부분의 시골 개들은 무료한 시멘트 바닥에서 60센티 남짓한 목줄에 묶여 지낸다. 유기견 보호소도 열악한 곳에서 갇혀 살다가 안락사되기 일쑤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떠돌이로 살게 놔두는 건 위험했다. 들레는 음식물 퇴비간이나 똥간에서 배를 채우곤 했다. 들레가 오가는 찻길은 로드킬이 잦았다. 다달이 개장수가 마을을 돌 때 잡혀갈 시나리오도 있었다. 그럼 우리가 키워야 하나? 들레를 책임질 수 없으니 키울 수 없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그럼 키우지 않으면 우린 책임에 면죄부를 받을 수 있나? 애초에 이 작은 개 한 명이 이토록 안전하게 살 곳이 없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개의 먹이를 독점하고, 차로 개를 죽이고, 개를 물건처럼 사고파는 자들이 결국 인간이지 않은가?


해결책을 내지 못한 채 회의시간이 끝이 났다. 논의는 게을러져서 이후 대학 내에서도, 실상사에서도 진전되지 않았다. 그사이 한 주민이 떠돌이 백구를 잡아가라고 신고를 했다. 개장수 트럭이 오가는 것을 보고 신입생 친구들은 급히 들레에게 스카프를 매어 주었다. 보호자가 있는 개로 보이기 위함이었다. 그날 저녁, 말괄량이 들레는 하루도 못가 스카프를 잃어버린 채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래도 개장수 트럭은 피한 모양이었다.


개장수 트럭과 스카프 맨 들레.


그즈음 산내에 폭풍 같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어찌나 거센지 양철지붕쯤은 그냥 날려버릴 기세였다. 강풍은 닷새가 지나도록 계속됐다. 들레는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강풍이 끝날 때까지 어디에 몸을 숨기고 있는지, 산내가 질려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 신입생들은 들레를 위한 현수막을 만들고 있었다. 개 로드킬을 방지하기 위해 속도를 줄여달라는 현수막이었다. 회의의 결론 중 확실한 것은 인간이 비인간동물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위해 노력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세월호 참사 때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때도 나는 운 좋게 살아남았다. 나는 언제든 그들이 될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들레를 생각하면, 나는 정말이지 운 좋게 인간으로 태어났다. 우리 사는 곳은 인간이 아닌 생명에게 얼마나 가차 없는 환경인가? 내가 비인간동물로서 한 마을에 문을 두드렸을 때, 누구도 나를 환대하지 않고 나를 죽일 트럭에 몰아넣는 곳.


개 로드킬 방지 현수막.


바람이 그치고 우린 현수막을 걸었다. 들레에게 새로 매어 줄 스카프도 마련했다. 그러나 들레는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들레가 사라진 후에도 개장수 트럭은 여러 차례 마을을 오갔다. 들레는 트럭에 잡혀갔을까? 다른 마을에서 살고 있을까? 들개를 환영하는 마을이 있을까? 들레는 우리를 원망할까? 우린 또 다른 들레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수많은 질문을 남긴 채, 민들레 피는 계절이 지나갔다.


- 지리산인 여름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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