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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큥드라이브 Jun 09. 2024

<나는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입니다>

를 읽고. 내용이 산으로 가는 후기.

삶의 힘든 순간, ‘삶은 휘청거리고 삐걱거리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테고, 그 방향을 스스로 잡는 편이 낫다’는 것을, 미술관에서 깨달아가는 작가의 스토리가 아름다웠다. (글을 참 맛깔나게 쓴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작품을 통해 작가가 자가 치유하는 과정을 함께 겪은 느낌.




다만 책을 읽다가, ‘뉴욕 쿠로스'를 묘사한 부분에서 갑자기 감정이 묘-해졌다. 그리스 초기의 딱딱한 느낌의 조각상에서, 작가는 메트로폴리탄에 매일 서 있다는 동질감을 느끼며 ‘조각가는 신과 같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동시에 풋풋하고 벌거벗은 연약한 모습을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라고 묘사한다.

쿠로스조각(198p) , 은시키 주술상 (123p)


여러 곳에서 작가와 작품을 찬양하는 감상은 계속된다. ‘<은시키 주술상>을 초자연적인 형태로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놀라운 기하학적 형태를 완성한 것이 분명하다…박력 넘치는 조각상의 주위를 돌며 나는 예술가가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사실에 감탄할 뿐이다. 예술의 위대한 기적이 행해졌고 아름다움의 새로운 모습이 세상에 더해졌다.’


작가가 이렇게 느꼈다는 데!! 나는 왜 기분이 묘할까?


물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감상자의 몫이지만, 과연 메트가 아닌, 그리스 귀족의 무덤이나 아프리카에서 해당 조각상을 봤다면, 이토록 예술가를 찬양할 수 있었을까. 비슷하게 생긴 주술 목적의 조각상 중 방금 예찬했던 이 조각상을 찾을 수 있을까? 어쩌면 오랜 시간, 이 (원래 제작된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전시장에 자리한)조각상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끼도록 설득된 것이 아닐까.


 권위 있는 미술관 안에서 우리는,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들에게 검증된 작품을 통해 ‘위대한 작품'이 명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건 아닐까?


한편으로는, 작가와 내가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구덩이 파면서 질문할 필요가 있나? 왜 나는 작가의 감상에서 감정이 식는다고 느꼈나? (작품과 사랑에 빠져서 한껏 음미하는 작가가 부러워서 그런 걸 수도) 그렇다면, 내가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던 작품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게 없다.


알면 알수록 모르겠다. 그래서 한없이 배우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멈춰버렸으면 하는 아름다운 순간만 보면서 살기에는, 그 뒤에 가려진 것들이 신경 쓰인다. 대단하게 무언가를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편협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인내하기 위해, 친절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특이한 점을 즐기고, 나의 특이한 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 관대하기 위해,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간적이기위해 노력하면서. 어제보다는 조금 더 넓은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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