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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May 26. 2021

[전라도닷컴] 떠난 자들을 위한 모닥불

전라도닷컴 7월호



우리는 모두 티피 안으로 비를 피했다. 바짓가랑이가 흥건했다. 나무토막을 의자삼아 엉덩이를 걸치고, 젖은 양말과 신발을 모닥불 근처에 널었다. 아영이 마른 장작을 넣고 불을 피웠다. 아영은 불을 좋아한다. 불씨가 커지면, 장작 근처에 자리를 잡고 계속 뗄감들을 뒤집어주는 역할은 늘 아영이다. 검은 판초를 입고 긴 나무 막대기로 모닥불을 젓는 아영을 보면 그 모습이 꼭 그림처럼 잘 어울렸다. 아영이 쉽게 매료되곤 하는 신비로운 신화들 속에 나오는 그림 같았다. 불꽃이 붉은 스프처럼 출렁거리고, 노란 불티들이 별가루처럼 흩어지곤 했다. 신기할만큼 아영은 친구가 많다. 지금까지 방랑단에 놀러오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아영의 친구였다. 아영이 먼저 부르지 않아도, 다들 아영의 근황을 묻고 찾아와주는 이들이었다. 아영은 언제나 그들을 환대할 줄 알았다. 하도 신기해서 물었다. 어쩜 그렇게 친구가 많아? 아영은 그저 멋쩍게 웃었다. 아영이 불과 닮아서 그런걸까. 뭐랄까, 불은 사람들을 모여들게 하는 힘이 있으니까.



떠난 자

지난해 여름, 구례는 물로 뒤덮였다. 아침엔 서서히 발목까지 물이 차올랐는데, 고작 삼십여분 사이에 허리께를 넘기더니, 곧이어 지붕이 섬처럼 보일만큼 물이 차올랐다고 했다. 섬진강댐 방류를 지연하다 불시에 해버린 것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사람들은 하룻밤 새에 삶터를 잃고 임시거처를 떠돌아야 했다. 재산상 피해도 막대했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는 것을 힘겨워했다. 주유소 기름마저 유출되어 모든 전기를 차단하고 읍내가 꼭 전쟁터 같았다고 했다. 다행히 사람들은 겨우 대피를 해서 한 명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 그렇지만 길거리 곳곳에서는 시체 썩는 냄새가 가득했다고 한다.



비인간동물의 냄새였다. 하필 축사가 많은 마을이 침수되어 오백여 마리의 소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축사에 갇힌 채로 몸부림치다가 지붕을 뚫거나, 물살에 밀려 전봇대에 목이 걸린 소들도 있었다. 무너진 건물에 깔려 죽기도 했고, 혀가 파랗게 빠져나온 채 익사한 소들도 있었다. 추석을 앞둔 터라 소들을 살찌우고 있었고, 몸집이 비대한 소들은 헤엄을 치기가 특히 어려웠다. 재생산을 위해 연중 임신 중인 소들이 많은데, 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비쩍 마른 소들만 살아남았다고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겨우 목숨을 건진 소들은 며칠을 앓다가 결국 죽은 경우가 많았다. 몸을 회복하지 못하는 소들은 도축장으로 보내졌다. 생존한 소들은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출산을 하지 못했다. 태어난 송아지들도 몸집이 작다고 했다. 길거리에 널린 소 시체들을 치울 때, 포크레인에 찍혀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고 했다. 방랑단이 올해 수해지를 방문했을 때 집집마다 짧은 목줄에 매인 개들이 정말 많았다. 지난 여름에도 있던 그 개들일까. 그 물난리에 개들 목줄을 풀어줄 수 있었을까. 쥐나 길고양이들은 피할 곳이 있었을까. 재산이 아닌 동물들은 몇 마리나 죽었는지 기사를 찾아볼 수도 없었다. "많이 죽었을 거에요."하는 서늘한 추측만 들었다.


믿거나 말거나, 수해 이후 떠돌이 개가 많아졌다고 한다. 인적 드문 공원만 골라서 쉬는 모습이 몇 차례 목격됐다고. 개들이 사람 곁을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왜냐는 질문은 굳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그들이었어도 그렇게 했을 것 같았다. 기후위기로 괴하게 내리던 장마, 상업용수를 벌기 위해 지연된 댐방류, 재난상황에서 외면당한 동물들, 공장식으로 길러지는 '고기들'. 비인간동물의 시선에서, 인간동물들이 사는 방식은 어떠한가? "사람 곁을 떠나기 시작했다"가 대답이라 할 수 있을까.



모여든 자들

구례엔 지리산 게더링이 있다. 생태적인 숲살이를 고민하는 캠핑 모임이다. 읍내에서 30분 정도 걸어들어가는 조그만 숲 속에 자리하고 있다. 풀과 싸우지 않으며 농사를 짓고, 똥과 오줌을 모아 밭으로 순환시킨다. 나무로 불을 떼서 요리를 해 먹고, 둥글게 모여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곳. 지리산 게더링 친구들은 세 자매 농법에 대해 말해주었다. 옥수수와 콩과 호박을 함께 기르는 것이다. 옥수수의 곧고 단단한 줄기에 콩이 기대어 자라고, 콩은 옥수수에게 풍부한 질소를 공급해준다. 호박은 땅을 기면서 자라므로, 콩과 옥수수 외의 다른 작물들이 자라는 것을 막아준다. 현재의 산업농은 하나의 작물 외의 모든 식물을 적으로 본다. 다른 식물에게 양분을 빼앗길까봐 플라스틱 비닐로 땅 전체를 멀칭한다. 그러나 실제 풀들은 서로 돕는 경우가 많다. 토끼풀들이 느티나무의 햇살을 탐내지 않듯이 말이다. 어떤 풀은 병충해를 막아주고, 어떤 풀은 필요한 양분을 내뿜는다. 숲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공간. 어느 한쪽이 기울어지면 모두가 한 걸음씩 균형을 맞춰야 하는 그물같은 공간. 숲에서 독립적이고 단일한 존재는 하나도 없었다.



지리산 게더링 친구들은 이 숲을 공유지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땅을 개인이 소유하려면, 그것을 조각내야 한다. 그러나 모두가 공유한다면? 현재의 우리들 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 태어날 이들과, 인간 뿐 아니라 인간과 연결된 온 존재들을 아우르는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된다면? 그때 모두는 땅에서 지속가능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다같이 고민하게 될 것이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하면서, 누구에게나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 공간의 여러 규칙 중 하나는 "종평등"이었다. 지리산 게더링 초대장에는 '공장식 축산의 결과물'은 가져오지 말아달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방랑하면서 가장 곤란한 때는 역시 먹을 때이다. 나는 비건채식을 실천하는데, 동물성분이 들어간 라면이나 빵을 탁발 받으면 고달파진다. 방랑단들이 각각 탁발해온 음식들을 모아 한 상을 차려두어도, 비건인 반찬만 골라 보면 한 두첩이 고작일 때가 많다. 잉여음식을 먹겠다고 시작한 걸식인데, 누군가가 방랑단을 위해 고기를 소비했을 때는 특히 마음이 아팠다. 지리산 게더링에서는 달랐다. 평소에 식사 전에 하던 의례절차들이 생략됐다. '이 부침개에 달걀이 들어갔나요?'하는 질문 같은 것들. 모두를 위한 밥상이 매끼마다 차려졌다.



이번 기억산책 장소는 이 숲으로 정했다. 기억산책에 앞서, 방랑단원 다같이 대나무를 가지고 인디언 티피를 세워두었다. 나뭇가지들이 드리운 좁은 흙길을 따라 걸으면, 저 멀리 희고 거대한 티피가 보였다. 티피는 스무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앉을 수 있다. 해가 뜨거운 날에는 그늘이 되어주고, 흐린 날에는 비와 바람을 피할 수도 있다. 티피 한 가운데에는 구덩이를 파서 불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이 일반 텐트와는 다른 티피만의 매력이다. 기억산책 날에도 호우예보가 있었기 때문에 장작들을 미리 티피 안에 넣어두었다. 그날은 빗방울이 공중비행하듯 포슬포슬 내리기도 하다가, 와르르 양동이로 붓듯이 쏟아지기도 했다. 숲까지 걸어오는 30분 사이에 옷이 홀딱 젖어버렸다. 가운데에 불을 피우고, 사람들은 모두 둥글게 둘러앉았다. 비가 와서 그런지 이번 기억산책은 참여자가 적었다. 얼굴들이 금세 익숙해졌다. 티피 안은 체온과 불로 훈훈해졌다. 모닥불 앞에서 젖은 양말들이 미지근하게 데워지고, 삶은 감자가 껍질을 터뜨리며 부옇게 익어갔다.



숲과 나와의 관계는 어떤가요? 나는 질문을 던졌다. 어떤 인연으로 우리가 이렇게 숲에 모인 것인지 궁금했다. 사람들은 급히 대답하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을 빗소리가 소곤소곤 채웠다. 그때 말없이 불만 바라보던 이들이, 흥미롭게도 그날 이후 뒤늦은 대답을 주었다. 나무내의 고향은 섬이라고 했다. 섬에서 뛰어놀던 그 시절보다 충만한 때는 없었다고 했다. 온 세상이 놀이터고 친구였다고. 지금 당신의 정서는 모두 그 시절로부터 왔다고 했다. 세영은 선물같은 서신으로 답을 보냈다. 아이가 급할 때 엄마를 찾듯이, 너무 힘들어서 바닥이다 싶을 때 찾은 것이 숲이었다고 했다. 숲의 넓은 가슴 안에서 숨을 다시 쉴 수 있었고, 여전히 진한 흙냄새와 물비린내를 그리워한다는 말로 마무리되는 글. 기억산책이 끝나고도 이들이 이 질문을 곱씹게 만든 건 무엇이었을까. 숲에서는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했다. 모두가 몸과 마음의 허기를 채울 수 있었다. 종평등은 숲의 법칙이었다. 나는 내가 곱씹던 것들을 떠올렸다. 작년 수해의 현장이 꼭 영화 <타이타닉> 장면 같았다. 1등석객들이 빠져나와 구조될 때까지, 물이 차오르는 아래층 객실에 갇혀있던 3등석객들. 그들은 평등하지 않았다. 인간과 비인간동물이 재난상황에서 평등하게 대우받지 못한 것처럼. 정작 우리는 숲에서 그런 대우를 배운 적이 없었다.


떠난 자들이 다시 모이려면

지난해 전례없이 기나긴 장마가 이어졌다. 북극이 따뜻해져서 장마전선이 흘러갈 수 없었다는 이야기. 폭우로 인한 피해는 구례만의 일이 아니었다. 전국적으로 몇 천 여명의 이재민이 생겨났고, 셀 수 없는 홍수와 산사태가 발생했다. 축산업계는 특히나 치명타를 피할 수 없었다.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라는 해시태그 운동도 일어났다. 기후위기로 인한 예측 불가함 속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이들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존재들이었다. 인간들이 숲을 조각내서 소유하지 않았다면, 동물을 철장에 가두거나 목줄로 매어두지 않았다면, 그들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존재로 봐주었다면, 그렇게 많은 생명이 죽었을까? 떠난 자들을 다시 모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 따뜻한 온기와, 기분 좋은 습도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가 있는 모닥불로 모인 것처럼. 이 작은 숲이라도 '모두'에게 따뜻하고 배부른 곳이 될 수 있다면! 저녁까지 무거운 비구름은 떠날 줄 몰랐다. 해가 질수록 티피 안의 불꽃이 밝아졌다. 아영이 불 가까이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었다. 둘러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주홍빛으로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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