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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현 Oct 07. 2023

예술과 영성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고도 부끄럽게도 글을 쓰지 않은 채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작년에 글을 쓰면서 만났던 이들 중에 몇몇은 데뷔를 하기도 했고 영화과 입시는 돌아왔으며 작년에 참여했던 부산국제영화제도 개막한 지 오래다. 나는 부랴부랴 작년의 추억을 떠올리며 기차표를 알아보기도 입시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도 해보았다.

그렇게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글이 써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작년처럼 글을 쓰고 싶지 않다. 무언가를 써야 한다는 강박, 조금 더 특별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제대로 된 글을 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감정적 파도가 몰려올 때도 있었으나 그걸 차단시키기 바빴다. 내 글은 자유롭지 못했고 어딘가 매여있었다.

연기를 배울 때 자아가 갇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이야기는 그렇게 나오는 법이 없다는 걸 깨달은 시간이기도 했다.

난 무엇보다도 입시나 제출이 목표가 아니라 진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무언가 멋지게 써야 한다는 그럴싸한 느낌에서 벗어나서 진짜 무언가.. 그것을 찾고만 싶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올해가 흘러간다는데 좌절감을 느낀다. 하지만 장기적 마라톤에 지치면 안 되는 법이다. 내가 원하는 방식과 신념대로 글을 쓰고 싶다. 글이 나를 불러야만 한다.

올 상반기는 개인적인 심적 어려움 때문에 글에 귀 기울일 시간이 없었지만 그 경험이 무언가 나를 바꾸었다고 생각한다.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집중하게 되었고 내 안의 결핍도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나'라는 사람을 벗어나서 생각하려 노력한다. 어쩌면 글은 내 이야기가 아니라  5cm 앞에 있는 세상에 대하여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모두이게 놓인 5cm 앞 세상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그 세상에 대해 지적으로, 영적으로 연결되기 위한 여정을 떠나고자 한다. 정해진 시간 안에 매우 자유롭게 여행을 떠나갈 것이다. 새로운 도전 없이는 삶은 영원히 머물러 있기 마련이다.

내 앞에는 노년의 마그리트 뒤라스가 영화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사진이 있다. 그녀는 텍스트에 벗어나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다. 나이 앞에 굴복하지 않았다. 나 역시도 내 글이 이미지화되기를 꿈꾼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텍스트에 갇혀 있다 모든 영적이며 지적인 에너지가 보는 사람 모두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 바람이다. 내 글이 지향하는 바이며 구도하는 길이기도 하다.

여전히 나의 글은 '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이렇게 조금씩 적지 않으면 서서히 연결 신호는 약해지고 만다. 한 때는 매우 수도자적이고 영성적인 삶을 살았다고 자부한다. 그때는 무언가 간절히 원하는 게 있었고 만물의 미세한 움직임이 나에게 어떤 방향을 가리킨다는 생각도 하였다. 하지만 어느새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그런 영성, 직감은 사그라들고 말았다. 바람에 나부끼는 가지에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낄 때 나는 그 때까 가장 예술을 하는 시점이라고 느꼈다.

영화를 다시 미친 듯이 보고 있다. 때가 오고 있다고 느낀다. 기나긴 겨울이 시작될 테고 나는 겨울에 힘겨워하면서 마침내 글을 쓰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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