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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지언니 Mar 25. 2024

빛과 벽돌이 짓는 시

붉은 벽돌에 대한 단상



"벽돌아 벽돌아! 넌 뭐가 되고 싶니?"


루이스 칸이 엑세터 도서관에서 벽돌과 나눴다는 대화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루이스 칸이 진짜 벽돌에게 뭐가 되고 싶은지 물었을 리도 없고.... 벽돌이 아치가 되고 싶다고 대답을 했을 리도 없지만.... 건축에 사용하는 재료를 어떻게 존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영감을 아주 유쾌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설계를 할 때 우리는 먼저 디자인 컨셉을 정하고 그다음 특정한 아이디어나 형태에 가장 적합한 재료가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하곤 합니다. 재료는 건축가가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도구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디자인 의도와는 별개로 사람들은 일상에서 건물의 표면을 보며 심리적, 정서적으로 다르게 느끼기도 하고 왜 저런 색과 저런 형상과 저런 재료를 썼을까 생각할 것입니다....


이번 초등학교 프로젝트 마감을 앞두고 작년 겨울에 한 번 그리고 봄이 길목에서 또 한 번 우리는 붉은 벽돌 건축을 보러 다녔습니다. 벽돌 건물을 보면서 문자 그대로나 은유적 의미에서 이번 초등학교의 개념과 맥락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그 어렴풋한 생각의 파편들이 머릿속의 몽글몽글한 구름으로 그치지 않게 글로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들은 선생님들은 그리고 동네 주민들은 붉은 벽돌 학교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느낄지.... 어쩌면 너무 흔하고 오래된 재료인 벽돌.... 아무렇게나 생각 없이 쓴 것이 아닌.... 이런 생각으로 썼다는 것을 남겨두는 지금의 벽돌 이야기! 아울러 학교 건축에서 붉은 벽돌은 어떻게 다른 지도 살짝 더한.... 붉은 벽돌 순례를 하며 느낀 단상입니다.






 한 장 한 장 쌓아 만든 매스감이 맛이다.


벽돌 한 장정도는 어린아이도 거뜬히 들 수 있습니다. 작은 상점, 작은 집같이 작은 재료를 쌓아 작은 건축을 한다는 생각도 틀리진 않지만, 연결철물의 도움으로 한 장 한 장 쌓아 하이라이즈 빌딩도 만들 수도 있는 것이 요즘의 벽돌입니다. 디테일적으로는 쌓기 방식과 줄눈의 색상에 따라 다른 느낌의 텍스쳐를 만들기도 하고 깊이가 다른 음영을 들이기도 하지만 결국 하나하나 쌓아 만든 매스감의 맛으로 벽돌을 씁니다. 심심해 보여서 다양한 쌓기 방식을 고민하지만 그런 디테일보다는 결국 한 장 한 장 손에 잡히는 벽돌이 모여 큰 덩어리를 만드는 스케일의 맛! 가장 작은 재료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웅장한 매스에 대한 기대도 가능하게 하죠.




 언제나 토양을 닮아 있다.


벽돌을 선택할 때 품질과 질감과 비율과 색상을 신중하게 선택한다면 벽돌은 건축에서 평온함과 생명력을 표현하는 우아하고 고요한 재료가 됩니다. 광활한 대지의  DNA와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게 하는 생명력을 담고 있으면서....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흙! 흙을 구워 만든 벽돌은 나라마다 지역마다 다른 토양의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붉은 벽돌은 어쩌면 흔한 토양과 닮아 있는 가공이 덜한 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그런 흙이 융기해서 속을 비워내어 아주 자연스럽게 공간을 만든 것이 건축이 된다면.... 그런 공간이 학교가 된다면.... 아이들이 나무 그늘에 모인 것이 학교의 시작이 되었다는 것과 맞먹는 재미있는 스토리가 될 것 같네요.


Textilverband / Behet Bondzio Lin Architekten




 친환경적이다.


점토벽돌은 화학물질을 첨가하지 않고 자연재료인 흙을 반죽해 구워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포름알데히드와 같은 유해성 물질이 검출되지 않는다고 하죠. 지속가능한 재료라 불리고 지금은 재활용도 가능한 재료입니다. 벽돌은 흙에서 태어나 다시 흙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친환경적인 재료로 아이들이 환경을 생각하게 하는 교훈적인 면도 있습니다. 또한 벽돌은 외부로부터 소리를 차단하기도 하고 내화성이 있어 화재에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연스러우면서도 평범하고 무난한 재료입니다. 지금도 벽돌은 다른 어떤 외장재보다 친환경적인 건축재료로 사랑받으며 무채색의 도시를 더욱 생기 있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도 아이들에게 다른 감성을 표현하기에 좋은 재료이다.


벽돌은 인간의 작품을 표현할 수 있는 특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기계가 아닌 손으로 짠 천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같이 찍어내도 조금씩 색상이 다른 벽돌은 한 장 한 장이 하나의 픽셀 같기도 하죠. 벽돌은 빛이 비치면 모든 벽돌이 잘 보이고 모든 이음매가 눈에 띄기 때문에 매우 그래픽 한 재료라고 생각합니다. 덩쿨이 타고 올라갈 때는 세워진 땅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고요. 어린아이도 손으로 들 수 있는 중량을 가진 벽돌은 작은 외장재이지만 한 장 한 장 쌓아 커다란 매스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아이의 성장과 우리의 인생을 닮아 있기도 합니다.



Brentwood School




 시간이 흘러도 매력적이다.


외장재는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낡거나 오염이 되는데 벽돌은 오히려 고풍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벽돌의 장점은 관리가 거의 필요 없는 재료로 오랜 시간 동안 페인트나 코킹 스테인 같은 관리가 필요 없어요. 요즘 집의 수명은 아파트를 생각하면 30년 정도이지만 학교는 그 보다 더 오랜 수명을 요구받습니다. 같이 지어진 도시의 아파트는 재건축을 하는데 학교는 어떤가요? 이런 시간과의 싸움에서 긴 시간이 흘러도 질리지 않고, 유행 타지 않고, 조용히 학교라는 존재감을 드러내는 재료로 벽돌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년시절의 추억이 깃든 장소가 늘 그렇게 있어주길 바라는 어른의 마음도 잘 헤아려 주는 것 같은....매력적인 재료입니다.



 단점을 극복했다.


벽돌의 단점은 쌓아 올라가는 조적의 방식으로는 공간의 형태나 크기에 따라 제약이 있고, 인장력의 부재로 내진에 취약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구조적으로 쓰이지 못하는 벽돌은 타일이 되어버렸다는 박한 평가를 들으.... 벽돌의 동생 타일에게 그 영광을 빼앗겼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구조재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지만 연결철물공법으로 여러 층을 연결해 쌓을 수 있거나 더 큰 매스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디테일과 스케일을 넘나들며 다 표현할 수 있는 벽돌! 벽돌은 이제 시루떡같이 슬라브를 층마다 내밀어 그 사이에 벽돌을 쌓던 전형적인 학교 건축의 어휘에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여전히 따뜻한 재료이다.


건축가 김수근 건축을 빗대 ‘건축은 빛과 벽돌이 짓는 시’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빛은 시간이고 시간은 쌓이는 것이고, 쌓아 올리는 것을 전제로 하는 벽돌이라는 재료는 시간과 가장 가까운 소재라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건축 소재와 시간이 친하다는 것은 지속가능성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견고함을 의미한다는 더 멋진 해석도 있습니다. 적벽돌 건물에 햇살이 비출 때 빛과 음영 사이에서 그 따스함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벽돌이 앞으로도 여전히 따뜻한 재료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지의 생명력과 온기가 스며있는 벽돌.... 아이들이 자라는 학교를 더 따뜻한 공간으로 만들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026년 3월 개교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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