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치락곰 Jan 06. 2020

고양이 세 마리와 산다는 것 -3-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하는 주말

주말.

직장인에게 이 얼마나 달콤하고 유혹적인 단어인가. 주중에 회사 업무에 시달리느라 못한 수많은 일들(잠자기, 책 읽기, 세차하기, 화분 다듬기, 밀린 영화 보기, 맛있는 거 해 먹기 등)을 할 수 있는 휴식의 시간.

맛있는 브런치도 주말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 하지만 고양이가 있다면??

물론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하는 주말도 달콤하고 유혹적이지만, 일단 휴식의 시간은 아닌 것이 확실한 것 같다.


이른 토요일 아침.

모처럼 주말이니 느지막이 일어나겠다 굳게 마음을 먹고 블라인드까지 치고 온수매트가 켜진 침대에서 한껏 뒹굴어야겠다 싶었는데 귀에 들리는 달그락달그락 소리. 한쪽 눈만 부스스 뜨고 고개만 이불 밖으로 빼꼼 내밀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아토가 코타츠 위에서 물건을 있는 힘껏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고 있다. 오늘은 안돼. 오늘은 다 무시하고 잘 꺼야. 눈을 질끈 감고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올리는데, 아뿔싸. 눈이 마주쳐 버렸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우와- 엄마 일어났다!! 하면서 세상에 둘도 없이 녹아내리는 목소리로 애옹? 에오오- 하고 애교를 부리면서 침대 위로 풀쩍 뛰어오른다. 일어나- 일어나- 하면서 귀에 대고 연신 골골송을 불러 재낀다. 그걸 본 다른 두 놈도 합세하여 도무지 늦잠을 잘 수가 없다. 그럼 그렇지, 내주제에 무슨 주말 낮잠. 마지못해 일어나서 세 소악마의 밥그릇을 본다. 그럼 그렇지. 밤에 사료를 넉넉히 주고 들어갔건만 이미 밥그릇은 텅텅 비어있다. 도대체 이 작은 몸에 어떻게 이렇게 사료가 끝없이 들어가는 걸까? 멍한 상태로 새로 그릇을 꺼내 사료를 부어주고 지난밤의 그릇은 치운다. 내가 그릇을 달그닥거리자 요 작은 소악마들은 신나게 자기들 식탁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식탁에 그릇을 내려주니 원하는 건 이게 아니라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착한 도담이는 그래도 몇 알 깨작여준다. 배를 채워주지 않으면 분명 뭔가 엎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잘 먹는 캔을 딴다. 하지만 이 작은 악마들의 입맛이 항상 똑같을 리 없지. 오늘은 이게 아니라는 표정으로 휙 돌아 가버린다. 어쩌겠나. 또 따야지. 새 캔. 그리고 설거지.

옴마가 맛없는 캔을 줘서 안먹은 것 뿐이다옹(!)

세 소악마의 아침을 챙기고 나면 이미 잠은 저만치 달아나고 간밤에 신나게 어질러 둔 집이 보인다. 세상에, 저 양말은 어디서 꺼낸 거야. 저 종이는 어디서 나온 거지. 아이고 저기 토해놨네.. 중얼중얼 궁시렁, 궁시렁 하면서 집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린다. 간밤에 전쟁이라도 난 것 같다.


청소리를 돌리고 밀린 빨래를 돌리고 잠시 쉬려니 이번엔 놀자고 애오옥-애오옥- 울어댄다. 이 녀석들은 분명 엄마의 쉬는 시간 감지기가 달려있음이 틀림없다. 고양이 셋과 장난감으로 신나게 놀다 보면 이미 시간은 오후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침밥도 줬고 놀아줬으니 아침에 못다 잔 잠이라도 자볼까 치면 이번엔 간식 달라고 애오옥- 세 마리 하나하나 비위 맞춰 간식을 주고 설거지를 하고 나니 화장실 치우라고 애오옥- 화장실 치우고 나니 놀자고 애오옥- 그래도 오늘은 운이 좋은 것 같다. 적어도 점심시간 캔은 셋 다 잘 먹어줬으니 말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밥 잘먹는게 제일 예쁘다.

신나게 놀고 신나게 냠냐도 먹고 쌀만큼 싼 소악마들은 이제 한 마리, 두 마리 자러 간다. 세 마리다 천사 같은 얼굴로 자고 있는 걸 확인하고 이제 나도 첫 끼를 먹을까 싶어서 냉장고 문을 열고 인스턴트 볶음밥을 꺼낸다.

바스락-

아… 뒤에 시선이 느껴진다.

엄마가 자기들 몰래 뭔가 먹는가 싶어서 자다 말고 비몽사몽 달려온 고양이들. 기대에 배신할 순 없으니(그냥 무시해도 되지 않냐 하겠지만, 단언컨대 슈렉 고양이 표정으로 보는 고양이를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또 캔을 하나 뜯어 세 악마들에게 조공을 바친다.

부디 제 밥시간에는 편하게 먹게 해주세요. 당부의 말도 잊지 말자. 물론 고양이 세 마리와 산다는 것 1편에서 쓴 것과 같이 밥은 자유롭게 먹을 수 없다. 그래도 언젠가 자유로워질 거라는 기대는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토요일 해가 기웃기웃 기울어지는 시간이지만. 나는 작은 소악마들에게 시달리느라 하려고 했던 것들(밀린 책 읽기, 밀린 영화 보기, 화분 다듬기, 잠자기 등등)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책 좀 읽을까 싶어서 의자에 앉으면 도담이가 거실에서 애옹- 영화 좀 볼까 하고 침대에 누우면 홍구가 애옹- 그래, 차라리 집안일이라도 하자 하고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아토가 애옹- 아차, 아까 돌린 빨래가 아직 세탁기 속에 있다. 도무지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
뭐, 괜찮아. 주말은 기니까. 내일(일요일) 하면 되지. (그리고 다시 첫 줄로 돌아간다.)


물론 평일에 할 수 없는 시도 때도 없이 고양이 머리 쓰다듬기라던가. 아침, 점심, 저녁 또또구 형제들 발 냄새 킁카 타임이라던가. 고양이 화장실 구경이라던가. 평일에 할 수 없는 수많은 고양이 타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주말은 보상받는다고 생각한다. 뭐, 물론, 약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조금더 완벽한 주말이 되지 않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