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판 구례답사를 다녀와서
괜히 이름을 ‘칩코’로 지었다. 칩코로 불린지 어언 5년차인데, 사실 1년차부터 후회를 반복해왔다. 정확히는 내 이름의 뜻을 물어볼 적마다 후회했다. 인도의 에코페미니즘 운동인 ‘칩코운동’이 있다. 숲에 댐이 건설되려 하자, 숲에 의존하며 살던 마을의 여성들이 나무를 끌어안고 지켜낸 운동이다. 칩코는 ‘끌어안는다’는 뜻의 힌두어라고 한다. 인터넷에 ‘칩코운동’을 검색하면 심금을 울리는 장면이 나온다. 당산나무에 정성껏 금줄을 매단 양, 여성들이 손을 잡고 나이든 나무를 둘러싼 사진들. 이 장면에 반해 분수를 모르고 이름을 덜컥 정해버렸다.
아무래도 이름이 너무 크다 싶다. 내 생각에 난 크게 될 인물은 아닌 것 같다. 하도 운동을 하러다니니, 한때 엄마는 내가 정치판에 뛰어들까 걱정하셨다. 그때 큰언니는 “쟤는 멘탈이 약해서 안돼”라고 툭 뱉었다. 순간 욱해서 반박하고 싶었으나, 속으로는 나와 그다지 대화도 많지 않은 큰언니의 예리한 통찰력에 눈이 휘둥그레 했다. 맞는 말이었다. ‘존경받는 큰 인물이 되기’란 줘도 마다할 만큼 싫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차라리 산에 사는 꾀죄죄한 은둔자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 회의가 늦어진 저녁, 사포마을 주민 두 분이 사무실을 찾아오셨다. 사포마을은 지리산 골프장 예정지 바로 앞에 놓인, 고작 60여명의 주민이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골프장 이슈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근래 구례 곳곳엔 수상한 현수막이 우후죽순 걸렸다. ‘온천골프장 협약을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문구도 디자인도 똑같지만, 어디 마을 발전협의회, 어디 골프장협회, 어디 마을청년회 등등 현수막을 설치한 단체만 달랐다. 무려 400개의 단체가 동시다발적으로 쌍수를 들고 골프장을 환영한 기이한 일이었다. 군에서 현수막은 이미 만들어놓고, 각 단체에서 돈 내고 찾아가라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주민 두 분은 서로 모르는 분이라고 하셨다. 환경운동을 하던 분들도 아니셨다. 주민께서는 눈물을 지으시며 마을 뒤편의 나무들이 너무도 비참하게 잘려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주민께서는 그곳이 매일 자신의 반려견과 다니던 산책길이었는데, 원시림과 같다고 느낄 정도로 자연스러운 숲이었다고 했다. 공사하시는 인부에게 나무를 왜 이렇게 베느냐고 여쭈니 ‘재선충 방제’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병에 걸렸다는 소나무만 베는 게 아니라 모든 풀과 나무를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그들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다른 주민을 찾다가 서로를 알게 되셨다고 했다.
회의를 마친 그 주말에 나도 벌목지를 방문했다. 벌목지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만 벤 것이 아니고, 풀도 밀어버렸는데 완전히 운동장처럼 흙만 남은 꼴이었다. 벌목된 구간은 한 장소에서 확인할 수 없을 만큼 넓었다. 허허벌판이 된 벌목지는 아찔하게 깎아지른 절벽을 지나 산 능선 반대쪽까지, 그리고 그 반대쪽의 반대쪽까지 이어졌다. 풀뿌리가 없어 밟으면 발이 푹푹 꺼지는 벌목지를, 너무 넓어서 다 걸어서 갈 수도 없는 땅을 허우적대다보니 속이 메스꺼웠다. 벌목지와 벌목을 겨우 면한 숲의 경계에 서면, 그 경계를 따라 새소리의 침묵과 소란이 교차했다. 그 경계의 나무들은 포크레인에 스쳤는지 팔이 하나씩 부러졌고, 풀잎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심장이 몹시 빨리 뛰었다. 발표하기 직전처럼 불안하기도 하고, 계곡에서 발이 닿지 않을 때처럼 몸이 경직되기도 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심장이 쪼그라들어서 주름이 자글자글해진 느낌이었다. 집에 도착해서는 엉엉 울었다. 방금 보고 온 걸 잘 돌아보고 싶었는데 어려웠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죄책감이 밀려왔다. 내가 현장에 갔을 때도 여전히 인부들은 일을 하고 계셨다. 나도 인도의 그 여성들처럼 그 앞을 가로막고 나무를 지켜야하지 않았을까? 왜 넋이 나간 표정으로 메스꺼운 배만 주무르다 왔는지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다. ‘뭐라도 했어야 했는데...’하던 마음과 달리 그날 이후 이틀 동안 집안에만 처박혔다. 집밖이 무서웠다.
사실 구례는 골프장만 문제는 아니었다. 지초봉엔 짚라인과 모노레일이 들어섰고, 산동 골프장 예정지는 지리산 케이블카 마지막 정거장이라고도 했다. 섬진강과 모든 지천엔 수해를 막겠다고 제방 공사를 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이 목격된 지천이나 수해피해가 심하지 않던 지천도 어김없이 제방공사를 피하지 못했다. 봉덕정의 활 쏘는 사로를 넓히겠다고 불법으로 산을 도려냈던 봉성산은, 사로 확장공사가 거의 마무리되는 중이었다. ‘지리산사람들’에서는 ‘난장판 구례답사’를 열어 이 현장들을 방문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많이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보를 만들고 홍보도 했지만,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이 아닌 참여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정말 400개 단체만큼의 주민들이 골프장을 환영하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난장판 구례답사’ 당일에 한 번 더 벌목지를 방문했다. 처음 방문 때보단 넋이 덜 빠진 채로 숲을 돌아봤다. 죽은 나무들은 값이 나가는 굵은 것들과 돈이 안 되는 가느다란 것들로 분류된 상태였다. 소나무, 편백나무, 덜꿩나무, 때죽나무, 회나무... 아는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면서 애도해보았지만, 죽은 나무들은 포크레인에 잎과 수피가 모두 벗겨져 누구신지 식별하기 어렵기도 했다. 이날도 벌목지에선 인부들이 한창 일을 하고 계셨다. 등산객인 척하며 여기 길이 모두 사라졌느냐고 물었는데, 한 인부께 돌아온 답이 기억에 남았다. “산 좋아하는 분들한테 저 같은 놈들 하는 일이 참 면목이 없어요.” 면목이 없기는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그 인부께서는 내가 전에 살던 옆마을에 사신다고 했다. 사포마을 주민들은 곧 누가 찬성이고 누가 반대이냐에 따라 편가르기를 하게 될 터였다. 20년 전 똑같은 골프장 사업이 발표된 후 숲을 지키겠다고 나선 주민들에겐 업주 측의 폭행과 민형사 손해배상, 재산 가압류가 돌아왔다고 했다. 벌목지 인근의 계곡엔 원인 모를 흰 거품이 일었다. 인부들이 먹은 배달음식 스티로폼 용기가 바람에 날려 숲 곳곳에 흩어졌다. 박새들이 서로 소통하기 위해 포크레인 소음보다 더 크게 목이 터져라 지저귀고 있었다.
숲에서 땔감과 풀과 열매를 얻던, 그래서 숲이 사라진다는 말에 기꺼이 달려가서 숲을 끌어안았던 그 옛날의 인도 여인들이 느꼈던 숲과의 연결감을 이제 우린 느낄 수 없게 된 걸까? 골프장이 지어지면 푸른 잔디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제초제를 뿌린다던데. 그럼 골프장 아래 사는, 산의 계곡물과 지하수를 먹고사는 주민들은 어떻게 되려나? 멸종을 앞둔 담비와 수달의 똥이 인근 숲에서 발견됐다던데 이들은 어디로 가야할까? 하지만 찬성하는 이든, 반대하는 이든, 인간들 결정에 관심 없지만 함께 불행해질 다른 존재이든, 골프장 잔디를 먹고 살지 않기는 그 옛날과 달라진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