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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현정그레이스 Apr 15. 2024

'상처입은 치유자'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직업적 상담사로서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

학창시절 처음 상담자가 되고 싶었다. 친구들이 현정이는 이야기를 잘 듣고 상담해준다고 했다. 나는 성장기의 상처와 내면탐구 덕에 타인의 얘기를 잘 경청해주는 사람이었다.



상담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대다수의 동기는 자신의 상처다. 나 역시 오래된 자신의 상처를 유의미하게 만들고 타인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헨리 나우웬은 자신의 저서에서 이를 '상처 입은 치유자'라고 이름 붙였다. 자신의 상처를 바탕으로 타인의 상처를 도울 수 있는 사람, 매우 멋있는 개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상담자 이상의,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고 싶었다. 이처럼 상담을 처음 공부할때는 다소 이상적이고 이타적인 동기로 시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상담 현장에 노출되면 이런 이상적인 마음은 소거되기 십상이다. 높은 이상과는 반대로 현실은 진흙탕이다. '상담'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석사 학력을 기본으로 받아야 할 교육과 따야할 자격증은 어찌나 많은지. 자격증 따기 챌린지에도 들어선 느낌이다. 하지만 이에 반감을 가진다고 그 질서를 이탈하기도 힘들다. 자격증이 있다고 바로 일할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너도 나도 있는 자격증이 나만 없어서는 명함을 내밀기 힘들다.



'타인을 돕고 싶다는 높은 이상'과 '저임금과 불안정한 노동 환경'의 큰 간극이 상담 업계에 일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치료중에 가장 효과적인 치료가 금융치료라는 말이 있듯이 오래된 저임금 노동은 상담업계에 근무하는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다.



상담일만큼 피라미드 구조가 형성되어 있는 곳도 없다. 피라미드 꼭대기의 일부 교수와 수퍼바이저들이 각종 교육과 상담을 시행하며 많은 돈을 벌어간다. 피라미드 아래쪽의 초심 상담사들은 돈을 가져다주는데 바쁘고 벌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런 업계의 현실은 상담 공부를 하고 취업 시장에 뛰어들기까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자신이 내담자였던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상담에 관심을 갖는다. 겉보기에 상담이란 일은 멋져 보인다. 타인의 마음을 다루면서 돕는다는 이타적인 성격까지 가지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런 이유로 대부분 상담사란 직업에 호감을 갖는다. 또 상담 공부는 사느라 바빠 미뤘던 내 마음을 들여다 보게 해주니 경제적 효용 가치 그 이상이다.



앞서 말했듯이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고 싶었던 나와 같은 많은 이들이 자신의 시간과 재정을 갈아넣으며 상담사가 된다. 그리고 가장 힘겨운 초심 상담사의 기간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버틴다. 상담사의 실제적 현실을 깨닫고 어떤 사람들은 중도 포기를 하기도 한다. 나는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좋은 마음으로 상담 일에 진입한 이들이 그들의 노력에 합당한 대우를 받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전부다.



처우가 열악한 상담 동네에서 버티다 보면,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고 싶었던 첫 마음을 유지하기 힘들다. 살아남기 급급한 것이다. 상담을 공부하며 내 자신을 들여다보고 많은 치유를 받은 나조차도 상담을 일로서 선택하는 것에는 신중하라며 말리고 있다. 그만큼 업계의 현실은 최저임금에 준하는 임금체계와 계약직을 전전하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옆동네의 사회복지사들도 열악한 임금인건 마찬가지지만, 우리보다는 호봉이 안정되어 있다.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고 싶은 첫 꿈을 포기할 수 없어서 올해 상담심리 교육대학원에 한번 더 진학하게 되었다. 상담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임금적 안정성을 추구한 선택이 상담교사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작년에 가족상담 석사를 졸업했다.



이미 상담을 전공하고도 다시 상담심리를 이중으로 전공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소 비효율적이다. 많은 상담 일자리가 양질이라면 하지 않아도 될 선택이다. 그래도 상담일을 계속할 수 있는 나는 축복받은 것이 아닌가하며 오늘도 버티고 있다.  


이 글은 오마이 뉴스 기사에도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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