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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현 Oct 11. 2023

표현이라는 것

모든 것을 글로 만들기 프로젝트


‘표현되지 않았던 것을 표현하는 것’. 이 문장을 정확히 일 년 전에 썼던 기억이 난다. 한예종에 영화를 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질 때 이 문장을 썼다. 영화가 가진 미덕이라고 생각했고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지점이기도 했다. 이 문장을 뒤라스가 영화에 대한 인터뷰를 하면서 고스란히 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소름 돋았다. 뒤라스와 조금 연결된 기분이었다. 오래된 영화, 작가, 소설과 내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매번 큰 놀라움을 안겨준다. 인간은 어떤 시대에 살던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뒤라스는  고택에 살면서 이 집에 살았던 오래된 여자들을 상상하고 그들을 모티브로 글과 영화를 만들었다. 뒤라스는 이 작업을 일컫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뿐이고 그들은 표현할 수 없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즉, 인간사 속 모든 여성이 지닌 문제의식과 생각들이 표현되지 않던 시간이 있었는데 뒤라스는 마침내 이것을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언어로 표현되는 것은 실로 막강한 힘을 지닌다. 말로 표현된 것과 표현되지 않은 것 간의 차이는 생각 이상으로 크다. 한번 말이 되어서 퍼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곧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한다. 단어를 통해 인간은 사고하기 때문이다. 통용되는 단어가 된 말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권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뒤라스가 역사 뒤편에 있던 여성이라는 존재에 대해 쓰기 시작한 것은 결국 여성들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작업과 같다. 그들의 인생을 표현하고 명명하는 것은 곧 그들을 조망하게 만들고 표현된 말대로 여성을 사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표현된다는 것이 주는 심리적 명쾌함도 간과할 수 없다.우울과 불안은 혼돈 속에서 더 깊어지는 법이다. 왜 불안한지, 우울한지를 정확히 명명할 수 있다면 안개가 걷힌 느낌이 들기도 한다.(실제로 정신과 치료에는 감정을 명명하는 작업들이 있다). 여성의 삶이 표현되기 시작하고 그것들을 읽고 말하기 시작할 때 얼마나 많은 존재들이 위로와 안도를 느꼈는지 상상해 본다.


뒤라스의 시대가 여성을 해방하는 때였다면 지금의 시대는 감정을 해방하는 시대라 생각한다. 그 어느 때보다 사회가 파편화, 개인화되었고 다양성을 수용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개인은 더 이상 시대적 사 명 안에 살 수 없기 때문에 개인적 목표를 찾아야만 한다. 이 독자적인 작업은 많은 정신적 혼돈과 불안을 수반한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를 찾고 있다. 그건 답을 찾지 못해서이다. 표현되지 않는 감정들이 불안함으로 가득 쌓여있으며 이 사회를 정처없이 부유하고 있다.


이러한 감정들은 기존은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 사실 언어는 매우 보수적인 장르이다.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권력을 얻기까지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만 하고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한정적인 단어들로만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감정들은 단어보다 복잡하고 개인적이다.


영화는 이런 점에서 고무적인 수단으로 작용한다. 이미지를 통해 감정을 직접 전달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소설과 다른 점은 대사가 아니라 이미지로 원초적인 감정들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음악과 의도된 연출이 가미된 이미지는 ‘느낌’을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언어라는 매개가 필요치 않은 지점이기도 하다. 마치 거대한 자연을 보고 느끼는 감각처럼 영화는 감각을 일깨우는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지점에서 뒤라스는 말년에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했는지도 모르겠다(더 읽어봐야 알겠지만). 텍스트가 텍스트에만 머물러 있지 않게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모든 글쟁이의 소망이기도 하다. 그것은 텍스트의 한계를 누구보다도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글의 대체수단이 영화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이지 무엇이 우위에 있는지 설명하기 위한 글은 아니다. 다만, 뒤라스의 인터뷰를 통해서 ‘표현’이라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절감했고 이 표현의 수단이 글에만 머물 수 없고 진화하고 그중 하나가 영화라는 점, 개인적으로 영화를 선호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상한 결심]

요즘 모든 일상을 글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사유들, 내가 하는 경험들을 전부 글로 만든다면 어떨까? 그 프로젝트의 시작으로 어제 읽었던 인터뷰집을 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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