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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롤로로 Aug 18. 2022

헤어질 결심을 필사하다

헤어질 결심의 모든 장면들

<시작>


박찬욱이 운영하는 영화 제작사 <모호 필름>이 떠오르며, 날카로운 총성이 몇 발 울린다. 흔한 영화 제작사 소개 사운드라고 하기에는 기괴하나, <모호 필름>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면1. 해준과 수완이 사격 연습을 하며 질곡동 살인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다.>


알고 보니 총성은 두 형사의 연습 사격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영화의 첫 대사는 해준의 "요즘 살인 사건이 안 일어나네.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이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살인, 형사, 총을 보여준다. 날씨가 좋아서 살인 사건이 잘 안 일어나는 것 같다는 해준(박해일)의 말은 다소 의미심장하다. 살인 사건은 없어야 좋은 일이니. 뒷부분에서 반복되지만 해준은 ‘폭력과 살인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품위 있는 형사’라는 역설적인 존재다.


두 형사가 총을 반납하고, 방탄조끼를 벗는다. 해준은 '질곡동 살인사건‘에 상부 관심이 없다는 식의 불만을 토로한다. 또 푸념인가, 하는 수완의 미적 지극 한 반응. 이에 멋쩍은지 해준은 "우리가 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수완의 어깨를 꽉 붙잡는다. 그는 살인사건을 알아서 찾는 사람이다.


화면이 바뀐다. PC방 알바생이 해준에게 범인에 대해 설명한다. 알바생과 해준의 얼굴을 리버스 쇼트로 번갈아 보여준다. 말하자면 취조 숏이다. 형사가 예전에 보여준 사진을 보고 신고를 한 자신이 자랑스러운지 알바생은 싱글벙글 웃음을 띠며 무용담을 풀어놓듯이 이야기한다. “자알~ 하셨습니다.”라는 해준의 목소리에서 일종의 뿌듯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곧이어 "다시 온다던가요?"라는 질문과 함께 화면은 점프 컷으로 바깥으로 이동한다.


간판에 적힌 '오빠 PC방'이라는 글자에서 서서히 줌 아웃되는 카메라. 차 안으로 들어온 카메라는 잠복근무 중인 수완(고경표)을 보여준다. <헤어질 결심>을 영화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는 이러한 편집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테면, 알바생과의 대화가 끝난 후 해준과 수완이 계단을 내려오며, "오늘부터 잠복 시작한다." "네? 오늘부터요? 아이씨." "뭐, 인마"라는 식의 대사를 생략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영화는 잠복 결심 – 잠복 준비 –잠복 시작의 시간을 모두 편집에서 삭제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점프컷이 해석하지 못할 수준의 편집은 아니며, 약간의 사고를 통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헤어질 결심>의 모든 편집은 불필요함을 덜어내고 전달해야 할 정보를 명확히 이미지와 단어를 통해 표현한다. 영화적이다. “이게 너랑 나랑이냐고요~”하는 수완의 대사를 통해 앞뒤 맥락을 관객으로 하여금 짐작하게 한다.


<장면2. 해준이 이포로 이동하여 정안과 식사를 하다.>


수완의 투덜거림이 잠복근무 중인 수완과 졸음운전 중인 해준을 이어준다. 안개에 싸여 어디론가 이동 중인 해준. 해준의 차가 중앙선을 넘어가는 순간 뒤차가 크락션을 울리고, 리액션 쇼트로 잠에서 깨는 해준을 보여준다. "또 졸았네"라는 수완의 말이 겹친다. 이후 수완과 주고받는 대화, 그리고 '이포'라고 적힌 표지판을 통해 관객에게 몇 가지 정보가 제공된다. 해준은 주말 부부이고, 불면증을 앓고 있으며, 그의 아내는 이포라는 곳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압축적으로 전달된다. "잠복을 해서 잠이 안 오는 것이 아니라, 잠이 안 와서 잠복을 한다"는 대사는 해준이라는 인물을 관통한다. 관객은 그가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유에 대해 궁금증을 느끼며, 이 궁금증이 이후 서래(탕웨이)와 해준의 감정을 납득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된다.


"엄마, 원전은 완전히 안전."이라는 헤드라인의 신문. 그리고 정안(이정현)의 사진이 보인다. 카메라가 서서히 줌 아웃하면서 부엌과 거실을 보여주고, 올림피아드를 준비한다며 집에 오지 않은 아들에 관한 대화가 오간다. "걔는 이과라 나 닮았어."라며 부엌으로 걸어가는 정안을 카메라가 뒤쫓아가고, 식탁에 마주 앉은 부부의 모습을 설정샷으로 보여준다. 첫 대사에서 알 수 있듯, 정안은 논리와 계산의 세계, 효율성과 비효율성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안이 원전 관련 일을 하고 있다는 설정은 사뭇 재미있다. 원전은 '이론적으로' 안전하다. 정안은 '이론적으로' 사랑을 하려는 사람이다. "초밥 같은 거나 시켜 먹자"는 정안의 말은 오랜만에 만난 시간을 식사 준비를 하는데 낭비하지 말자는 이야기이고, "나 있을 때라도 따뜻한 것 먹게 하려고 그런"다는 해준의 말은 '밥을 같이 한다'는 정서적 교환을 원한다는 신호이다. 둘은 첫 장면부터 사소하지만 어긋난 대화를 하고 있다. 이후, 정안이 찌개를 한 숟가락 먹고는 "이포로 전근 오면 안 돼?"라고 해준에게 묻는다. 이 대사를 하는 정안은 오버 더 쇼트로 찍혔고, 이 말에 대한 해준의 반응은 롱숏으로 찍혔다. 즉, 카메라는 정안에게 더 가깝다. 영화문법에서 대상이 카메라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는 곧 대상에 대한 이입 정도와 비례한다. 그러니 강력하게 ‘같이 살자’는 정서를 표현하는 정안과, 그에 미적지근한 반응인 해준이 대조된다.


어색한 분위기를 돌리려는 듯, 정안은 '이 주임(유태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주말 부부의 60%가 이혼한다"는 말에 해준은 "그래서 뭐라고 답했는데?"라고 답한다. 자신이 이포로 전근을 오지 않겠다고 표현한 후, 그에 이어진 아내의 말이 주말 부부의 이혼과 관련된 것이기에, 해준의 물음에는 약간의 두려움이 섞여있다. 여기서 정안은 "섹스리스 부부의 55%가 이혼하는데 괜찮냐고" 맞받아 쳤다고 이야기한다. 이때, 카메라는 정안의 눈을 강조한다. 정안은 말로는 유머를 하지만 눈으로는 웃지 않는다. 정안의 눈은 해준의 눈동자를 지긋하게 응시한다. 이는 이미지가 대사를 배신하는 순간으로, 이 역시 <헤어질 결심>에서 자주 반복되는 영화적 기술이다. 정안의 눈동자와 "섹스리스 부부는 이혼을 잘한다"는 대사가 합쳐질 때, 이는 "우리는 자주 섹스를 해야 한다", 내지는 "주말 부부인 우리가 섹스마저 하지 않을 경우, '이론적으로' 우리는 이혼한다"는 의미가 된다. 섹스에 대한 정안의 집착은 이후에도 반복되는데, 이러한 정안의 태도는 여러 가지 성분을 주어진 함량만큼 넣으면 완전히 새로운 물질이 탄생하는 자연과학의 법칙을 사랑하게 적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섹스 한 번이면 이만큼 사랑하고, 두 번이면 이만큼 사랑하고...... 어쨌든, "자주 섹스를 하자"는 질문에도 실실 웃어넘기는 해준의 모습을 보여주며, 낑낑거리는 높은 현악기 소리가 울린다. 마치 해준이 느끼고 있는 사랑의 불안감, 내지는 불편함처럼.


<장면3. 해준이 기도수의 시체를 발견하다>


타이틀인 '헤어질 결심'이 등장한다. 타이틀이 이 순간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영화를 다시 보면서 느낀 것이지만, 해준은 이미 이 순간 정안과 '헤어질 결심'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트로라고 할 수 있는 앞의 장면에서 우리가 본 것을 상기해보자. 그것은 '살인사건을 찾아가며 수사하는 형사와 섹스의 수학으로 가정을 유지하려는 아내'이다. 과연 이 둘은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일까? '헤어질 결심'이라는 제목의 배경으로 화려한 기하학적 패턴이 반복된 후, 숲 속을 비추고 있는 손전등을 든 사람들을 부감 숏으로 찍은 장면으로 이어진다.


경찰들이 무언가를 찾고 있다. 그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니, 마치 벌레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카메라는 벌레처럼 움직이는 경찰관들을 보여주고는 벌레가 주위에서 날아다니고 있는 시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다시 한번 하늘로 이동하여 시신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을 보여준다. 이렇게 세 장면을 거치고 나서야, 우리는 앙각으로 시신을 바라보는 해준과 동료들을 볼 수 있다. <헤어질 결심>에서 벌레와 관련된 이미지를 통한 편집은 굉장히 많이 등장한다. 벌레를 직접적으로 등장시키거나, 벌레와 관련된 대사를 나누며 벌레와 유사한 형태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그 예시다. <헤어질 결심>의 대부분이 형사인 해준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것을 볼 때, 이러한 벌레의 등장과 이미지의 반복은 삶에 대한 해준의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뒤에 나오지만, 사람이 벌레에게 파먹히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는 해준의 모습은 일종의 극단적인 유물론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헤어질 결심>은, 가장 물질적인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던 형사가, 가장 형이상학적인 사랑을 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시체가 떨어진 경로를 먼저 온 조사관이 알려준다. 조사관의 말이 끝나자, 해준은 "직접 올라가 봐야지"라고 말한다. 낮으로 점프컷 하는 화면.


<장면4. 해준이 기도수가 사망한 비금봉 정상에 오르다>


지프를 타고 해준과 수완이 올라가고 있다. 수완은 왜 이런 일을 하는 지 모르겠다는 태도이고, 해준은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이어간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는 수완의 물음에, 해준은 두 가지 대답을 남긴다. 하나는 "피해자의 마지막 순간을 직접 목격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린 경찰이니까"이다. 서두에서 말했듯, <헤어질 결심>은 오로지 필요한 장면, 오로지 필요한 편집, 오로지 필요한 대사만으로 이루어진, '꼿꼿한' 영화이다. 그러니 해준의 이 두 말을 분석해본다면, 하나는 '본다'라는 행위에 대한 해준의 믿음이고, 하나는 '경찰'이라는 직업에 대한 윤리이다. 그는 이 두 가지 요소를 벗어날 수 없는 인물이고, 두 요소 안에서 완전한 인물이다. 여담으로, 왜 등반 장면을 세로가 아닌 가로로 찍었을 까 생각해보았는데, 아마 뒷배경 CG처리의 문제 때문이 아닐까 싶다. 좁은 암벽 뒤로 흐릿한 배경을 CG처리하는 것보다, 화면 전체를 암벽으로 덮어버리는 편이 더 보기에 편한 것은 아닐까? 혹은 '높은 곳을 오른다'는 비일상적인 행위가 해준과 같은 형사에게는 직선도로를 걸어가는 일상적인 순간 중 하나라는 암시일 수도.


정상에 도착한 해준과 수완. 소방대원이 안전띠를 풀어준다. 해준은 정상에 남겨진 사망자 기도수(유승목)의 소지품을 조사한다. 'KDS'라는 이니셜을 보며 스마트 워치에 "소유욕?"이라는 의문을 남기고, 손바닥에 덜어낸 기도수의 위스키에 혀를 적시며 "위스키를 마신다."고 나직하게 말한다. 피해자가 봤던 마지막 순간에서 사망 현장을 내려다보는 해준. 그리고는 안약을 넣는데, 카메라는 해준이 안약을 넣는 장면을 클로즈업해서 자세히 보여준다. 이렇듯, 정상에서의 모든 장면이 형사로서의 해준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는 사소한 단서를 기록하고, '잘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안약을 넣은 해준의 눈이 벌레로 뒤덮인 기도수의 눈으로 이동되고, 더 나아가 기도수의 시점쇼트를 보여준다. 해준이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죽은 자인 기도수는 위를 쳐다보지 못한다. 망막 위를 기어다니는 벌레의 다리가 죽음의 물질성을 현현하게 보여준다. 이 기괴한 '기도수 시점 쇼트'는 왜 삽입된 것인가? 이 쇼트는 죽음의 쇼트다.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거꾸로 말하자면, 아무 것도 볼 수 없다면 죽은 것이다. 잠시 건너 뛰어, 영화의 결말을 생각해보자. 해준은 서래를 보지 못한다. 그것은 해준에게는 죽음이이며 그것이 '기도수 시점 쇼트‘와 묘한 짝을 이룬다. 영화를 여러 번 관람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이 영화는 강박적으로 '반복'된다. 영화 자체가 2부작으로 되어 있을 뿐더러, <헤어질 결심>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대사나 장면은 두 번 반복된다. 잠시 맥락과는 상관없이 마르크스를 인용하자면, "세계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비)극으로." 덧붙여, 연속되는 반복은 연속되는 수미상관이다. 즉 <헤어질 결심>은 내용의 측면에서도, 형식의 측면에서도 두 번 반복되며, 이 반복의 순간 파생되는 새로운 감정이 바로 관객이 느끼는 감정이다. 그러한 면에서 본다면 <헤어질 결심>은 그 자체의 형식과 내용은 완전하면서도, 스크린에 영화가 상영되는 순간 변증법적으로 변하는 기괴한 영화다.


<장면5. 해준이 부검실에서 서래를 만나다>


'기도수 시점 쇼트', 이른바 죽음의 쇼트가 끝난 후, 영화는 말 그대로 부검소에 누워 있는 '죽은 기도수'를 보여준다. 해준과 수완이 기도수의 패턴을 풀기 위해 힘쓰고, 배경화면으로 보이는 서래를 보며 "따님이 예쁘게 생겼네."라고 말한다. 그 후 서래가 부검소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사운드와 수완의 반응이 이어지고, "아버님은 이쪽에 계십니다"라는 수완의 대사가 화면 너머에서 들려온다. 그리고 마침내. 서래가 등장한다. "기도수 씨 아내 송서래입니다. 중국사람이라 한국말이 서툽니다." 화면에는 해준의 모습만이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 알 수 있다. 이후에 해준이 스스로 실토하지만, "슬픔(혹은 사랑)이 파도처럼 덮쳐오는 사람"은 자기자신이다.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왼쪽 얼굴을 드러낸 채, 왼쪽을 바라보는 서래가 화면의 왼쪽 아래에 위치하고, 서래의 뒤면서 화면에서는 중앙인 위치에는 해준이 앉아 서래를 바라보고 있으며, 해준의 왼쪽에는 수완이 서서 해준과 마찬가지로 서래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결정타. "산에 갈때마다 걱정되었습니다. 마침내, 죽을까봐." 이 대사가 끝나고 나서야 카메라는 초점을 해준에게 맞춘다. "마침내." <헤어질 결심>의 모든 요소들이 두 번 반복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면, 대사들 또한 각각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서래에게 기도수는 '마침내' 죽은 것이며, 해준에게 서래는 '마침내' 찾아온 것이다. (찾아왔다는 말은 이중적이다. 서래는 해준에게 예비 살인자로서, 예비 애인으로서 '찾아왔다.') 그렇기에 "한국말을 저보다 더 잘하십니다."라는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여기서 화면은 시간을 조금 끈다. 이전까지의 빠른 편집이 무안할 정도로, 서래를 응시하는 해준의 모습을 관객이 '왜 이래?'라고 속으로 의문스럽게 느낄 때까지 시간을 끈다. 이는 분명 해준의 내면의 꿈틀거림에 대한 표현이다. 내면의 꿈틀거림은, 역설적이게도 정지한 순간을 길게 보여줄 때 드러나곤 한다. 나는 해준이 서래에게 사랑(동시에 의심)을 느낀 순간이 "마침내"라는 단어에 있다고 생각한다. 해준에게 기도수 사망 사건은 '마침내' 일어난 (예비) 살인사건이까. 물론, 해준의 "한국말을 저보다 더 잘하십니다."에서 몇몇 관객은 작게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그 대사가 웃음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는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이후에 해준과 서래가 절에서 데이트를 즐길 때 해준이 했던 말을 떠올려 보라. "나는 처음부터 서래 씨가 나와 같은 종족인 줄 알았어요." 같은 '종족.' 물론 해준은 "'말씀'이 아닌 '사진'을 보고 싶어할 때" 그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마침내 사람이 죽었다'고 말해주는 여성을 만난 순간, 이미 해준은 동족에 대한 열망을 느낀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그것이 카메라가 해준의 표정을 길게 응시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해준의 반응에 해준은 스스로 놀란다. 해준의 표정이 미세하게 떨리자, 그 놀라움은 황급하게 후퇴하여 영안실을 설정 쇼트로 보여주는 화면에서 드러난다. 해준이 서래에 대한 마음을 갑작스럽게 떨쳐내듯, 카메라 역시 지긋하게 응시하던 해준에게서 황급하게 멀어진다. 그리고 나오는 대사. "패턴을 알고 싶은데요." 이 대사도 분명 이중적이다. 기도수의 스마트폰 패턴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서래라는 인물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말이니, 더 나아가자면, 서래의 살인 방법에 대해 알고 싶다는 욕망도 내포되어 있을 수 있으니. 이처럼 사소한 파편들이 모여 다이아몬드를 만들 듯, <헤어질 결심>은 모든 요소들이 가장 정확한 위치에, 정확한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복도를 걸어나오는 해준과 수완. 수완은 (이후에 수완이 하는 대사를 빌리자면) 젊고, 예쁜, 외국인, 늙은 남편의 아내, 즉, 송서래가 슬퍼하지 않은 이유를 생각하며 그녀를 의심한다. 그런데 이런 수완에 대한 해준의 리액션이 사뭇 뜻밖이다. "우리 마누라도 그럴 거 같은데?" 몇몇 관객의 웃음을 위한 장치이면서, 동시에 해준이 무의식적으로 서래의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더욱이, 서래에게는 되도록 쉽게 이야기하라는 말을 남긴 채, 해준은 계단을 타고 올라간다. 물론, 이미 서래가 범인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수완은 그러한 ‘변명’은 듣지 않는다. 그저 어떻게 쉽게 설명할까를 걱정하고 있을 뿐이다.


<장면6. 해준이 송서래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하다>


해준은 응급실에 와있고, 의사가 서래가 기도수에게 폭행당한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깔끔한 남자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만 때렸어요.” 서래의 몸에 새겨놓은 'KDS'라는 이니셜과 의사의 말이 들린다. 이를 목도하는 해준의 표정에는 도대체 무엇이 드러나는가. 살인동기를 발견했다는 형사의 기쁨인가, 아니면 서래의 고통에 이입하는 인간인가. 여기서부터는 관객도 함께 흔들리기 시작한다.


취조실 설정 쇼트. 서래가 "남편이 마지막에 어떤 모습"이었냐고 묻는다. 해준은 "말씀으로 해드릴까요, 사진으로 보여드릴까요."라고 친절히 답하는데, 이때 "말씀"이라는 대사를 하는 탕웨이는 화면 밖에 있다. 이에 대한 해준의 리액션은 무언가 아쉽다는 표정인데, 아닌게 아니라, 정확히 “왠지 조금 실망한”이라는 묘사가 정확히 각본에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갑자기 다음 숏에서 서래가 카메라를 마주보며, “사진”이라고 말한다. 영화 촬영에서 금기시되는 것들 중 하나가 인물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숏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서래의 눈동자와 "사진"이라는 단어, 또한 미세하게 핸드핸드로 촬영하여 흔들리는 듯한 숏은 관객에게 미묘한 감정을 전달한다. 이에 대한 리액션 숏으로 해준 역시 카메라를 마주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서래의 눈동자는 관객을 직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해준의 눈동자는 관객이 아닌 서래를 보고 있다고 느껴진다는 점이다. 서래가 해준을 쳐다보는 장면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장면이므로 관객은 놀람의 감정과 동시에 서래를 관음(영화감상)하고 있는 자신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것이 미묘함이다. 하지만 이러한 숏이 나온 후의 숏, 그러니까 해준의 응시는 앞의 서래 숏의 효과 덕분에 관객이 다소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니까, 서래의 응시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으로 해준의 숏이 나온 이유는 여기에 있다. <헤어질 결심>은 기본적으로 해준의 감정을 따라가야 하는 영화이며, 누구의 얼굴을 먼저 보여줄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특정 인물에게는 미묘하고, 미스테리한 감정을, 다른 인물에게는 관객과 동일시 되며 편안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 "머리통이 깨지신 것이 돌아가신 이유"라는 박찬욱식 유머와, "원하던 방식대로 운명하셨습니다."라는 서래의 대사가 교차한다. 자신의 답변에 해준이 살며시 웃자, 서래는 다시 한 번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무언가가 의문스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이며 "운명...아닌가...?"라는 식의 혼잣말을 한다. 그리고는 살짝 웃는데, 이때 화면은 최조실 안에서 웃는 서래의 모습이, 취조실 밖 모니터 안의 서래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주변 거울에는 이를 지켜보고 있는 수완과 미지(정이서)가 반사되어 보인다. 수완은 "방금 웃는 거 봤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데, 이는 스크린이라는 창을 통해 서래를 지켜보고 있는 관객의 반응과 동일하다. 그런 서래를 말 없이바라보는 해준, 그런데 장면은 갑작스럽게 이동한다.


<장면7. 해준이 서래와 같은 드라마를 시청하다>


넘어온 장면은 해준과 정안의 섹스를 보여준다. 약간의 부감으로 찍힌 이 숏에서 해준의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섹스의 쾌감을 느끼던 정안의 얼굴은 이내 해준의 뒤통수가 정안의 얼굴을 벗어남에 따라 무표정하게 바뀐다. 이후 앙각으로 무언가에 도취된 듯한(혹은 겁에 질린 듯한) 해준의 얼굴이 서서히 클로즈업 되는데, 그 다음으로는 갑자기 TV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가 등장한다. TV 속에는 무당의 빨간 모자가 보인다. 해준의 숨소리가 거칠어져가고, 드라마 속에서는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죽음을 앞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다음 장면은 마찬가지로 그 드라마를 보고 있는 서래의 모습이다. 그리고는 황급히 다시 섹스 중인 해준의 얼굴로 돌아온 카메라는 서서히 해준을 향해 클로즈업을 이어가며, 어지러운 음악과 어지러운 카메라 워킹이 시작된다. TV 속 피에 젖은 수건에서 해준 집의 곰팡이로, 곰팡이를 네거티브 필름으로 찍은 장면에서 기도수에게 맞아 부러진 서래의 뼈를 X-ray로 찍은 사진으로, 서래의 부서진 어깨뼈를 넘어 그녀의 손가락으로. 그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두 여성의 음성이 화면에 겹친다. 하나는 드라마 주인공의 말이고, 하나는 그 대사를 따라하는 서래의 말이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나의 추측은 이러하다. 왜 드라마에 등장한 여성은 무당인가. 일차적으로 무당은 신적 존재와 연결된 신묘한 존재이다. 또한 한국 문학에서, 무당이 부잣집 대감의 아이를 가져 죽음을 맞이하는 식의 이야기는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 <태백산맥>이 그러하고, <역마>도 비슷한 성격을 가지며, 박경리의 소설에도 하나쯤 있었던 것 같다. 즉, '무당의 딸'이라는 소제는 한국 문학에서 '너무나 매력적인, 그러나 다가서면 남자를 죽음으로 몰고가고, 그 자신도 운명에 따라 파멸에 이르는' 여성을 묘사하는 것에 종종 사용되었다는 점을 상기해야한다. 우리는 해준과 서래가 보고 있던 드라마의 맥락을 알지 못하지만, 아마 드라마에 등장하는 남성의 아이를 (첩의 지위로) 가진 무당이, 결국 자살을 하는 식의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이때 무당의 이미지와 동일시 되는 인물은, 서래이다. 신령스럽게 매력적인, 그러나 다가가면 죽음 가져오는, 무당의 딸. 그렇다면 이때, "내가 그렇게 나쁘"냐는 무당(=서래)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하층 계급이 상층 계급을 사랑하고, 여자가 죽음을 택함으로써 사랑을 완성시키는 것. 어디서 많이 듣게될 이야기이다


다시 화면으로 돌아가자, 서래의 X-ray 사진 속의 손가락이 움직이고 있다. 그 손가락이 해준의 손가락으로 이어지고, 섹스를 마친 후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는 해준 정안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 좋지. 십육 년 팔 개월 동안 좋지" 정안의 물음은 반은 희망이고 반은 의심이다. 해준과 만나고 있는 날짜를 기억하면서, 동시에 섹스의 생물학적 장점을 열거하는 정안의 대사는 오히려 섬뜩하게 느껴진다. 아닌 게 아니라, <헤어질 결심>에서 정안은 섹스 그 자체를 표상하는 것만 같다. 정안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오로지 섹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잘 섹스하는 것'이 곧 행복한 것이라는 이론이 실체화 한 것처럼 보인다. 이는 물론 이야기의 내적 기능으로는 관객이 해준이 서래에게 이끌리는 것에 일종의 면죄부를 주는 효과(<화양연화>에서 각자의 상대가 불륜 상태라는 설정이 도입된 것처럼)를 가져다준다. 동시에, 이는 박찬욱 영화를 향한 관객의 모습처럼 보인다. 서서히 말해가겠지만, <헤어질 결심>은 중층적인 메시지로 이루어진 영화인데, 그 메시지 중 하나는 박찬욱 개인의 고민이다. 섹스의 생물학적 효능에 대해서, 섹스가 부부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정안의 모습은 섹스라는 다소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는 행위를 담담하게 말하기 위해 방어막을 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방어막이 사라지면? 그곳에는 오로지 "섹스하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만이 남는다. 지금까지 박찬욱의 영화를 그런 식으로 소비하지 않은 관객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 않는가. "우리 매주 해야 해. 좋아도 싫어도, 매주 해야 해."라는 대사는 그래서 웃기다기보다 더욱 섬뜩하다. 이 장면은 일차적으로는 정안이라는 인물이 결여하고 있는 사랑의 형이상학을 보여주며, 이차적으로는 박찬욱이라는 감독을 압박하는 관객의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그 뒤에 인서트 되는 장면은 드라마의 대사를 따라하고 있는 서래의 모습이다. "독한 것."


이후 정안은 "또 사건 생각하고 있었지. 질곡동 사건?"이라고 해준에게 묻는다. 그런데 이때 해준의 대답은 어떠한가. 그는 "젊은 외국인 여자와 결혼한 남편이 '사망'한 사건"을, "늙은 남자와 결혼한 젊은 외국인 여자가 '자살'한 사건"이라고 말한다. "늙은 남편이 불쌍하더라고.“ 여기서 늙은 남편은 누구인가.


<장면8. 해준이 서래의 집을 감시하다.>


해준은 서래가 직장으로 다니고 있는 돌봄센터를 방문하고, 그곳의 사장으로부터 서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서래가 간호사 출신이며, 간병인이 환자 대신 돌봄센터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는 정보를 전달 받는다. 사실상 이 장면은 뒤에 나올 여러 가지 설정들을 뒷받침하기 위한, 그야말로 정보전달만을 목적으로 한 장면인데, 불필요한 우연이나 장황한 대사 없이 깔끔하게 설명한 것 같다.


돌봄센터에서의 탐문이 끝난 후, 해준과 수완은 잠복을 시작한다. 망원경으로 서래를 관음하는 장면이 시점쇼트로 제시된다. "무서운 여자에요. 결혼반지를 벌써 빼다니."라는 수완의 대사가 들린다.


해준의 답변.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거야.” 조금 있으면 알게 되지만, 해준은 끝에가서, 잉크처럼 서서히 파도에 부딪힌다. 서래와의 만남은 해준을 해준의 인식 세계 밖으로 이끄는 것이다.


아무튼, 이 장면만 보자면 알게 모르게 해준은 계속해서 서래의 편을 들고 있다. "시집 나오면 하나 사주겠다"며 핀잔을 주는 수완은 기도수가 운영했던 유튜브 채널을 킨다. 이는 "기도수는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 기도수는 그중에서도 암벽등반을 자주 한다. + 기도수는 출입국 관리처에서 일했다"는 정보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21세기적 방식이다. 같은 정보라도 어떻게 전달하는지에 따라 영상의 재미가 달라진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리고 <헤어질 결심>의 사랑에서 21세기의 기술이 중요한 역학을 차지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런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꽤나 재미있는 장면이다. 영상을 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완에게 문자가 온다. 기도수의 손톱에서 누군가의 DNA가 발견된 것이다. 해준은 수완에게 "서래에게 구강상비세포를 체취해야한다고 전해라"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이후 위장상비세포 드립이 나오고, 해준은 '마침내' 홀로 서래를 지켜볼 상황에 놓이게 된다. 수완이 식사를 하러 사라지는 동시에, 해준은 서래가 있는 곳으로 순간이동한다.


이 순간 이동 장면은 그야말로 아름답다. 고전적인 방식에서 클로즈업은 때때로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등장인물의 모습을 보여줄 때 사용된다. <헤어질 결심>에서 해준이 서래의 공간으로 순간이동하는 순간은, 이처럼 고전적인 방식인 클로즈업을 고전적인 속도를 통해 묘사한다. 관음이라는 소제가 꽤나 위험하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러한 고전적 연출은 누군가에게는 저속하게 보일 수 있는 행위에 시각적 품위를 더 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이창>을 방패 삼아, 감각적인 카메라의 움직임이 앞에서 관객은 속수무책이 된다. 그렇게 서래의 공간으로 순간이동한 해준이 하는 행동은 '냄새를 맡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주목해야 할 것. 해준은 '시각'의 세상을 사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후각'을 통해 서래를 느끼는 묘사는 다소 의아하다. 해준은 시각을 통해 세계를 보는 사람이지만, 서래만큼은 숨과 냄새를 통해 감각하는 존재인 것이다. 더욱이 관객인 우리에게는 해준이 느끼는 후각이 청각으로 다가온다. 그러니 시각, 후각, 청각을 모두 이용한 이 장면은, 그야말로 '감각적이다.' 서래를 추적하던 해준은 마치 자신을 쳐다보는 듯한 서래의 눈빛에 화들짝 놀라 현실로 돌아온다. 클로즈업을 했던 바로 그 속도로 서서히, 그러나 조금은 성급하게 후퇴하는 카메라 워크가 일품이다. 그리고 이 다음 장면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해준은 서래에게 '직접' 전화를 건다. 이는 분명 자신이 한 말을 배반하는 행위이다. DNA 채취를 전달하는 것은 수완에게 내린 지시 아니었던가? 시각과 후각으로 서래를 느낀 해준이 마침내 서로의 말, 청각을 통해서도 서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서래와의 통화 장면에서 해준이 다시 한 번 서래의 공간으로 순간이동 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해준은 지금 어떻게든 서래와 '연결'되고 싶어한다. "경찰서로 와달라"는 해준의 물음에 "죽은 남편이 산 노인 돌보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서래의 대답은 우습지만 인상적이다. 우선, 이 말에는 품위가 있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겼다"는 삼국지의 고사를 떠올리게 하면서, 동시에 이러한 태도는 해준이 경찰이라는 직업에 가지고 있는 태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래의 대답에 웃기다는 듯 코웃음치는 해준의 모습이 아니라, 무언가에 놀라는 듯한 해준의 리액션 쇼트를 보여준 것도 이와는 무관하지 않다. 해준은 느끼고 있는 것이다. 처음으로 자기와 닮은, 품위 있는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것을.


<장면9. 서래가 경찰서를 방문하다>


운전을 하고 있는 해준의 차. 수완이 전화기를 통해 말하는 목소리가 겹친다. '잠복은 자기 전문인데, 왜 시켜주 않냐'는 툴툴거림. 해준은 "너가 할머니랑 같이 커서"라는 '핑계'를 대며, 서래를 미행한다. 동시에, 교차 편집을 통해 할머니에게 서래에 대해 질문하는 수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무시하며 노래 '안개'만을 계속 트는 할머니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약간의 웃음을 유발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앞으로의 사건을 위한 초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미행하고 있는 해준의 모습. 해준은 무엇을 기대하며 서래를 따라가는 것일까? 서래가 향한 곳은 뜻밖에도 경찰서인데, 이때 해준은 무언가 허탈하면서도 기쁜 표정을 지으며 웃는다. 각본에는 해준이 수완에게 “누구 만나는 지는 확인해야지”라는 대사가 적혀 있는데, 이로 미루어볼 때, 해준은 서래가 혹여나 공범인 사람과 만날 가능성을 염두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허탈하면서도 기쁜 웃음은, ‘서래가 공범을 만나지 않고 경찰서로 직접 왔다’는 사건에서 느껴지는 양가적인 감정일 것이다. 경찰로서는 슬프고, 사람으로서는 기쁘다.


취조실 설정 쇼트.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어설픈 해준의 거짓말이 관객에게는 우습다. 이후 '구강상비세포'를 체취당하고 있는 서래의 시선에 카메라는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이어지는 쇼트에서 서래가 보고 있는 것이 해준의 손가락, 더 정확히는 해준의 손가락에 끼워진 결혼반지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은근히 그 시선을 의식하고 있는 해준. 이 장면에서 또 다시 인서트로 할머니를 취조중인 수완의 모습이 나오는데, "가끔은 월요일이 일찍 오는 것 같다"는 의미도, 유머도 없는 대사를 말하며 복선을 쌓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카메라는 취조실로 이동한다. "남편과 싸우셨다고요?" 해준이 서래에게 묻고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편집의 매끄러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러니까, 일반적인 한국 영화를 생각해보면, 취조실에서 경찰 중 한 명이 해준에게 다가와 "기도수씨 손톱 밑의 DNA와 송서래 씨의 DNA가 일치합니다."라고 말하고, 놀란 듯한 해준의 얼굴을 보여주고, "송서래 씨 지금 취조실로 데려와. 당장!"이라는 대사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일련의 장면은 극적인 반전을 강조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불필요한 장면이다. 그렇다면 <헤어질 결심>의 편집을 보자. 우선, 영화는 서래가 해준의 결혼반지를 바라보는 장면을 보여줬다. 이때 관객은, "혹시 서래도 해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다음 장면은 "월요일이 일찍 오는 것 같다"는, 관객이 명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의미심장함을 느끼도록 하는 대사가 나오고, "남편과 싸우셨다고요."라는 해준의 대사가 나오며 다시 취조실로 카메라가 이동한다. 이때 관객은 서래가 '정말 범인'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처럼 몇 가지 장면의 연속에서 서래라는 인물에 대해 관객이 느끼는 감정이 시시각각 달라지고, 그것이 서래라는 인물의 미스테리함을 더해준다. 이러한 감정선의 치밀함을 연결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헤어질 결심>에서는 중요하다. "DNA가 일치하는구나!"하는 따위의 정보는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다. 관객이 사후적으로 충분히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편집이 어색한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정말이지 매끄러운 편집이다.


<장면10. 해준이 서래에게 자해와 폭행에 대해 물어보다>


서래는 기도수와 같이 산에 가기 싫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자해를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자해의 상처를 보여주는데, 해준은 “여자 경찰을 부르겠다”라고 말한다. 이 말에 서래는 스스로 치마를 걷고는 "괜찮아요."라고 답하는데, 롱쇼트로 찍힌 이 장면은 굉장히 애로틱한 장면이면서, 당혹스러운 장면이다. 서래가 치마를 걷은 이유는 무엇인가. 1. 정말로 괜찮아서. 2. 해준에게 은연 중에 섹스어필을 하기 위해. 나는 영화를 처음 볼 때는 해준을 이용하기 위한 섹스 어필 중 하나라고 생각했으나, 각본을 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영화에는 없고 각본에만 있는 부분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서래는 “한국에서는 ~합니까?”라는 대사를 꽤 많이 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하나를 뽑아 보자면, 각본을 보면 기도수가 실종된 후 3일 뒤 서래가 신고를 한 것으로 되어있다. 해준은 “사람이 없어진지 3일째에 신고를 한 이유가 뭐냐”고 서래에게 묻는데, 서래는 “한국에서는 사람이 하루만 없어져도 신고를 합니까?”라고 답한다. 각본에는 ‘정말로 궁금하여’라는 설명까지 붙어있다. 그러니까, 서래는 중국 정서와 한국 정서 사이에서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인물이며, 조선족이라는 출신 배경 탓에 그가 겪어온 중국적 정서는 다소 하층 계급적인 그것이다. 따라서 그런 서래가 경찰에게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 치마를 걷어 올리는 것에 불편함을 느낄 이유는 없을 수도 있다. 다만, 이러한 장면이 영화에서는 삭제된 것으로 볼 때, 오히려 서래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의도했을 가능성도 있다.


사진을 찍다가 미지에게 '발각'된 해준은 어색한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쉰다. 해준에게 이것은 '품위 없는'일이니까. "괜찮아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서래의 모습은 우스우면서도 그녀가 무언가 안개에 싸인 인물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여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이어지는 쇼트는 해준과 서래의 대화다. "남편 앞에서 자해를 하니, 그가 말을 알아 듣던 가요?" "마침내." "남편이 자해한 것을 보고 뭐라고 하던가요?" "(뜸을 들이고는) 독한 것." 이 리액션 쇼트들에서 관객은 무엇을 느끼는가. 첫번째 쇼트. "마침내."는 관객을 일정 부분 안심시킨다. 앞의 장면에서 나왔던 "마침내, 죽을가봐."의 '마침내'가 한국어를 잘 모르는 사람의 실수일 수도 있다는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쇼트의 "독한 것."은 다소 의문스럽다. 이 또한 유머러스한 장면이지만, 관객은 앞서 서래가 드라마를 보면서 '독한 것'이라는 말을 내뱉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관객의 추측은 어떻게 흘러가는가, 첫번째 쇼트에서 안심하고는, 두번째 쇼트에서 의심을 시작한다. 마치 <유주얼 서스팩트>의 한 장면처럼, 서래가 지금 언젠가 보았던 단어들을 연결시켜서 소설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 이 의심은 오직 관객만이 느낄 수 있는 의심이다. 하지만 해준은 서래가 어디서 '독한 것'이라는 단어를 배웠는지 알지 못한다. 바로 여기서부터 해준의 시선으로 진행되던 영화는 해준과 관객을 분리시키기 시작한다.


"산이 그렇게 싫으세요?" 해준은 이미 서래가 폭행을 당했다는 증거까지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경찰로서, 해준은 서래의 논리를 파괴하기 위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산이 그렇게 싫으세요?" 하지만 동시에, 이 질문은 처음으로 사건에 대한 질문이 아니다. 영화에서 처음으로, 이 질문은 '서래 자체'에 관한 질문이다. 이를 테면 소개팅에서 만난 두 남녀가 "산이 좋으세요, 바다가 좋으세요?"라고 물어보듯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은 서래의 답이다. 그녀는 과연 어떻게 이 함정을 빠져나갈 것인가, 혹은 이 감정을 이용할 것인가.


취조실 설정 쇼트. 서래가 왼쪽. 해준이 오른쪽에 앉아있다. 이 쇼트에서 처음으로, 서래는 중국말을 쓴다. 화면 중앙에 놓인 스마트폰과 서로의 눈빛만을 응시하는 두 사람. 이때, 해준과 관객은 서래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일차적으로는 해준이 느끼는 당혹감의 감정이 관객에게도 전해진다. 번역기가 말하기 시작한다. "공자님이 말하길, 지혜로운 사람은 바다를 좋아하고,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인자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바다가 좋아요."라는 다소 뜬금없는 대사. 이에 대한 해준의 반응은 어떤가. 서래의 이 답변은 중국 선불교에나 나올 것 같은 선문답이다. 경찰인 해준으로서는 납득할 수 없다. 서래의 말은 앞에서 말했던 "나는 산이 싫다"의 동어반복이다. 그러니 형사로서 해준은 이 답변에 납득해서는 안 된다. 산에 가기 싫은 것이 자해로 이어질 수 있는지, 자해가 아니면 폭행인지, 폭행이라면 기도수에게 원한이 있는지, 원한이 있다면 기도수를 죽였는지. 형사의 사고는 이렇게 흘러가야 한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해준은? 공자를 인용하는 '품위 있는' 답변에 해준은 "나도"라고 실토한다. 재미있는 것은, 해준 스스로가 이러한 자신의 모습에 당황한다는 것이다. 잠시 인간 해준을 실토했던 그는, 다시 경찰 해준으로 돌아와 묻는다. 해준은 서래가 기도수에게 폭행당한 사진을 보여주며, "산에 가기 싫다고 했더니 이때는 (기도수가) 때렸던" 것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서래의 답변은? 서래는 "기도수 씨는, 제 이야기를 들어준, 단일한, 사람입니다."라고 답한다. 이 질문이 함축하는 것은 무엇인가? 서래의 답변이 의미하는 것은 "기도수는 나를 이해해준 유일한 사람이다. 그런 기도수를 나는 사랑한다. 따라서 내가 기도수를 죽일 리 없다. 폭행 사진? 이것은 그냥 부부 사이의 싸움이다."이다.


하지만 정말로 이상한 것은 해준의 반응이다. 해준은 기도수가 서래에게 행한 폭행에 대해서 더 묻지 않는다. 오히려 서래의 답변을 들은 해준은 웃는다. 그것은 '단일한'이라는 단어의 사용 때문이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갑자기 근엄해지며, 의미는 정확하지만 어딘가 이상한 한국말을 뱉는 여성의 모습을 귀여워하고 있다. 이러한 해준의 모습을 보고 난 서래의 리액션 쇼트가 정색하는 표정은 것은 이 둘 사이의 간극을 잘 보여준다. 서래의 표정이 굳은 까닭은? 서래는 해준의 미소를 자신의 주장이 헛소리라고 생각하는 형사의 냉소로 보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자 해준의 리액션 숏은 어떠한가. 해준은 황급히 사과를 한다. "웃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 말을 들은 서래의 반응은? 그녀도 웃는다. "나도 한국말이 어색할 때, 웃어요." 서래는 해준이 자신이 생각한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웃는 것이다. 이순간은 다소 미묘하다. 해준에게는 서래라는 인물이 가진 고풍스러운 매력이 형사로서의 자아를 압도하는 순간이고, 서래에게는 예상치 못하게 품위있는 형사를 만난 순간이다. “한국말이 어색할 때 웃는다”는 말은 앞서 수완, 미지와 함께 ‘운명’이라는 단어를 말하며 웃는 서래를 보았던 관객마저 무장해제 시킨다. "그랬구나, 한국말이 서툴 때 웃는 거였구나." 이 장면에서 해준, 서래, 관객은 서로를 향한 의심을 순간적으로, 그러나 완저히 거두어 버린다. 우리들이 집중하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상대방이다. 그러니 해준의 다음 행동이 추가적인 질문이 아니라 "저녁, 시키겠습니다."라는 대사인 것은 자연스럽다.


<장면11. 해준과 서래가 저녁 식사를 하다>


초밥이 도착한다. "초밥은 아무거나 먹고 싶지 않는"다는 사람이. 고급 스시를 배달시켜 서래를 대접하고 있다. 아마 해준은 자신이 "초밥은 아무거나 먹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서래에게 고급 초밥을 대접한 것이고, 이 모든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자는 관객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제 관객은 해준과 동일시 되지 않는다. 관객은 심판으로 물러나고, 두 선수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서스펜스를 느낀다. 서스펜스? 그렇다. 히치콕이 말했듯, 서스펜스란 등장인물들은 모르지만, 관객은 알고 있는 무언가이다. 이를 테면, 여러 사람이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다. 그 식탁 밑에 폭탄이 있고, 오로지 관객만이 그 정보를 알고 있다면? 관객은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이 마피아이든, 대통령이든, 우선은 긴박함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헤어질 결심>은 이 순간부터 일정 부분 서스펜스극으로 전환된다. 초밥을 먹는 장면은 다음과 같이 구성이 되어 있다. 고급 초밥을 보여줌 - 서래가 스시야마를 목격 - 누군가의 손이 물고기 모양의 간장을 쭉, 짜냄 - 서래가 초밥을 삼킴 - 서래가 난생 처음 먹어보는 맛을 느끼는 표정을 지음 - 수완이 취조실을 관찰하는 공간으로 들어 옴 - "저거 스시야마 초밥이야? 경비 처리 되는 거야?" 책상 쾅. - 하나만 비어있는 물고기 모양 간장통. - 식탁을 치우는 장면. 나는 이 장면의 연속에서 굳이 간장이 왜 등장했을까. 간장을 짜는 모습과 하나만 비어있는 간장의 모습을 왜 보여주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나의 생각은 이렇다. 간장을 짜는 것은 일종의 사정이다. "이런 미친 변태 같은!" 잠시만 양해를 구한다. 우선 박찬욱 감독님께 양해를 구하자면, "어쨌은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영화"이다. 간장이 쥐어 짜지는 순간의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 그리고 하나의 간장만 짜졌다는 점이 나를 매혹시켰다. <헤어질 결심>은 두 번 반복되는 영화라고 나는 말했는데, 영화의 말미에서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나의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서래의 말이 거짓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대사는 이 간장 장면과 대구를 이룬다. 짜여진 간장은 해준의 간장이고, 짜여지지 않은 간장으 서래의 간장이다. 극중 1부에 해당하는 이 부분에서, 서래는 해준에게 호감을 느끼고는 있지만, 그녀에게 해준은 어디까지나 '무죄를 입증 해 줄' 갑이며, 이용대상이다. 반면 해준은? 해준은 1부 내내 서래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애를 쓴다. 피의자를 구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형사. 그들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이른바 '간장 쇼트'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짜여진 간장이 해준의 것이라고? 그런데 영화의 종말부에서 서래가 호텔에서 해준의 녹음파일을 듣는 장면을 생각해봐라. 그때 서래는 시마스시를 먹고 있고, 간장은 짜여져 있지 않은가? 그러니 취조 장면에서 짜여진 간장도 서래의 것 아닌가?” 그러나 나의 답변은 서래가 해준의 행동을 모방했으며, 간장을 짰다는 사실 자체가 서래가 해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헤어질 결심>에서 해준은 서래의 남편들의 행동을 모사한다. 서래라고 그렇지 않을 이유는 없다. 짜여진 간장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정서적인 느낌도 있지 않는가? (확인 결과 간장은 해준이 짠 것이 맞다. 해준의 간장 접시에만 간장이 있다.)


초밥을 다 먹은 후, 둘은 식탁을 치우고 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부부의 행동 같이 보인다. 각자 치워야 할 것을 치우고 닦아야 할 것을 닦는다. 이때, 서래의 손이 넘어오고 해준이 서래에게 걸레를 건네준다. 정안과 준이 같이 무언가를 정리하는 장면이 이때까지 있었던가? 이 쇼트는 마치 둘을 유사 부부처럼 보이게 찍혔다. 또한 서래는 식탁 건너편에, 해준은 관객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객이 느끼는 둘의 유사 부부와 같은 모습은 해준의 무의식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서래에 대한 감정과 대응된다.


해준이 서래에게 따라오라고 말한다. 서래는 이제 취조가 끝났나 싶어 짐을 챙긴다. 하지만 해준은 말한다. "다시 돌아올 거에요." 서래는 그의 말이 순간 갑갑하다. 그녀에게 취조는 빨리 끝나야 할 하나의 시련이니까. 하지만 동시에, 해준이 '굳이 짐을 챙길 필요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에 은근한 호감을 느끼는 것처럼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곧바로 쇼트는 해준이 칫솔을 꺼내 치약을 짜주는(‘해준’이 ‘짜준다’. 이것 또한.....미안하다....) 해준의 모습이 보인다. 방수 밴드를 친절히 설명해주는 해준과 "간병인은 방수 용품 많이 준다는" 서래의 대답이 오가고, 양치 후 다시 취조실로 오라는 해준의 말이 화면에 겹치지만, 관객의 시선이 집중되는 곳은 의심의 눈초리, 혹은 당혹의 눈초리로 서래와 해준을 바라보는 수완이다.


서래가 양치하고 있는 모습을 롱숏으로 잡는다. 빨간 벽돌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거울에 반사된 파란 옷을 입은 서래가 보인다. 서래는 파란 옷을 입고 초록색 벽지로 된 공간에 서있다. 파란색으로도, 초록색으로도 보이는 청록색 옷을 입은 여인처럼. 히치콕의 <현기증>에서부터 시작된 '초록색 여성'의 이미지. 유령과 같은, 상대를 매혹시키는 귀신 같은 여성의 이미지가 존재하고, 관객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거울에 비친 서래를 간신히 바라본다. 이 쇼트는 관객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도대체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여자.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는 여자. 그 다음으로 쇼트는 거울을 바라보며 향수를 뿌리는 서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 명의 사람으로서, 화장실에서 향수를 뿌리는 행위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기도수가 낸 상처에, 해준이 준 방수밴드를 붙이고, 그 위에 향수를 뿌린 후 입김을 불어넣는 장면은? 정말로 방수 밴드인지 확인하는 서래의 간단한 호기심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래가 해준이 준 방수밴드에 숨결을 불어넣는다는 것, 그리고 다음 장면을 생각해보면 이 장면도 굉장히 에로틱하다. 영화는 곧바로 양치를 마친 서래를 취조하는 해준의 모습을 보여준다. 해준은 어디선가 맡아지는 향수 냄새에 신경이 쓰이는 듯하다. 곧바로 머리를 숙이며, 냄새를 더욱 잘 맡기 위해 깊게 호흡한다. 이어지는 장면은 약간의 플래시백으로,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고 향수를 뿌릴 당시의 서래의 모습이다. 여기서 서래는 자신의 손가락에 결혼반지가 없는 것을 확인한다. 장면은 다시 현재로 돌아와 한 번 더 냄새를 깊게 호흡하는 해준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 앞에 서래가 앉는다. 서래가 낀 결혼반지가 클로즈업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던질 질문은, 왜 서래는 결혼반지를 다시 끼고 왔을까, 이다. 나는 이것이 서래가 1부에서 해준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삼고 싶은 장면이다. 굳이 서래가 결혼반지를 낀 이유는? 서래는 '구강상비세포'를 체취당하며 결혼반지를 보았다. 해준은 그것을 자신을 향해 서래의 호감의 표시로 (무의식적으로나마) 느꼈을 것이나, 사실 서래의 생각은 달랐을 것이다. "아차!" 결혼반지를 빼놓는 행위가 의심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서래는 황급히 화장실에서 결혼반지를 다시 끼운 것은 아닐까. 이는 분명 해준에게 의심 받지 않기 위한 행위이다. 그렇다면 해준이 준 밴드 위에 불어넣는 숨결은? 냄새를 통해 해준에게 자신을 매혹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서래의 마음이면서, 동시에 그 아래에 위치한 해준에 대한 서래의 관심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와 해준은 스스로하고 있는 행동의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바로 그 점이 모든 것을 교차 편집을 통해 목격할 수 있는 관객이 서스펜스를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해준이 서래의 냄새를 깊게 맡은 후, 최조를 시작하고 바로 이 지점에서 관객은 살짝 당황한다. 영화는 해준은 정말로 서래의 반지 유무에 대해서 질문하거나 관심을 기울이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는 해준이 이미 서래라는 존재에게 스며들고 있다는 증거다. 이때 해준이 냄새를 맡는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잘 보아야 하는 사람'인 해준이, '눈을 감은 채 냄새를 맡고' 있는 이미지는 얼마나 감각적인가. 왜 해준은 ‘갑자기 결혼반지를 끼셨네요?“라고 묻지 않는가. 아니, 못하는가.


 <장면12. 해준이 서래를 계속해서 추궁하고, 질곡동 살인 사건에 대한 제보가 들어오다>


취조실 설정 쇼트. 해준과 서래가 롱 숏으로 담긴다. 카메라에서 멀어진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피의자와 형사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해준이 묻는다. “불법 밀입국자들 중, 당신만 한국에 남은 이유가 뭐냐고.” 이 질문은 기도수와 서래의 결혼 관계가 사랑에 의한 것이 아님을, 그리고 사랑에 의한 관계가 아닌 결혼인 이상, 서래가 기도수를 살해할 가능성이 있음을 넌지시 물어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대답이 뜻밖이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니까요.” 그리고 이른바 ‘만주조선해방군’에서 활동한 서래의 외조부에 대한 쇼트들이 이어진다. 각본을 보면, 계봉석 씨는 서래의 혈육은 아니다. 서래의 어머니는 계봉석 씨에게 입양되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에서 “한국 영화가 외국인을 다룰 때, 어떻게든 한국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물을 수 있는 질문은, 그렇다면 왜 굳이 ‘만주조선해방군’이라는 소제를 끌어왔는지에 대한 것이다. 왜 서래의 외조부가 이른바 ‘잊힌 독립운동가’로 그려지는가. 잠시 우회하여 이 질문에 답해보자. 각본에서는 “이혼한 화교 여자가 한국에서 혼자 사는 것”이라는 대사를 서래가 직접적으로 하는 부분이 있다. 이 장면은 서래가 철썩이에게 맞는 장면에서 철썩이의 어머니에 대하여 말하며 나오며 영화에서는 삭제되었다. 아마 너무 직접적으로 서래의 계급적 환경을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이혼한 화교 여자”라는 단어는 각본에서 꽤 많이 변주되어 나타난다. 그러니, 우리는 탕웨이라는 배우의 힘에 의해 서래라는 인물을 잃지 말아야 한다. 서래는 한국에 불법 이민을 와서, 기도수 덕분에 살아남았지만 폭행을 당했고, 간병인으로 생활비를 벌고 있다. 문화적, 계급적으로 한국 사회와 단절된 그녀이지만, 그녀는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누구보다 한국말을 고풍스럽게 사용하며, 계봉석이 남긴 ‘산해경’을 직접 집필할 정도로 핏줄에 대한 자긍심도 높다. 이러한 서래의 이미지와 ‘잊힌 독립운동가’라는 이미지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것은 쉽다. 과거의 영광, 잊혀진 품위, 망각된 존재.  


그렇기 때문에, 해준이 서래의 핏줄을 알기 위해 서래의 스마트폰을 잡고,  잠시 겹친 손가락에 서로가 놀라는 모습은 관객에게 일종의 엑스터시를 선사한다. 이때 주차를 위해 들어오는 차의 조명으로 화면을 순간적으로 밝히는 것은 중요하다. 이는 형사인 해준에게는 기도수와 서래의 관계에 대한 해명(서래에게 기도수는 한국에 있을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사람)이면서, 동시에 인간인 해준에게는 서래에 대한 관심(그녀는 태생부터 남다르다)을 말 그대로 ‘밝혀주는’ 장면이다.


주차를 위해 들어오는 자동차의 조명이 사라지자, 다시 한 번 배경이 어두워진다. 그리고 영화는 해준에게 ‘당신은 경찰’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려는 듯 또 다른 사건을 배당한다. 그 사건은 영화의 초반에 언급되었던 질곡동 사건의 용의자 중 한 명이 ‘오빠 pc방’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해준은 서래에 대한 관심과 의문을 동일하게 남긴 채, 현장으로 이동하고, 카메라는 취조실에 홀로 남겨져 ‘오빠 pc방’을 검색하고 있는 서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건은 이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장면13. 해준이 용의자를 추적하다>


해준과 수완이 용의자를 체포하기 위해 계단에서 대기하고 있다. 초록빛 조명과 지나가는 차에서 비춰진 붉은 조명이 상황의 무거움과 기괴함을 더한다. 총까지 장전하며 긴장감을 높인 다음, 수완이 굴러 떨어지고 강렬한 현악기 소리와 함께 추격전이 시작된다. 이 장면은, 장면 자체가 고풍스럽다. <아가씨>에서 보여주었던 강렬함의 극치가, 이런 사소한 쇼트에서 구현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박찬욱이 도대체 어느 정도의 경지까지 도달한 것인지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도망치는 용의자가 사람을 밀치고, 그 사람이 서래의 자동차에 부딪힌다. 서래 또한 오빠 c방으로 온 것이다. 그 후, 영화는 도망치는 용의자를 핸드핼드로 추격하며, 미지의 계봉석 씨에 대한 설명을 나레이션으로 배치한다. 그중 의미심장한 말은 ‘일본군 장교의 목을 물어뜯은’ 만주의 살쾡이‘라는 계봉석에 대한 설명이다. 이후 ‘철썩이(서현우)’의 손목을 포크로 찌르는 장면에서, 이른바 ‘살쾡이의 피’가 서래에게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반복된다. 이 영화는 어떤 소재도 두 번 반복하는 영화다.


해준과 수완이 용의자를 추격한다. 수완이 계단의 중간에서 넘어져 눕는 장면은 부감으로 잡는 숏이 기괴해서 선명히 기억에 남는다. 어정쩡한 자세로 용의자를 추격한 해준은 옥상에서 그와 결투를 해야한다. 이때, 해준은 칼을 막는 ‘방패’ 같은 장갑을 꺼내고, 용의자는 ‘칼’을 꺼낸다. 이 장면에서 해준은 상대방을 먼저 제압하기보다, 상대의 공격을 막고,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다소 신사적인 방법으로 범인을 체포한다. 그런데 조금 의미심장한 것은, 신사적으로만 보였던 해준의 수법이 사실이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폭력인 주먹질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해준은 품격있는 잔혹한 형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래가 이 장면을 목격한다는 것이다. 자동차 깜빡이등이 난간의 모형에 노란 빛을 더해주고, 반짝거리는 프레임 안으로 해준의 모습이 보인다. 서래가 해준의 신사적 태도, 그리고 진압 순간의 폭력을 목격하는 것은 중요하다. 지금까지 섹스어필을 한 쪽이 항상 서래쪽에 있었다면, 이 장면은 폭력을 통해 해준이 서래에게 섹스어필을 하는, 남성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런데 잠깐, 서래는 왜 해준을 따라 왔는가? 조금 과격하게 해석하자면, 해준이 서래를 미행한 적이 있으므로, 서래도 해준을 미행해야 한다는 <헤어질 결심>의 형식적 강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서래의 감정선을 따라가자면, 지금 서래가 자신의 범죄를 은닉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해준이 어떤 인간인지를 알아야 하고, 그가 어떤 인간인지 알기 위해서는 그를 감시 해야 했을 것이다. 지금 해준과 서래는 서로가 서로의 본 모습을 보기 위해 감시하고 있다. 그리고 서래는 해준의 어필에 매료된다.


<장면14. 해준과 수완이 범인을 심문하다>


수완이 용의자를 심문하고 있다. <살인의 추억>을 연상시키는 심문 장면이 나오려는 찰나, 해준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해준의 심문 방식을 보면, 그가 어떤 인간인지가 다시 한 번 드러난다. 수완은 ‘전통적’이라고 해야 할 심문으로 용의자가 실토하게 만든다면, 해준은 직감으로 상대의 마음을 파고 들어, 용의자가 스스로 ‘실토’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서래는 영화가 끝날 때야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실토한다는 점이다. 영화를 다시 볼수록, 해준의 태도 하나하나가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왜일까. 하여간, 해준은 심문을 통해 질곡동 살인사건의 진범이 ‘산오’라는 것을 알게 된다. 중요한 장면은 용의자가 산오에 대해 진술할 때,  ‘걔, 자살충동이 있어요’라는 말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서래의 쇼트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말한 <헤어질 결심>의 형식적인 반복 강박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서래는 결국 자살하는 사람이니까.


<장면15. 서래가 해준을 회상하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서래가 의문에 찬 표정으로 앞을 응시하고 있다. 그 다음 플래시백으로 용의자를 체포하던 당시의 해준의 모습이 보인다. 서래는 의문스러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피 묻은 자신의 손을 어색하다는 듯 감추는 해준의 모습이다. 이 작은 배려가 왜 서래에게는 의문의 대상인가. 서래는 해준이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신사적인 태도와, 용의자에게 보여주고 있는 폭력적인 태도 사이의 간극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감추어진 모습을 들여다보는 감각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후 해준이 서래의 집을 첫 방문 했을 때, 각본에는 "당신의 아내는 당신이 밤마다 누구의 집을 쳐다보는지 아나요?"라는 대사에 "당신이 다른 사람을 땅바닥에 눌러서 주먹으로 열네 번 때리는 모습, 당신의 아내는 봤나요?"라는 말이 추가되어 있다. 서래로써는 해준의 진면모를 목격한 것이고, 더욱이 용의자에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남자가 자신에게 보이는 품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서래에게 해준은 이용해야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 장면 이후로부터, 해준에게는 어떠한 의미가 더해지게 된다.



<장면16. 해준이 서래를 감시하기 시작하다>


흡연실 상황 쇼트. 수완과 해준이 언쟁을 나누고 있다. 해준은 수완의 ‘비신사적’인 태도를 나무라고, 수완은 나름대로 항변한다. 이상적 수사를 추구하는 형사와, 본능적 수사를 추구하는 형사가 대립한다. 그러던 와중 수완이 던지는, 아니, 아마 관객이 해준에게 던지고 싶었던 한 마디가 나온다. “그렇게 젊고 예쁜, 외국인 여자가 왜 그런 늙은 남자와 결혼했을까?” 이는 서래와 해준의 관계를 보고 있는 관객도 마찬가지로 묻고 싶은 말이다. 만주조선해방군이고, 자해고 뭐고, 한 번 자라난 편견에 기인한 의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완의 대사가 중요하다. “이건 역차별이라고요. 만약 그 여자가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였다고 생각해봐요. 바로 잠복 들어갔을 거잖아요? 잠복과 잔소리가 특기이면서.”  수완의 역차별 발언은 질투. 그러나 동시에 해준에게 타당성 제공.


망원경을 들고 어딘가를 바라보는 해준의 모습이 클로즈업 된다. 해준은 지금 서래의 집 주변에서 ‘잠복’하고 있으며, 스마트 워치를 통해 ‘잔소리’한다. (“방을 어지럽히고, 저녁은 또 아이스크림”) 수완의 대사 다음에 바로 이러한 모습의 해준을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건 일종의 정당성의 문제다. 해준의 마음 속에 서래를 지켜보고 싶은 욕구가 없었을까? 수완은,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해준에게 정당성을 부여한 셈이 된다. 수완의 말 덕분에 해준은 ‘타당하게 공무를 집행’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행위는 수완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다른 피의자들과 똑같이 대해줌으로써 서래의 결백을 증명하겠다는 것이다. 해준은 스마트 워치에 서래의 일상을 기록한다. 항상 사건 현장에서 사용하던 스마트 워치, 그러나 정작 녹음되는 내용은 오로지 서래의 일상과 관련된 내용인 이 상황. 자기 스스로를 알지 못한 채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해준의 모습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또 다시 인상 깊었던 장면, 이른바 ‘재떨이 장면’이 나온다. 위태롭게 걸려있는 담뱃재가 툭, 하고 떨어지고, 카메라는 서서히 줌 아웃하며 재떨이를 받쳐주고 있는 해준의 모습을 보여준다. 해준은 스마트 워치에 녹음을 하는 목소리로 나직하게 내뱉는다. “우는구나, 마침내.” 해준에게 이 대사는 어떤 의미인가. 이건 또 다른 정당성에 대한 문제이다. 해준은 서래가 범인이 아니라고 (스스로는 모르지만) 믿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사회의 통념을 만족시켜줄 ‘피해자스러움’이다. 통념은 그들의 관계를 갈라놓지만, 통념의 아래에서 그들은 사밀한 감정들을 느낀다. 이 눈물이 수완의 말을 반박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인 셈이다. 그 점에서 해준은 이 순간 일시적으로나마 서래의 무죄를 확신한다. 서래의 무죄를 내적으로 확신한 순간, 의자가 서서히 젖혀지고, 이 장면이 차석을 뒤로 눕히는 해준의 모습과 이어지며, 그는 ‘마침내’ 잠에 든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해준에게 잠을 가져다 준 사람. 이 순간부터 서래는 해준의 삶에서 떨어질 수 없는, 떨어져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그 다음 숏은? 숏은 다시 서래의 집으로 돌아오고, 서서히 웃고 있는, 하지만 슬프게 우는 것도 같은 서래의 얼굴을 보여준다. 이 웃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새 희망을 찾아 한국에 왔지만, 결국 이러한 상황까지 온 자신에 대한 한탄? 수사의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 그것이 아니면, 애써 피 묻은 손을 숨기려 하던 ‘현대인 치고 품위는’ 해준에게서 느낀 호감?


 <장면 17. 서래가 잠복 중인 해준을 발견하다>


고양이 사료. 서래가 아파트 단지에 있는 고양이 사료통에 사료를 붓는다. 집으로 돌아오던 서래는 집 앞에 주차된 해준의 차를 알아본다. (해준의 차를 알아본다는 것부터 의미심장하다) 서래는 해준에게 다가간다. 자고 있는 해준의 모습. 이 모습을 본 서래가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무엇인가. 사진을 찍는 일이다. 이것은 용의자를 진압하는 해준을 목격한 일에 이어서, 서래의 두 번째 관음이다. 서래가 찍은 사진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해준의 리액션 쇼트와, 그에게 한 손을 뒷짐 진 채, 다른 한 손을 흔들며 “굿 모닝”이라고 말하는 서래의 모습. 이 상황만을 본다면 해준은 서래가 자신이 자는 모습을 찍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러니 해준의 자는 모습을 찍은 사진은 서래의 무기이자 사심이다. 당신이 모르는 곳에서 당신을 지켜본다는, 인간이 가진, 그리고 영화의 본질인 관음의 측면과 ‘형사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증거를 남기려는 피의자로서의 무기의 측면. 인물의 행동과 그 동기는 서로 합응하면서도 서로를 배반한다.


“굿모닝.”이라는 해준의 말과 함께 당황하는 수완과 미지. 해준의 성격 중 특이한 것이 있다면, 그가 서래의 부품들을 모방한다는 것이다. 그는 서래의 말을 모방하고(“마침내”, 뒤에 나오는 월요일 할머니를 돌보겠다는 말을 “산 노인 돌보는 일이~”라는 텍스트), 까마귀 깃털, 보드카, 심지어는 연정 상대를 마주할 때 손가락을 뚜두둑 거리는 서래의 두 번째 남편의 행동까지 모방한다. 이미, 해준에게 서래는 이러한 존재다.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 주변부에 있는 소품이라도 소유하고 싶은 사람. “왜 안 하던 짓을 하냐”는 수완의 말에 ‘잠을 잘 서’라고 답하는 해준의 답변은 이중적이다. 그는 실제적인 잠을 잘 잤고, 동시에 정서적으로 서래와 ‘잠을 잘 잔’ 것이기 때문이다.


해준은 서래가 고양이 사료를 놓는 곳에서 죽어있는 까마귀의 시체를 만지고 있다. “잠을 잘 자서 그래”라는 해준의 말 뒤에 곧바로 이 쇼트가 들어온 것은 이상하다. 해준은 서래가 자신의 사진을 찍자 일어나지 않았는가? 그러니 시간적으로 해준은 서래가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을 목격한 적이 없다. 그러니 해준이 고양이 밥통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아침에 서래가 해준을 찍고 – 낮에 해준이 “굿 모닝”이라는 인사를 하고 – 밤에 해준이 고양이 밥통을 서성이는 장면은 마치 이 모든 일이 하루 동안 일어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하루 안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서래가 점심과 저녁에도 고양이 사료를 챙겨주어야 한다. 그러니 주어진 정보만으로 판단한다면, 해준은 최소 이틀 동안 서래를 바라본 것이 된다. 관객은 이미 서래가 고양이에게 밥을 준다는 사실을 알기에 해준이 그 공간을 서성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동시에, 영화내적으로는 해준이 지속적으로 서래의 주변에서 잠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매끄러우면서도 효과적인 편집이다.


서래의 자동차가 등장하고, 해준은 어디론가 숨는다. 서래가 고양이 사료 쪽으로 다가오고, 까마귀 시체를 발견한다. 서래는 자신의 먹이를 먹은 고양이가 은혜를 갚은 것이라 생각한다. 이어지는 서래의 독백은 해준의 스마트 워치에 의해 녹음 되고, 번역기에 따르자면, “나에게 은혜를 갚고 싶다면,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주세요. 난 좀 갖고 싶네.”라는 대사다. ‘은혜 갚은 고양이/개/학/개구리/소/말/도깨비’ 시리즈를 우리는 어린 시절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다. 서래는 그 시간 속에서 사는 사람 같아 보인다. 예스럽지만 촌스럽지는 않은, 오히려 인물의 아우라 덕분에 고풍스러움이 더해지는 사람. 해석된 서래의 대사를 들으며 해준이 슬며시 웃는 것은, 그녀가 자신과 같은 종족임을 증명하는 또 다른 증거를 발견한 반-형사, 반-인간으로서의 행복이 아닐까. 그런데, 이 장면에서 나오는 독백이 의도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서래는 이미 자신이 감시당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서래에게 해준과의 관계는 무죄 입증을 위한 도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작품의 1부에서 해준에게 서래의 본질은 피의자인 것처럼 말이다. 해준과 서래가 서로를 향해 느끼는 감정은 그 본질이라는 나무 뿌리 주변에 피어난, 아주 이상한 독버섯 같은 것이다. 그러니 이 장면은, 해준의 음성파일과 서래의 사진은, 서로 ‘자신은 모르는 자신의 모습’을 하나씩 교환하는 로맨틱한 장면일 수도, 아니면 해준이 서래의 함정에 완벽히 빠지는 과정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장면18. 수완이 서래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폭로하다>


또 다른 하루를 “굿모닝”으로 시작하는 해준. 그러나 황급히 자신의 사무실을 가리키는 미지의 모습에 약간은 당황한 듯하다. 해준이 사무실로 들어서고, “굿모닝입니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이자 경찰 고위 간부로 보이는 인물이 등장하여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심지어는 간부는 빨리 기도수 사건을 자살로 처리하고, “다른 건으로 빨리 치고 올라가라”고 소리치기까지 한다. 이 말을 내뱉었다는 사실에서, 그 고위 간부는 해준에게 하나의 구원과 다름 없다. 드디어, 서래는 피의자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 장면을 무뚝뚝하게 촬영한 점은 왜인가. 그러니까, 일반적인 한국 영화라면 고위 간부가 등장하여 “그 사건은 빨리 마무리해”라고 해준을 토닥거리고, 해준은 그런 간부의 발언에 내심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헤어질 결심>에서 간부는 해준에게 화를 내며, 간부가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는 장면은 롱숏으로 찍혔다. 이는 무언가 삭막하고,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는 느낌을 주는데, 그 이유는 당연히 이제는 더 이상 해준이 서래를 만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아가씨>를 잠시 빌려오자면, 그 간부는 해준에게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인 것이다. 해준은 그동안의 기억과 감정을 지우듯, 책상을 티슈로 닦기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도시락을 먹고 있는 식탁으로 화면은 전환된다. 순간 관객은 ‘또 다른 서래와의 식사인가?’하고 기대하지만, 이내 화면은 한식 도시락을 먹고 있는 미지와 해준의 모습을 롱숏으로 보여준다. 관객은 여기서 약간의 실망감을 느끼는데, 도시락이라는 소제가 두 번 반복되면서, 관객이 무의식적으로 당황, 심지어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드는 이 연출은, 해준이 이제 자신이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와야 함을 보여준다. 더 이상의 취조실 로맨스는 없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는 것일까? 이때, 수완이 무언가 특이한 것을 들고 온다. 그것은 서래가 중국에서 살인 용의자로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 살인의 대상이 친모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이다. 하지만 해준은 질곡동 살인사건의 용의자의 여자친구들을 다 만나보았냐며, 보고서나 작성해오라고 수완에게 맞받아친다. 여기에 수완이 너무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그 모습을 본 미지는 도시락을 들고 일어나 자리를 옮긴다. 나는 이때 미지가 자리를 옮긴 이유(더군다나 식사가 시작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는 이미 무죄 상황까지 온 서래에게 집착하는 수완의 모습에 질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해준 역시 중국에서 살인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기도수를 살인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하지만, 그 후 자료를 내려다보는 앙각 장면을 추가함으로써, 그 역시 무언가 석연치 않음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엄마를 죽였다고요.”라는 대사가 섬뜩함을 더한다. 그러나 뒷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해준에게 서래의 모친 살해 혐의는 피의자성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서래를 만날 핑계가 된다.


<장면19. 해준이 서래의 집을 방문하다>


해준이 베란다에서 서성이고 있다. 이후 정안이 컴퓨터로 일을 하고 있고, 롱패딩을 입은 해준이 방안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이어진다. “뭐하러 나갔다 오냐”는 정안의 질문에 “나는야 바다의 사나이!”라고 넉살 좋게 받아치는 해준. 그러나 이 말이 연극이라는 것은 뒤이어 나오는 “아, 담배피고 싶다.”는 대사에서 드러난다. 말했듯이, 해준은 서서히 서래의 주변부를 모방하고 있다. 흡연실에서 수완을 나무라면서도 피우지 않았던 담배를(심지어 수완은 그러한 해준을 도발하기라도 하듯, 담배를 두 개 물고는 도발하듯이 피운다) 문뜩 이 순간 피우고 싶다고, 그의 아내의 면전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런데, 이 대사에 대한 정안의 반응이 재미있다. “불타는 생각을 잘라야” 한다며, 정안은 약을 처방하기 위해 이 주임에게 전화를 건다. 정안은 ‘왜’ 해준이 담배를 피우고 싶은지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해준의 모든 행동과 의지를 이론적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이론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뿐이다. 말하자면, ‘남편 완전 안전’하도록 기술적 조치를 취하는 엔지니어의 모습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미 사고는 일어났다. 정안이 자리를 비우자, 해준은 서래에게 수안이 보여준 중국 문서를 보낸다. 그리고는 약간의 망설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의 차이는 무엇인가. 전자가 형사의 감정이 실린 추궁의 질문이라면, 후자는 당신의 생각에 따라 내가 무언가 조치를 취해 줄 수 있다는 무의식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문장부호 하나가 서래의 마음을 자극할까 조심하는 해준의 성격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서래의 대답은 뜻밖이다. “우리 집으로 와요.” 이 말도 참 재밌다. 왜 ‘우리 집’인가? 한국어에서는 ‘우리 집’이라는 말이 ‘우리 가족이 사는, 곧 나의 집’으로 쓰인다. 하지만 단어의 외향적인 뜻만 본다면, ‘해준과 서래의 집’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러한 사소한 소품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허, 이 사람이”라는 대사와 엑셀을 밟으며 면도를 하고 있는 해준의 모습이 이어진다. 안개는 이포의 안개를 뚫고 지나간다. 해준이 지나간 자리에서 휘몰아 치는 안개가 해준의 심경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처음으로 서래의 집을 실제로 방문한 해준. 불안정한 조명 밑에서 앙각으로 잡히는 해준의 모습. 그의 머리 위로는 화려한 벽지와 대들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은, 천장의 모습이 기괴한 느낌을 연출한다. 마치 <시민 케인>에서 천장 미장센을 통해 그물망처럼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케인을 보여주었던 장면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장면에서 우리는 해준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케인의 자신만만한 표정과 그물 같은 천장의 모습이 세계에 대한 장악력을 보여준다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내의 위로 펼쳐진 그물망 같은 천장은 마침내 함정에 빠지고 만 불우한 사나이의 모습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왜 경찰을 오라가라 하냐”는 해준의 질문은 “어차피 자주 오지 않냐”는 서래의 답변에 무색하다. 이러한 서래의 당돌함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영화는 곧바로 “어머니를 죽이셨다고요”라고 묻는 해준의 대사로 이어진다. 서래가 따르고 있는 차의 물방울이 수액을 맞고 있는 장면으로 이어지며 서래의 과거 장면이 등장한다.


<장면 20. 서래가 과거를 회상하다>


서래와 서래의 모친이 병원침대에 나란히 누워있다. 생명의 불씨가 서서히 꺼져가는 서래의 모친은 ‘호미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호미산은 서래의 것이며, 서래가 되찾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호미산을 되찾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을 죽여야 한다는 것. 이 대사는 사뭇 역설적이다. 서래는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녀는 산을 상속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서래는 어머니를 치료하기 위해 간호사가 되었지만, 그녀는 전문적으로 어머니를 살해해야 한다. 이 상황이 서래라는 인물이 살아온 궤적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성향과는 다른 사회적 요구를 마주하고, 그 요구를 들어주는 삶을 살아왔다. 덧붙이자면, 서래가 하는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항상 모호하게 처리된다. 나는 굳이 플래쉬백을 넣어 서래 모친의 모습을 보여준 것도, "이 장면은 정말 실제다."라는 영화적 언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기도수 씨, 자살이에요.” 서래는 쇼파로 다가가 쿠션을 들추어 편지를 꺼낸다. 서래가 편지를 꺼내려 가는 사이, 해준은 빠르게 서래의 집을 훑어본다. 까마귀 깃털, 보드카. 이후 해준이 모방하는 것들이다. 어쩌면 사건을 색다른 국면으로 이끌 수도 있는 상황에서 서래의 집을 훑어보기에 바쁜 해준을 어찌하면 좋을까. 그런 해준을 보고는 서래가 직접 나선다. 기도수가 받은 협박 편지를 공개하는 것이다. 협박 편지의 내용은 기도수가 뇌물을 받고 출입국 심사에 불공정하게 임한 사실을 고발한다는 것이다. 이 편지를 본 해준의 질문이 신기하다. “도대체 왜 그런 남자를 만난 겁니까?” 사실상 이는 해준의 마음을 고백한 것에 다름없다. 그런데, 이에 대한 서래의 대답도 의미심장하다. 그녀는 중국어로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한다. 몸이 위아래로 움직이고, 벽지가 기괴하고, 무슨 말인지 자막도 나오지 않는다. 관객과 해준은 그 순간이 주는 이미지의 기묘함에 매료된다. 그리고는 친절하면서 무뚝뚝한 기계음이 해석을 시작한다. 그녀는 배 안에서 오래 동안 있었고, 똥, 오줌이 묻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나서 기계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나를 보았고, 냄새를 맡았고,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이 말에 해준이 무언가 느끼는 듯한 리액션 쇼트가 삽입되고, 서래의 마지막 말이 이어진다. “당신의 아내는 당신이 매일 밤 누구의 집을 엿보는 지 알고 있습니까?”


여기서 서래의 말은 어떻게 읽히는가. 우선, 서래의 말은 정직한 답변이면서, 훌륭한 수사법이다. “기도수는 어려운 환경에 처했던 나를 구원해 준 존재이다. 그런데, 당신이 나에게 사회 통념, 윤리를 들먹이며 질문을 할 처지가 있기는 한가?” 전자는 해준의 질문에 대한 논리적 답변이고, 후자는 해준이라는 메신저에 대한 수사법적 공격이다. 그런데 하필 이 문장이 ‘번역’된 탓에, 이 이야기는 마치 하나의 은유처럼 들리기도 한다. 서래는 배 안에 오래 있었고(=기도수의 집에 갇혀 살았고), 똥, 오줌이 묻어 있었다(=피와 멍으로 물들었다). 그때, ‘그’가 자신을 보았고(=잠복했고), 냄새를 맡았으며(향수 냄새를 맡았으며), 이야기를 들었다(=해준은 방금 서래의 과거 이야기를 듣는다). 서래의 답변을 이처럼 하나의 은유로 읽는다면, “당신의 아내는~”이라는 대사는 오히려 해준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서래의 마음처럼 읽힌다. ‘사건’을 해결하는 정적인 이야기 밑으로, 안개처럼 보일 듯 말 듯 요동치는 미결 상태의 마음이 영화의 정서적 깊이를 더한다.


<장면 21. 서래가 무혐의 처분을 받다>


해준은 협박 편지에 대한 기도수의 해명 편지를 발견한다. 현직 시절 자신의 상사였다며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는 공무원의 모습.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로써, 서래의 주장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를 확보한 셈이다. 


장막을 들추듯, 고기집의 배기통을 옆으로 치우며, 수완의 얼굴이 등장한다. 회식 자리의 모두가 말하듯, 위에서도 자살로 종결짓기를 원하고 있고, 유서도 나왔고, 알리바이도 확실하다. 사실상 더 이상 이 사건을 살인으로 취급하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그러나 수완은 무언가가 이상한 듯, 해준을 향해 "딴 짭새들이랑 똑같다"며 격하게 반응한다. 수완이 식탁을 건너오다 넘어지고, 장면은 점프컷으로 모두가 돌아간 후 홀로 남아 (서래가 마시던) 술을 마시고 있는 해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쇼트는 양주를 담는 보틀의 뚜겅을 통해 해준에게 말을 건네는 수완의 모습이다. “형이 말했잖아요. 살인은 흡연과 같아서, 한 번이 어렵지 그 다음은 쉽다고.” 메아리처럼 잔음을 남기는 수완의 말에 관객은 다시 흔들린다. 한 때 자신이 했던 형사로서의 말과, 지금 한 명의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정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해준에게 전화가 온다.


수완이 헝클어진 방의 쇼파에 누워있고, 화면의 오른쪽 끝에 서래가 위태롭게 서있다. 해준은 황급하게 수완에게 다가가고 그를 데리고 나간다. “우리 형 호구로 보지마라.”, “다음 남편 죽일 때는 조심해라.”는 수완의 말에 해준은 난감하다. 더욱이, “저 여자한테 초밥 왜 사줬어요?”라는 대사는, 그 말을 듣고 있는 서래마저 난감하게 만든다. 여기서 수완이 남기는 마지막 말은 일종의 질투처럼 보인다. 해준을 존경하여 부산까지 내려온 수완이,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며, ‘그 여자만’ 신경을 쓰는 것 같은 해준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걸까? 수완이 서래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해준을 존경하는 수완의 마음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고, 그만큼의 질투심이 기저에 깔려 있다는 의미는 아닐까.


서래의 집을 청소하는 해준의 모습이 약한 디졸브로 이어진다. 청소를 마친 후, 해준은 기도수의 유품을 서래에게 돌려준다. ‘사건 종결.’ 그러나 이어지는 서래의 대답이 의미심장하다. “기쁜가요?” “허, 그렇죠 뭐.” “왜요?” “아니 뭐, 이젠 우리가...” “우리요?” 서래가 말한 ‘우리집’과 해준이 말한 ‘우리가’의 차이는 무엇인가. 잠시 시간을 뛰어 넘어보자. 2부에서 서래와의 관계를 의심하는 정안에게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를 싫어하는거야.”라고 말했던 해준을 미리 떠올려보자(지독한 반복의 강박). 정안의 질문도 똑같다. “우리?” 이에 대한 해준의 답변은 무엇인가. “우리, 경찰.” 이 상황을 지금 대입해보자. 해준은 왜 기쁜가? 이제는 우리(=경찰)가 다른 일에 집중 할 수 있어서? 하지만 2부에서 해준이 하는 말이 해준과 정안 부부를 의미하듯, 1부에서 해준이 하는 ‘우리’는 명백히 서래와 해준을 의미한다. 아마 해준이 하고 싶었던 말은 “이제는 우리가 형사와 피의자로 만날 필요가 없으니까”였을 것이고, 이는 명백한 고백이다. 그래서 해준은 “우리요?”라는 서래의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대신 해준은 벨트를 푼다. 그 모습에 당황하는 서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관객도 갑작스러운 해준의 돌발행동에 당황한다. 그러나 해준은 벗어두었던 총을 차고는 태연하게 “저녁은 먹었냐”고 물어본다. 이 장면은 사실 조금 이상하다. 나중에 알 수 있듯이, 저고리에 주머니를 수십 개 만들어서 립밥과 핸드크림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아무리 총을 차기 위해서라지만 벨트를 태연하게 푼다? 어쩌면 이제는 형사와 피의지가 아닌 상황이니, 말 그대로 ‘벨트를 풀고’ 싶은 해준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혹은, 앞에서 서로 부부처럼 식탁을 정리했듯, 서래 앞에서는 벨트를 차는 행위도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다는 해준의 무의식일까. 여기서 주목할만한 것은 놀라는 듯한 서래의 표정. 서래가 겪어온 벨트의 의미. 이 간극은 마치 둘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하다.


물론 해준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른다. 그러니 태연하게 총을 차는 것이다. “또 아이스크림이요?” 그리고는 혀를 살짝 내미는 탕웨이의 모습. 저녁을 만들어주겠다는 해준의 말.


<장면 22. 서래가 해준의 집을 방문하다>


해준의 집. 해준이 정면에서 요리를 하고 있고, 해준의 등 뒤에 붙은 서래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방안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서래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까마귀 깃털, 보드카 병, 그리고 중국어 회화 책이다. 넌지시 요리 중인 해준을 흘겨보는 서래의 눈빛에는 무슨 생각이 담겼을까. 이제는 자신을 향한 해준의 관심을 행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마침내 온 것일까. 그러나 서래는 화들짝 놀란다. 커튼 사이로 감추어진 해준의 ‘내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해준의 내면은 무엇인가? 벽에 붙은 “살인과 폭력”이다. 품위 있는 형사의 내면에 위치한 해골과 피, 그리고 살인. 해준은 자신의 내면을 들킨 부끄러움에 쑥스러워하다가, 이내 갑자기 당황한 기색을 보인다. 알다시피, 그곳에 붙어있는 서래의 사진 때문이다. 해준은 당황해서 급히 말하기 시작한다. 그곳에 있는 사건들은 미결 사건들이라고. 그런데 이상하다. 아직까지 기도수 사망 사건의 사진이 그대로 붙어 있기 때문이다. 왜 해준은 그대로 사진을 붙여 놓았을까. 아마 해준은 ‘서래가 범인은 아니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기도수가 과연 자살을 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확답을 못 내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로는, ‘폭력과 살인’ 없이는 행복할 수 없는 해준으로서는, 계속 생각이 나서 잠을 못 이루는 미결 사건 목록에 서래와 연관된 사건을 붙여두는 것이 그만의 사랑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이 해석은 영화의 결말을 생각할 때 희비극적이다). 서래는 벽에 붙어있는 기도수의 사진을 확인한 후 묻는다. “벌레가 사람을 먹나요?” 더 이상 서래의 말에 기도수의 죽음에 대한 리액션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전남편’은 사라지고 ‘시체에 대한 호기심’만 있다. 뒤이어 이어지는 해준의 설명은 다소 관객으로서는 당황스럽다. 무슨 그런 말을 좋아하는 사람에서 하나 싶을 정도로 해준은 벌레가 사람을 파먹는 상황을 묘사한다(“알을 낳는다”는 말과 동시에 계란을 넣는 장면은 지독하다). 호감 있는 연인 사이에서 갑작스럽게 오간 죽음의 대화. 이는 형사로서의 해준의 자의식을 보여주면서도, 서래에게는 아직 자신이 의심선상에 있을 수도 있다는 불안을 만들고, 그들의 사랑이 누군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기이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해준이 벌레가 사람의 시체를 파먹는 장면을 길게 설명할 때 관객이 느끼는 불안감은 이러한 상황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해준이 설명을 마치며, 볶음밥을 들고 온다. “이게... 중국식...? 맛은 좋습니다.” 재치 있는 서래의 대사가 이어진다. 이후 서래는 책상 위에 있는 조명을 이른바 ‘사건의 벽’으로 돌린다. “이것 때문에 잠을 못 자는 거예요. 피 흘리는 사진들이 매일 비명을 지르니까.” 사실 이 때 해준이 해야 했던 행동은 무엇인가. 어서 붙어있는 서래의 사진을 몰래 떼거나, 가리기라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건 이야기가 나오자, 해준은 신이 나서 말하기 시작한다. 이 행동은 해준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이건 질곡동 살인사건이고, 얘가 용의자고, 이게 시체고, 이게 무기고....... 순간 화면은 질곡동 살인사건의 용의자 산오(박정민)가 오지은을 강간한 ‘범이’를 죽였던 상황을 보여준다. 화면에서, 산오는 스스로를 자책하는 행동을 취하는데, 이후 화면은 서래가 사건 파일을 읽고 있는 현재로 다시 이동한다. 사건에 대해 몇 마디를 내뱉은 후, 서래는 “감옥에 가기를 죽기보다 싫어한다”는 말을 한다. 해준은 이 말을 전에 잡았던 용의자에게서 들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서래가 같은 말을 반복하자. “그런 놈이 살인은 왜 했을까?”라며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하고, “죽을 만큼 사랑한 여자였나 보네.”라는 서래의 대사가 이어진다. 해준이 서래와 대화하며 산오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동족'으로서의 해준과 서래를 보여주고, "죽을 만큼 사랑한"이라는 말은 일종의 복선으로 깔린다. 


<장면23. 해준과 수완이 산오를 추격하다>


문 앞에서 대기하는 수완, 산오가 모습을 드러내고, 수완을 가위로 공격한 산오가 도망치기 시작한다. 해준이 산오를 추격하기 시작하고, 서래와 해준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교차편집된다. 서래는 산오가 범이를 죽였을 당시의 여자친구 사진을 보여준다. 산오의 살인이 연적 살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준의 반응은 어떤가. 해준은 계속해서 반박 아닌 반박을 하기 시작한다. “멀리 사는데?” 등등. 그리고 의미심장한 직격탄을 날린다. “오가인은 결혼도 했는데?”, “한국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결혼을 하면, 좋아하기를 멈춥니까?” 해준은 서래로부터 이 말을 듣고 싶어서 계속하여 질문을 던졌는지도 모른다. 


추격전이 계속되고, 해준은 산오와 마주한다. 그런데, 여기서 해준의 반응이 뜻밖이다. 해준은 지난 번 체포 때처럼 ‘방패’를 착용하지 않는다. 그는 총을 들고 있다. 물론 수완으로부터 받은 총이기는 하지만, 해준의 성격상 총을 버리고 철장갑을 끼거나, 아니면 총으로 위협만 하며 산오를 제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해준은 산오에게 공감한다. “나도 좋아하는 여자가 있거든? 근데 남편이 그 여자를 막 때려. 나, 그 새끼 죽여버리고 싶어서 미치겠다!” 이 대사는 유능한 형사의 수사법으로 볼 수도 있고, 자기고백으로 볼 수도 있다. 당황한 쪽은 오히려 산오다. 한바탕 격투를 예상했던 그 역시 예상치 못한 해준의 말에 당황한 듯 “여자들은, 왜 그런 남자들하고 자요? 나도 쓰레기지만.”이라고 말한다. 이때 둘은 술자리에서 만난 옛 친구 같아 보인다. 해준은 이 말에 더 격양된다. 절대 쓰지 않던 “씨발”까지(영화에서 해준은 욕을 단 한 번, 이 순간 사용한다) 쓰며, 격양된 표정으로 산오에게 공감한다. 그리고는 탕, 총이 발사된다. 이 지점이 진정으로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해준이 보여준 모습은 연기일까? 진심일까? “탄창 돌려놨다”는 수완의 말을 들은 해준이 산오를 체포하기 위해 쏜 것일까? 총알이 발 부근에 맞았으니 충분히 가능한 추측이다. 하지만 무언가 오발탄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은 왜인가. 그것은 이미 관객이 해준의 감정을 납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해준의 발포는 오발탄이었고, 이어진 반응은 형사의 본능이라는 해석을 취하고 싶다. 해준은 산오에게 접근하지만, 산오는 자살할 수도 있다고 언급하며 해준의 접근을 막는다. 이후 오지은에게 “너 때문에 공허하지 않았다”고 전해달리는 유언을 남기는 산오. 하지만 밑에서 오지은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전해줄 필요 없겠네.”라는 대사를 남기고 산오는 자살한다.


휴게소 상황 쇼트. ‘멀리 갔던’ 해준은 스스로 차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무슨 그런 직장이 다 있냐”는 정안의 말을 애써 끊자 산오가 투신한 현장에 홀로 남아 있는 해준의 모습이 보인다. 다시 휴게소로의 이동. “나 안 우울해. 화장실 좀 갈게”라며 해준은 전화를 끊는다. 화장실을 가려는 듯 일어난 해준, 하지만 걸음을 멈추고 장면은 해준이 서있었던 옥상으로 이동한다. 밑을 내려보는 해준. 풀려버린 산오의 눈동자가 보인다. 며칠 전 기도수에게서 보았던 바로 그 눈이다. 이어 카메라는 위를 올려다보는 오지은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런 오지은 내려다보는 해준을 앙각으로 잡는다. 


질곡동 살인사건은 왜 영화에 들어갔을까. 단순히 기도수 살인사건으로는 이야기 진행이 힘들어서? 서래와 해준을 엮어줄 장치가 필요해서? 아마 둘 모두 정답일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산오에기 격양되어 공감하는 해준의 모습과, 해준이 산오를 내려다보는 장면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산오에게 내뱉는 해준의 말은 진심이며, 해준은 처음으로 피해자가 아닌 동료의 시각에서 죽은 자의 눈을 바라본다. 죽은 산오의 눈은 초점을 잃었다. 해준이 잘 보려고 노력하는 강박과 이 영화의 결말을 생각할 때, 해준은 미래의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다.


<장면 24. 서래가 해준을 방문하여 잠을 재워주다>


자신의 집에서 질곡동 살인사건의 사진들을 지켜보고 있는 해준. 노크 하는 소리가 들리고, 서래가 들어온다. “왜 왔냐”는 해준의 말에 “재워주러요”라고 답하는 서래의 발걸음이 다급하다. 서래가 확인하려는 것은 해준의 내면, 사건 사진이 붙어있는 벽이다. 여전히 붙어있는 질곡동 살인사건, 그리고 기도수 사망 사건. 서래를 사진들을 떼어 내며 말한다. “해결되면 땐다고 했습니다. 제 남편 사진도 때겠습니다.” 여기서 관객은 서래가 두 번째 말, 그러니까 기도수 사망 사건의 사진을 때기 위해 방문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먼저 생각해야할 것은, 왜 아직도 해준이 사진을 붙여두고 있는가이다. 기도수 사망 사건은 앞서 말한 양가적 이유 때문일 수도 있지만, 질곡동 살인사건을 아직까지 붙여둔 이유는 아마 수완이 지은에게 가졌던 마음이 아직 해준에게는 미결 상태이기 때문은 아닐까. 스스로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그 마음이, 자신을 어디로 이끌지 몰라 두려움에 휩싸인 것일수도 있다. 물론, 그냥 귀찮은 것일지도. 사진을 떼던 서래가 자신이 찍힌 사진을 발견한다. “이건 잘 못 나온 사진”이라는 말과 “그래도 예뻤다”는 서래와 해준의 말이 교차한다. 이때 해준은 서래가 자신의 사진을 떼는 것을 막는다.  그에게 두 사건은 모두 서래라는 인물과 연결되는 것이고, 서래라는 인물은 아직까지 자신에게 미결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런 해준의 모습을 보며 중국어로 다시 한 번 말해보라는 서래의 물음은 짓궂다. 결국 중국어로 “아름다워요.”라고 말하게 되는 해준은 더 이상 사진을 때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해준은 서래의 사진을 몇 장 남길 수 있게 된 것으로 만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그것들을 남기기 위해 나머지를 전부 붙여두었던 사람인 것처럼.


사건과 관련된 사진들이 프라이팬에서 타고 있다. 불이라는 원초적인 매체로 서래와 해준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타고 있는 사진이 영화 속에서 자주 보였던 벌레들과 같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물질은 죽었고, 정신은 그와 관계 없이 타오르고 있다.


해준이 침대에 누워있고, 서래가 잘 자라는 말을 남긴다. 그러나 해준은 오히려 등을 더 밝게 하며 서래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기 시작한다. “그때 왜 심장을 가지고 싶어한 거에요?”  ‘살인과 폭력’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인 해준에게 ‘심장’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감각적이었을까. 그런데 이 질문에 답하는 서래의 모습은 태연하고, 당돌하기까지하다. “아,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심장이 아니라.” 뒤에 이어지는 해준의 어색한 ‘아아아아~’는 기대했던 답변이 정말로 서래의 입을 통해 나오자 당황한 해준의 모습을 보여준다. 호감을 숨기며 심장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는 해준에게, 당당하게 마음이라고 말하는 서래의 모습은 얼마나 '꼿꼿한가.'


뒤이어 잠이 안 온다는 해준의 말에 ‘미 해군이 개발한 것을 자신이 조금 바꾼 것’이라는 서래의 말과 ‘나 해군 출신인데?’라는 해준의 말이 들린다. 그리고 서래는 해준의 눈을 감긴다. 서래가 해준의 눈을 감길 수 있는 사람인 것은 중요하다. 해준은 언제나 잘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해준에게, 눈을 감고, 호흡을 맞추라는 서래의 말은 서래의 냄새에 이끌리고, 냄새는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이미지를 연상시키며 화면과 인물에게 환상성을 더한다. 깊은 바다의 빛깔, 혹은 히치콕 영화에 나오는 초록 조명으로 화면이 서서히 전환되는 것도, 서래라는 인물이 만들어 내는 일종의 자기장 같은 것이다. 그리고 서래가 해준에게 “당신은, 해파리에요.......”라는 말을 시작하고 화면은 전구의 필라멘트로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이 장면이 섹스씬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까지 확인한 후, 단둘만이 남은 그들이 섹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하다. 화면은 그 대신 전구의 필라멘트를 보여주고, 서서히 디졸브되며 사천왕의 눈동자가 나오기 시작한다. 물론 화면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둘이 섹스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해석은 불가능한 것 같다. 오히려 ‘잘 자는 것’이라는 말의 두 가지 의미를 생각해볼 때, 서래가 ‘잘 재운다’는 것은 이른바 플라토닉 러브의 일종으로 보인다.


<장면 25. 해준과 서래가 사찰을 방문하다>


그렇게 전구의 필라멘트가 사천왕의 눈을 디졸브 되고, 곧이어 절에 도착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절이라는 공간, 속세를 벗어나 피안으로 가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 절이라는 공간은 마치 둘의 상황을 대변하는 듯하다. 둘은 현실적인 삶의 파편 속에서 영원한 사랑의 연결로 상승하고자 한다. 하지만, 절의 초입에서부터 그들을 내려다보는 사천왕은 경비병의 엄무를 엄숙히 다하는 것처럼, 그들을 심문하는 것처럼 보인다. “당신들의 사랑이 구원이 될 수 있는가?” 마치 그에 대해 응답이라도 하듯, 그 다음 장면은 서래의 거친 손을 보여주며 앞으로 일어날 일의 복선을 제시한다. 이러한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준은 핸드크림을 발라주기 시작하고, 그러자 “처음부터 좋아했습니다”라는 서래의 대사가 나온다. 이 장면은 다시 볼수록, ‘손’에 대해 힌트를 준 서래가 해준의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말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현대인 치고는 품위가 좋았다”는 말이 걸린다. 이 말은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서래를 해준과 같이 대해줄 수 있는 남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을 것이다. 해준을 향한 진심과 해준이 알아챘을까 하는 의심의 사이에서 서래는 어떤 감정을 느끼며 해준과 같이 걸었을까. “나와 같은 종족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다는 해준의 말에 이어지는 “저도 잘 보려고 하거든요.”라는 해준의 또 다른 말은 그래서 관객의 마음 속으로 파고든다. 해준은 바로 앞에 놓인 단서들을 놓치고 있지 않는가? 사망자의 시선에서부터 잘 보고 싶어한다는 해준의 말에 어색하게 웃는 서래의 리액션 쇼트가 둘의 관계에 있는 본질적인 결함을 상기시킨다. 그 표정을 혹여나 들킬까, 서래를 황급히 되묻는다. “무서워 하는 건 뭐에요?” “냄새, 피.” 사실 이 말의 핵심은 피가 아니라 냄새가 있다. 해준이 무서워 하는 것은 냄새. 그러니까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생각해보자, 보지 못하는 호흡을 맞출 수 있도록 도와준 최초의 상대가 서래이지만, 그 순간 해준은 서래를 똑바로 볼 수 없다는 아이러니에 대해서. “높은데”를 무서워한다는 서래의 말은 해준의 무의식 속에 남아있는 서래에 대한 의심을 피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기도수를 죽인 이후로 높은 곳이 무서워졌다는 말일까? 비 오는 날 안개에 덮인 절처럼, 둘의 관계는 모호함 속으로 더욱 파고들어간다. 이어, 해준이 자랑하듯 저고리 개수를 읊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 그는 자신의 립밥에 함부로 손을 대는 서래에게 뭐라고 하고 싶었을 것이나, 차마 말을 할 수 없어 조마조마했을 것이고, 다 안다는 듯이 해준에게도 립밥을 칠해주는 서래의 모습과, “나는요, 깨끗해요.”라는 해준의 대사가 겹친다. 이미지를 배신하는 대사와, 대사를 배신하는 인물의 감정이 한데 어우러지며 진한 잔향을 남긴다.


해준이 녹음한 파일을 듣고 있는 해준과 서래.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웃고 있는 서래를 진득하게 해준이 바라본다. 그리고 나오는, “우는구나, 마침내.”라는 대사. 이 대사를 듣고 탕웨이는 눈물을 보이며 짧게 욕설을 내뱉는다. 마침내 누군가가 자신의 감정과 정서를 공감해준다는 것에 대한 먹먹함일까? 하지만, 웃고 있던 자신의 표정을 해준이 봤을 수도 있다는 당혹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지 서래는 곧장 파일을 지워버린다. “사건이 종결되면 지운다고 했죠?”라며 쐐기까지 박는다. 서래의 갑작스러운 이 행동은 치부를 감추기 위함인가, 범죄를 은닉하기 위해서인가.


<장면 26. 해준이 이포에서 서래에게 문자하다>


‘안개’를 들으며 요리를 하고 있는 해준. 그 뒤로 정안이 등장한다. 이포를 방문한 듯하다. “폈네! 폈어!”라는 정안의 대사에 해준이 움츠려 들고, “담배!”라는 정안의 말에는 능숙하게 수완을 탓한다. 그리고는 영화는 편집을 통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해준의 모습을 보여준다. 세차를 핑계로 밖으로 나온 해준은 서래에게 문자를 보낸다. 이후 이어지는 문자 장면.


뭐하고 있냐는 해준의 물음에 서래는 화요일 할머니가 아파 병원이라고 말한다. 해준은 ‘주말 부부’라고 서두에 명확히 제시되었다. 그러니 해준이 이포에 있으므로 지금은 토요일, 아니면 일요일이다. 그러니 서래가 화요일 할머니 때문에 병원에 지속적으로 있어야 한다면, 월요일 할머니를 돌 볼 사람이 없는 것이다. 해준은 자신이 월요일 할머니에게 가겠다는 말을 남긴 후, 이런저런 농담을 준비하며 서래와의 대화를 이어가려고 한다. 하지만 서래의 쏟아지는 문자에 자신의 문자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데, 그 망설임과 문자 수정의 끝이 “네” 한 글자인 것은 21세기의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장면 27. 해준이 월요일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서래의 집을 방문하다>


서래의 집을 방문한 해준. 해준은 서래의 모친의 유골함을 열어 펜타닐을 확인한다. 네 알. 사람을 하나 죽일 수 있을 양이다. 펜터닐이라는 도구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극의 분위기를 다시 한 번 추리극으로 변환시킨다. 


월요일 할머니를 방문한 해준. 여기서 ‘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서래의 손이 최근 들어 거칠어졌다”는 말. 애써 웃으며 월요일 할머니의 스마트폰을 만지던 해준은 ‘138’층과 마주한다. 


해준이 서래가 걸었던 길을 밟는 장면이 교차 편집으로 나온다. 정상에 도착한 해준은, 마침내 사망자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알아내는 것에 성공한다. 결국 ‘잘 보게 된’ 해준. 그러나 해준의 세계는 바로 그 순간 낡은 전구처럼 깜빡거리며 점멸하기 시작하며 세계는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장면 28. 해준이 붕괴되다>


점멸하던 풍경이 서래의 형광등으로 이어진다. 해준은 이미 도착하여 앉아있고, 서래가 자신의 옆자리에 앉자 다른 자리로 이동한다. 이어지는 해준의 대사. 그야말로 절규의 연속이다. 깔끔한 편집을 통해 기도수 유서 조작, 수완의 행패 등 그동안 서래를 감정적으로 옹호하도록 만든 모든 알리바이가 부드럽게, 그러나 처참하게 파괴되기 시작한다. 해준은 서서히 붕괴되고 있다.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후, 자신의 감정을 터놓기 시작하는 해준. 그런데 서래가 대화의 주제가 ‘알리바이의 붕괴’에 대한 ‘해준의 반응’으로 넘어오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녹음기를 켜는 것이다. 나는 이 행동이 본능적이었다고 믿는다. 서래에게 ‘배신감’을 느꼈던 모든 남자들이 서래를 어떻게 대했었을까. 그 행동 앞에서 서래가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은 뭐였을까. 서래는 자신의 경험과 논리를 바탕으로, (아마 무의식적으로) 녹음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해준을 서래에게 폭언을 퍼붓지도, 서래를 폭행하지도 않는다. 해준의 대사가 이어진 후 등장하는 “우리 사이를 그렇게 말하지 마요.”라는 서래의 대사. tv나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그래서 서래가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던 말. 사실, 대사 자체만 놓고 본다면 유치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유치함을 받아주며 과감하고, 투박하게 회전하는 카메라와, “내가 당신을~한 일이요?”라는 문어체 대사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박해일의 연기가 합쳐지자, 화면에서는 가장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해준이 자신이 서래를 위해 한 일을 내뱉을 때마다, 황급히 고개를 끄덕거리는 서래의 모습이 안쓰럽다 못해 마음이 저려온다. 그러나 이어지는 해준의 대사 앞에서 서래를 무력해진다. “품위는 자부심에서 나온다. 나는 자부심 있는 경찰이었다. 그런데 여자에게 미쳐서 (이 순간, 카메라는 슬며시 웃는 서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건을 망쳐버렸다. 나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해준의 말이 끝나자, 서래가 해준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는 해준의 결혼반지를 가린다. 뒤의 장면과 앞의 장면을 통해 유츄해보면, 서래는 해준의 말을 어떻게 들었을까? ‘붕괴’라는 말의 뜻을 몰라 사전을 찾는 서래의 모습과, “여자에 미쳐서”라는 말에서의 ‘여자’가 자신임을 알고는 슬며시 웃었던 서래의 모습을 종합해보면, 서래를 해준의 말을 일종의 고백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붙잡은 해준의 손이지만, 그는 자신을 뿌리치고 떠난다.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아주 깊은 곳에 버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당황스러운 서래. 해준이 나간 후 스마트폰 사전을 통해 붕괴의 뜻을 찾아본다. ‘무너지고 깨어짐.’ 서래가 눈물을 흘린다. 해준은 고백이 아니라 결별을 선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래의 고개가 서서히 펜타닐이 들어있는 어머니의 유골함을 향한다. 서서히 거미줄 같은 유골함을 묶은 끈들이 보이고, 이 선들이 해파리의 다리로 이어진다. 13개월 후.


<2부>


<장면 29. 해준이 이포로 오다>


한때 서래의 목소리를 통해 단잠에 이르렀던 해준. 그러나 의사의 진료실 벽에 떠다니는 해파리는 그러한 감흥을 주지 못한다. 해준은 다시 불면증을 앓고 있다. 일광욕을 하라는 의사의 대답에 “여긴 안개뿐”이라며 해준에게 ‘햇빛’은 허용되지 않음을 넌지시 암시하고, 당황한 의사는 각종 용어를 쓰며 처방을 내리려 하지만, 그가 얼굴에 쓴 기구 때문인지 거짓말 하는 피노키오처럼 보인다. 해준의 불면증은 과학이나 의학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부의 시작은 진료실에서의 장면을 통해 1부와 2부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을 모두 펼쳐낸다. 해준은 결국 부산에서 이포로 전근을 왔고, 그러나 그만이 느낄 수 있는 ‘상실감(사랑의 실패, 사랑했던 사람의 배신, 직업적 실패, 윤리의 패배, 그리고 어쩌면, 서래에 대한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정안은 언제나 ‘이론적으로’ 불면증을 해소할 수 있다는 기계를 찾고 있고, 의사 또한 마찬가지다. 나중에 나오지만, 수완은 이포로 해준을 따라오지 않았다. 해준과 수완이 마지막으로 만난 장면이 뭐였던가? 수한은 산오가 찌른 가위에 상처를 입었다. 그러니 그는 최소한 부상을 입었거나, 심하면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죽었다면 정안의 입을 통해 “당신, 수환 씨 때문에 그래?”라는 말이라도 나올 법 하나 그렇지 않다. 아마, 자발적으로 해준과 ‘결별’한 듯하다. 그러니 2부의 등장에서 보이는, 초점 없이 가만히 앉은 해준은 말 그래도 ‘붕괴된’ 해준이다. 그에게는 더 이상 사랑도, 자부심도, 동료도. 그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석류를 손질하고 있는 해준과 정안. 정안은 석류가 폐경을 늦추는데 좋다고 이야기를 꺼낸다. 이에 대한 해준의 반응은? “빨리 끝나는게 났지 않아?” 그러자 정안은 주제를 돌려 해준이 시들어 가고 있음을 말하고, 또 이 주임 이야기를 꺼낸다. 이쯤 되면 노골적으로 해준의 질투와 불안을 자극하려고 안달 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아니라면 왜 자라 진액이 남성 호르몬에 좋다는 이야기를 뒤에 붙였겠는가? 그러나 해준은 정안을 쟁취하고 싶은 욕망도, 아니 어쩌면 육체에 대한 갈망도 없어진 모양으로 헤죽, 웃는다. 그 모습을 본 정안은 눈물을 흘리며 “나는 행복한데, 당신은 불행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해준은, “살인과 폭력도 있어야” 행복한 사람이라며 쏘아 붙이기까지 한다. 해준이 이 말을 장난스럽게 웃으며 받아 넘기자 화면은 뺨을 맞는 서래의 모습으로 점프컷 한다. 


<장면 30. 서래가 이포로 이사갈 결심을 하다>


뺨을 맞는 서래. 철썩이는 서래에게 “남편이 어디갔냐”고 물어보며, 위협적으로 서래에게 다가온다. 그 순간, 감추어 두었던 포크를 ‘살쾡이’처럼 철썩의 손목에 찌르는 서래. 철썩의 팔에 생긴 상처는 마치 고양이에게 물린 이빨 자국처럼 보인다. 서래는 가발을 벗어 던지며, 오히려 철썩을 말로 몰아 붙인다. 그러한 서래의 모습에 당황한 듯한 철썩은,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어머니 장례 끝나면 네 남편 죽인다.”고 서래를 위협한다. 서래의 모습을 보자. 서래는 그녀가 그토록 갈망하던 물질적 풍요를 얻었다. 그러나 현상황과 이후 남편과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정서적으로 그녀는 피폐한 상태에 놓인다. 해준에게 서래는 유물론적인 형사가 형이상학적 사랑을 하게 하는 존재였다. 이 지점에서, 서래에게 해준은 삶의 완성이 물질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각인시키는 존재가 된다.


“엄마 죽으면 냉장고에 넣어놓고, 네 남편 죽인 다음 장례 시작한다.”는 살벌한 철썩이의 대사가 끝나자, 장면은 전환되어 비닐 하우스 주위로 몰려든 경찰차의 경광등을 보여준다. 해준이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온다. 이미 연수(김신영)가 도착하여 자라 도둑에 관한 정보를 묻고 있다. ‘최연소 경감’이라는 연수의 자랑에도 무심한 해준. 그는 “저 불 좀 꺼달라”고 연수에게 말한다. 눈이 아프기 때문이다. 이포의 안개와 경찰차의 경광등이 모두 해준을 잘 볼 수 없게 만든다. 그러니 이곳에서 해준은 행복할 수 없다.


하지만 다음 장면은 해준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굉음을 울리며 번쩍거리는 빨간 비상등이다. TV 드라마를 보고 있는 서래. 원자력 발전소를 다룬 작품처럼 보인다. 이번에도 여자가 죽어가고 있고, 남자가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장면. 카메라는 은연 중에 서래가 ‘고급 초밥’을 먹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한 서래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새롭게 만난 남편의 목소리가 들린다. 서래의 맞은 얼굴을 보고 “이미 왔구나”를 먼저 말하는 새 남편은, “사랑해”라는 (생각해보면 ‘사랑한다’는 말이 <헤어질 결심>에서 처음 등장한다. 정안 조차 “우리 좋지?” 정도에 그쳤었다), 강력해야 할 단어를 너무나 무기력하게 내뱉는다. 이어 어디론가 도망쳐야 한다는 남편의 말이 들려오고, 서래는 이사를 가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TV를 바라보던 서래의 눈에는 커다란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온다.



복도를 걸어오는 서래. 그녀가 벽으로 붙자, 옆에 있는 빨간 비상등이 눈에 들어온다.


화재 경보기가 울리고 있다. 경찰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담배에 불을 붙여주려다 거부당하는 연수(김신영)의 모습이 보인다. 서래가 해준을 쳐다본다. 뒷 장면에 나오지만, 해준은 이포로 온 이후로 애플 워치를 차고 있지 않다. 그러나 서래는 애플 워치를 차고 있다. 이제는 그들의 관계가 역전된 것처럼 보인다. 서래가 해준을 바라보며 “구두 신었네?”라고 능청스럽게 녹음을 하고, 멍하니 앞만 보던 해준은 무언가를 본 것처럼 표정이 굳는다. 아마 서래를 본 것일 터이나, 해준은 그것이 자신의 우울증이 만들어낸 일종의 환상처럼 취급하지 않았을까.


<장면 31. 해준과 서래가 시장에서 만나다>


정안이 시장에서 생선의 눈알을 누르고 있다. 다시 한 번 죽은 생선의 시점 쇼트가 나온다. 1부에 나왔던 기도수의 죽음 쇼트가 서래에 대한 진실을 ‘잘 보지’ 못할 것이라는 일종의 암시였다면, 2부에서 또 등장한 이 죽음의 쇼트는 해준이 무언가를 또 다시 놓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엔딩에서, 해준은 정말이지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물화한 것처럼 보인다) 아니면 그저 작품의 형식적 강박일수도! 생선 눈알을 눌러보던 정안이 해준에게 티슈를 꺼내달라는 듯 해준의 몸을 툭툭 친다. 그러나 가만히 있는 해준. 정안이 해준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한 부부가 앞에서 걸어오고 있다. 마침내. 다시 한 번 마주한 두 사람. 하지만 이번엔 그들의 배우자와 함께 마주한 그들. “이사왔다”는 서래의 말에 해준은 “왜요”라고, 다소 성급하고 화난 사람처럼 대답한다. 해준의 이러한 반응이 이상하다는 듯 그의 눈치를 살피는 정안과 호신(박용우). 정안은 직감적으로 서래에 대해 무언가 느낀 것처럼 보인다. “안개는 사람들이 이곳을 떠나는 이유지, 찾아오게 하는 이유가 아니다”는 말과 “이곳 곰팡이를 겪어보셔야 한다”는 말은 “진실을 이야기 해 봐.”를 정안식으로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더욱 신기한 것은, 호신이 보이는 반응이다. 카메라는 굳이 호신이 손가락 마디에서 뼈소리를 내는 장면을 클로즈업하여 보여준다. 정안과 호신은 직감적으로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 이어 호신이 원자력 관련 드라마가 인기라 이곳으로 왔으며, 서래의 지금 직업이 여행 가이드인 것을 알려준다. 이러한 호신의 대답에 정안이 정색하며 반박하고, “원전은 완전히 안전하거든요.”라는 해준의 대사가 나온다. 박 감독은 전에도 “가불은 불가”라는 대사를 <친절한 금자씨>에서인가 썼던 적이 있는데, 아마 이 농담도 혼자 만들어 놓고 재밌어 죽겠었나 보다. 이후 정안과 호신이 서로 명함을 주고 받으며 사무적인 이야기를 하는 동안, 해준과 서래는 눈빛으로 대화한다. 서래는 해준이 서래를 떠나던 날, 서래의 집에 두고간 겉옷을 입고 있으며, 그 안에는 파란색으로도, 초록색으로도 보이는 옷을 입고 있다. 외피는 해준의 옷이나, 안쪽의 옷은 색깔이 바뀌는 옷. 해준에게 서래는 그런 존재 아니었던가. 구두를 바라보는 눈빛만으로도 “이제는 현장 나갈 일이 없어서”라고 답할 수 있는 해준과 서래.


<장면 32. 정안이 해준을 의심하기 시작하다>


샤워실에서 의사가 처방한 대로 족욕을 하고 있는 해준. 욕조에서 정안이 솟아오른다. “예쁘더라. 그 여자.” 해준이 이 주임에게 보인 반응과, 정안이 서래에게 보인 반응을 비교하는 것도 재밌다. 두 인물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러자 해준은 “응, 예쁘지.”라고 말한 후 “옷이 예뻤다”고 말을 붙인다. 굳이 “옷이 예쁘더라.”가 아니라 “예쁘다”고 말한 후 “옷”을 언급했다는 점이 정안을 불안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다 정안은 무언가를 떠올린다. “외국인 아내가 자살한 늙은 남편 얘기였나?” “남편은 죽었어.” ... 사실상 이쯤 되면 눈치를 못 채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이 순간에 정안의 마음에 쐐기를 박는 한 마디. “그러니까 사람들이 우리를 싫어하지.” 이 말은 해준이 정안에게 한 말 중 가장 공격적이다. 첫째로, 여기서 ‘우리’는 명백히 ‘정안’이다. 둘째로, 해준은 정안에게 무언인가가 “싫다”고 이야기한 적이 처음이다. 해준은 “매주 해야 한다”는 정안의 말이 부담스러웠지만 침묵했고, “자라 진액”을 언급하는 정안의 모습이 불쾌했지만 침묵했었다. 그런 해준이 “우리를 싫어하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해준의 모습이 낯설은 듯 “우리?”라고 다소 강하게 받아치는 정안. 해준은 다시 한 번 “우리, 경찰”이라며 문장을 분리시켜 이야기한다. 그 순간 카메레가 후진하고, 임호신에게 전화가 오고 있는 정안의 스마트폰을 보여준다.


다리에서 정안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호신. 정안이 전화를 받지 않자 서래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한다.


<장면 33. 임호신이 살해당하다>


생선의 배를 가르고 있는 해준. 피를 무서워한다던 사람이 직접 피를 묻혀가며 생선을 가르고 있다. 사람의 피가 아니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붕괴’되어 버린 해준은 이전의 해준과는 다르기 때문에 더 이상 피를 무서워하지 않게 된 것일까? 그런 찰나에 생선 옆에 놓인 해준의 스마트폰에 전화가 온다. 해준은 정안을 부르고, 전화를 받는 정안. “축하해”를 말을 들은 해준과 관객은, 설마 전화가 서래로부터 온 것인가 안절부절한다. “살인사건이래”, 관객과 해준의 마음을 들었다 놓는 기능적인 역할을 하면서, 이제는 지쳐버린 정안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 대사인 것만 같아 마음에 들었다.


신발을 봉지로 감싸고 사건 현장으로 들어가는 해준. 연수의 안내를 받으며 시신이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이때 기울어진 쇼트로 시체를 쳐다보는 해준이 촬영되는데, 해준이 느낀 당혹감, 혹은 또 다시 시작된 새로운 붕괴를 표현하는 것 같았고, 동시에 해준이 다시 한 번 ‘죽은 사람의 시선에서’ 세상을 보게 되는 순간임을 알리는 것 같은 구도여서 좋았다. 해준이 당황스럽게 바라본 시체가 호신의 시체였음을 알려주는 리액션 쇼트가 나온다. 그 순간, 해준은 호신이 그랬던 것처럼 손마디를 눌러 뼈소리를 낸다. 해준은 무의식적으로 서래의 주변을 모방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자신의 연적이 사라진 이 순간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것은 아닐까. (시계를 두드리는 장면에서 보인 시계는 기도수가 차고 있던 그 브랜드의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안약을 넣는 해준. 그는 다시 한 번, 잘 봐야 한다.


신발 가리개를 벗어 던지고 서래를 향해 다가가는 해준. 카메라도 덩달아 핸드핼드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마침내 다시 만난 둘, 해준의 첫 대사는 “이러려고 이포에 왔습니까?”이다. 이 말 또한 이중적인데, 한 번 이용당했다는 것을 안 해준이 뱉는 앙탈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른 의미로는 결국 나를 만나러 왔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의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어지는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라는 대사는 자신을 이용했던 서래에 대한 반감처럼 들리기도 하고,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사랑할 것이다. 너는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다’는 감정에서 나온 자격지심일 지도 모른다. 이어지는 서래의 대사.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이 대사는 1부에서 TV 드라마에 나왔던 대사이다. 서래는 자신이 아는 구절 중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 되는 말을 내뱉는다. 한 번 정제되어 나오는 서래의 말은 그래서 항상 해준의 마음에 와닿지 못한다. 그렇기에 해준은 “이번에는 알리바이를 철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항상 이 모습은 마치 1부에서 수한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보인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었던 해준의 모습은 사라지고, 이 장면에서 보이는 해준은 형사라기보다는 치기 어린 아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스크린 밖에 놓여 있는 관객에게, “내가 그렇게 나쁘냐”는 서래의 말은 그 어떤 말보다 서래의 감정을 가장 잘 표현 할 수 있는 말이라고 느껴진다. 인물과 적절히 공감하면서도, 필요한 상황에서는 완벽히 분리되어 어쩔 수 없는 무력감, 애상감을 느끼도록 완급조절을 하는 것. 이것이 <헤어질 결심>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이다.


연수와 함께 서래의 방을 조사하고 있는 해준. 범인은 왼손잡이인데, 오른손잡이인 서래를 범임으로 단정 짓고 있는 해준에게 의문을 표한다. 이에 해준은 “그 여자(서래)가 ‘어떻게’, ‘범인’인지를 밝혀야”한다고 말하면서, 본인이 한 말에 본인이 찔리는 지 “왜 계속 나한테만 의문문을 남발하냐”며 되려 화를 내기도 한다. 이 말을 모두 듣고 있었던 서래. 해준은 애써 고개를 돌리며 서래를 외면하고, 서래는 그런 해준을 지긋이 쳐다본다.


<장면 34. 해준과 서래가 취조실에서 다시 만나다>


취조실. 몇 번의 질문과 답변이 오간다. “연고가 없어서 이포로 왔다.” “돈 쓰는 걸 보여줘야 돈이 모인다.” 같은 말로 서래는 능숙하게, 아니 꼿꼿하게 해준의 그물망을 빠나간다. 그러던 도중, 전남편은 자살이고, 이 남편은 피살이라는 서래의 말이 해준을 깊숙하게 찔렀을 것이다. 서래로서는 당연히 그렇게 말해야하지만, 해준에게 이 말은 당신을 또 이용하기 위해 왔다는 것처럼 들린 것이다. 둘은 각각, 생존과 품위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주고, 엇갈린다.


형사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해준의 의식은 바로 자신에 의해 배반 당한다. “왜 그런 남자랑 결혼을 한 것이냐”는 대사가 바로 그것이다. 이 질문은 1부에서 산오가 해준에게 던졌던 “젊고 예쁜 외국인 여자가 왜 그런 남자랑 결혼했을까”라고 했던 질문과 같다. 그런데 서래는 “다른 남자와, 헤어질 결심을 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데, 여기서도 말이 이미지를 배신한다. 서래의 얼굴은 누가봐도 헤어질 결심을 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나는 이 장면에서 “탕웨이를 미리 염두해두고 각본을 썼다”던 박찬욱 감독의 말에 납득했다. 저 얼굴을 보고 납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흔들리는 듯한 해준. 그러나 애써 그런 자신을 다잡으려는 듯이, 그는 서래를 더욱 몰아 붙인다. 남편이 연속으로 두 번 죽었고, 그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가 같은 인물이라면, 자신은 참 공교로운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는 해준의 말. 이 말에서 어머니를 죽인 사람이 남편도 죽었을 것이라고 추측한 수한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뒤집는 서래의 한 마디. “참, 불쌍한 여자네.”는 논리적 비약을 하고 있는 해준의 수사법을 무력화 시키는 ‘진술’이면서, 기구하게 흘러온 자신의 삶에 대한 ‘한탄’이며, 동시에 해준 앞에서는 항상 이런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일종의 ‘고백’이기도 하다. 서래가 대사를 한 후, 인서트로 밖에서 취조실을 지켜보고 있는 연수가 웃는 장면을 넣은 이유는 해준가 서래 사이에서만 가능한 말이 지금 오고 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인서트처럼 보인다. 이어서, 경찰관이 문을 열고 취조실로 들어오고, 식사를 준비했다고 말한다. 약간의 미소를 보이는 듯한 서래의 얼굴이 굳어지고, 식탁에는 핫도그가 하나 놓여있다. 당환한 서래의 표정과, 굳어진 해준의 얼굴. 해준은 자신의 눈을 포기하며 사진을 찍는다.


서래의 사진을 보여주며 탐문 수사를 하고 있는 해준. 한 커플이 우연히 찍힌 서래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청록색 옷에 대한 해준의 문답이 오가고, 인물들은 사진 속에 찍힌 서래의 모습을 모방해본다.


<장면 35. 해준이 (또 다시) 서래의 집을 방문하다>


밤. 전 장면에서 뻗었던 해준의 손이 서래 집의 초인종을 누른다. 그는 화가 난 듯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서래에게 따지듯 묻는다. “왜 이포에 왔습니까?” “왜 자꾸 물어요.”, 사실, 서래의 말이 맞다. 이 상황에서는 굳이 서래의 집을 다시 찾아와 이포에 온 이유를 추궁하는 해준의 모습이 약간은 구차하게 보인다. 그는 항상 그래왔듯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 경찰이라는 직업에 기대어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드러낼 뿐이다. 해준이 굳이 늦은 밤 서래의 집을 찾아온 이유. 증거품을 찾겠다는 형사의 신념으로 위장한 그의 내면. 서래가 울부짖는 것처럼 내뱉는 “당신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이것뿐인데 그럼 어떡해요.”라는 대사는 사실 해준의 대사로 봐도 무방하다. 또한 이 대사는 TV 드라마를 통해 정제되어 나온 것이기에, 해준에게 이 말은 “당신을 만나려고 다시 사람을 죽였다”로 해석될 여지를 남겨두는데, 서래는 중국말을 한 번 번역하여 한다는 점, 해준은 자신의 무의식을 인정하지도, 인식하지도 못한다는 점이 계속해서 그들의 관계에 균열을 낸다. 그 말을 듣고는 흔들리지 않으려는 듯 집을 수색하다가 “초록색 옷이 없다”는 해준의 말에 “자세히도 봤네요”라고 받아치는 서래의 말. 해준은 더 이상 자신의 무의식을 외면할 수 없다.


인서트. 원자력 발전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안. 신문을 통해 호신이 죽었다는 것과 지난 밤 자신에게 두 번 전화했다는 사실을 연결시키고 있는 듯하다.


화로에서 태워진 옷을 발견한 해준. 옷자락을 바라보던 서래의 표정에서 플래쉬백이 시작된다. <헤어질 결심>에서 플래쉬백은 1부에 서래가 간호하던 엄마를 회상할 때 한 번, 그리고 지금 다시 한 번, 총 두 번 사용된다. 형사추리극이기에 플래쉬백을 통해서 관객을 속이는 기법도 가능하나, <헤어질 결심>에서 플래쉬백은 명확히 진실을 말한다. 최소한의 진실들을 포석으로 설치한 후, 인물들의 진술 속에서 균열을 만들고, 그 균열이 관객으로 하여금 계속하여 의심하게 만들어 극중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더욱이, 사건 현장 앞에 서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롱쇼트로 잡은 후, 점프컷으로 사건 당시의 상황으로 플래시백 되는 순간은 짜릿하다. 멋진 편집이다. 남편은 이미 죽어있었고, 자신은 그저 현장을 치우기만 했다는 것. “당신이 와서 이걸 볼텐데”를 말하는 탕웨이의 발음은 경외스럽기까지 하다. 분명 탕웨이에게도, 서래에게도 외국어인 한국말이 극중의 어느 다른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말보다 더 정서적으로 아프게 파고들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물론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경험한 관객이기에 체험 가능한 순간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탕웨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을 결코 제외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관객인 우리도 이렇게 느끼는데, 해준은 서래의 말을 믿지 못한다. 그는 “당신은 방금 살인사건의 증거를 인멸했음을 자백했”다고 말한다. 또 한 번, 해주는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 1부가 남성으로서의 해준이 경찰로서의 해준을 방해했다면, 2부에서는 경찰로서의 해준이 남성으로서의 해준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둘은 항상 엇갈린다. 한 쪽이 진심을 이야기할 때, 한 쪽은 진심을 받아들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고, 관계가 역전되어 그것이 다시 한 번 반복된다. 이 영화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었던 여타의 박찬욱 감독의 영화 못지 않게, 지독한 영화이다.


<장면 36. 서래가 취조를 받다>


화로 앞에서 해준에게 진술하던 서래의 모습이 고전적인 디졸브와 함께 구치소 창살 속에 갇히는 것으로 이어진다. 아주 고전적인 디졸브다. 하지만, 해준의 냉혹한 말에 당황한 서래의 모습이 서서히 줌 아웃 되고, 서래가 감옥에 갇히자 다시 서서히 클로즈업 되며, 서래를 감싸고 있는 창살들을 점점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촬영 방식은 세련되고 품위있게 느껴진다. <헤어질 결심>은 현대판 고전 영화, 아니 고전영화의 재소환이라고 부를 법하다. 


서래가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고 있다.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느냐에 “네”라고 답하는 서래. 그녀의 눈동자에서 읽히는 것은 무엇인가. 수갑이 채워진 서래의 손. 그 손에는 결혼반지가 없다. 인상 깊었던 것은 "네"라고 말하는 서래의 모습이 모니터 속의 모습으로 전환되는 장면이다. 순간적으로 서래를 '관찰 대상'으로 바꿈으로써 극적 불안감, 긴장감을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해준에게 서래는 이제 모니터 속의 존재로만 보인다는 암시일지도.


<장면 37. 해준이 철썩이를 취조하다>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마치고 경찰서로 복귀하는 서래와 해준. 해준은 어느새 잠에 들어 있다. 서래를 누군가에게 인계하고, 해준은 연수로부터 사건에 관한 보고를 듣는다. 이른바, 철썩이를 찾아낸 것. “사씨도 있습니까?”라는 연수의 말이 철썩이의 모친 장례식으로 이어지고, 연수가 철썩이가 왼손잡이임을 확인한다.


취조실에 앉아있는 철썩이. 개인적인 사담이지만, 철썩이를 캐스팅 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대사가 아주 그냥 철썩철썩 입에 붙음. 계쏙 때릴 쑤 이쒀!! 아무튼, 의외로 순순하게 자백하는 철썩. 동기, 방법, 자백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철썩을 가리키고 있지만, 해준은 무언가가 개운치 않은 표정이다. 특히, 철썩이가 서래의 휴대폰에 위치추적장치를 심어 놓고 지속적으로 폭행했다는 사실을 진술할 때, 해준이 다시 한 번 손마디에서 뼈소리를 낸다. 서래의 남편이 하던 행동을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것. 해준은 지금 자기 자신을 잘 보지 못하고 있다.


<장면 38. 해준이 정안에게 의심 받다>


취조를 끝내고 자동차를 타고 돌아가고 있는 해준과 연수. 연수는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좋아하지만, 해준은 “누구 마음대로 해결”이냐며 오히려 화를 낸다. 서래와 해준의 관계를 생각할 때, 그리고 ‘헤어질 결심’의 준말이 ‘헤결’임을 생각할 때, “누구 마음대로 해(헤)결”이냐는 해준의 말은 듣기에 귀엽다. 그러던 중 지원 요청이 들어온 무전에 황급히 대답하여 유턴을 하는 해준. 이 행동은 자신은 경찰이라는 사실을 이번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강박처럼 보인다.


해준과 연수가 도착한 곳에는 자라들이 기어다니고 있다. 이리저리 자라를 줍던 해준은 “손가락 조심하라”는 말이 무색하게 자라에게 손가락이 잡히고, (마침내?) 해준은 절규한다.


자라를 들고 귀가한 해준. 정안은 나름대로의 추리를 말하기 시작한다. ‘늙은 남편과 외국인 아내’ 이야기, 임호신의 죽음을 연결시킨 정안은 뜬금없이 “너가 죽였니? …… 둘이 같이 죽였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신기한 것은, 정안의 추론이 틀렸다는 점이다. 정안은 확실한 증거를 앞에 두고도, 가능한 선택지 3가지 (서래가 죽였다, 해준이 죽였다, 둘이 같이 죽였다,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중에서 ‘죽음’은 언제나 ‘해준’하고만 연결된다. 정안에게 해준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퇴장하는 정안.


<장면 39. 해준이 스마트 워치 속 서래의 말을 확인하다>


해준이 정안에게 받은 임호신의 명함을 연수에게 준다. 명함을 통해 대포폰 번호를 확인한 해준. 그리고 나서는 잠깐 잠에 든다. 이윽고 임호신의 대포포이 마지막으로 사라진 곳에 도착하는 해준. 그의 머릿속에는 서래를 범인으로 확정할 증거를 찾을 생각뿐이다. 방금 전에 가정이 파탄 났음을 선고하는 장면이 나왔는데도, 해준의 눈에는 그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듯하다. 연수가 “우리 이미 범인 잡았다”고 일갈을 날리지만, 그것 또한 해준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해준의 궁극적 열망은 자는 것이다. 미결 사건을 만들지 않고, 서래와의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하고, 불면증에서 벗어나 깊은 잠에 드는 것이다. 그것 말고는 해준에게 어떠한 것도 관심을 불러 일으키거나 동력을 공급할 수 없다. 그런 해준이기에, 그는 바다 속에 가라앉은 임호신의 스마트폰을 찾을 생각만 한다. “그 여자가 불쌍하지도 않냐”는 연수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밤. 해준은 차 안에 앉아 서래의 스마트 워치에 녹음된 내용을 번역한 문서를 읽는다. 서래가 처음 해준을 쳐다보며 “구두 신었네?”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호신을 바라보며 “담배냄새도 못 참으면서도 무슨 사랑, 그 형사가 나를 지켜보 있을 때면, 누군가가 나를 지켜주는 것 같아 든든했지”라는 독백이 이어지고, 해준과 서래가 사건 현장에서 재회하는 순간, “이러려고 이포에 왔냐고 물어보겠지? 아니야 그는 물어보지 않을 지도 몰라.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 지도 몰라”라고 급하게 속삭이는 장면, 그리고 해준이 기어코 그 말을 해버리고 마는 장면이 교차편집으로 아름답게 이어진다. 글을 읽은 해준은 서래의 진심을 알게 되고, 급히 서래의 집으로 찾아간다.


<장면 40. 서래와 해준이 호미산에 오르다>


서래의 집 앞에 도착한 해준. 그러나 불은 꺼져 있고, 문은 잠겨 있다. 황급히 서래에게 전화를 거는 해준. 서래는 자신이 호미산에 와있다고 한다.


함께 호미산을 오르는 해준과 서래, 해준은 사건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만, 서래를 호미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선문답처럼 내놓는다. 그의 마음 속에 언제나 호미산은 자신의 것이라는 대사와, 산을 싫어하는 서래가 해준과 함께 산을 오른다는 행위가 산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그들의 모습이, 그들의 마음이 접하는 순간처럼 보이도록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엄마, 할아버지, 믿음직한 남자를 데려왔어. 나는 왜 그런 남자들하고만 결혼할까요? 해준 씨 같이 바람직한 남자들은 나와 결혼해주지 않으니까. 얼굴 보고 얘기라도 하려면, 살인 사건 정도는 일어나야 하죠.”


“지금이 농담할 때입니까?”


(서래가 중국어를 말하고 번역기가 번역한다)


‘당신은 내내 편하게 잠을 못 잤죠? 억지로 눈을 감아도 자꾸만 내 모습이 보였죠? 그날 밤 시장에서 나와 우연히 마주쳤을 때, 당신은 다시 사는 것 같았죠?’


“마침내. 이제 내 손도, 충분히 부드럽죠?”


그러자 울먹거리는 듯한 해준의 눈이 보인다. 서래의 헤드랜턴에서 나온 빛 때문에 그의 눈은 부셔 보인다. 해준은 이 지점에서 순간적으로 시각을 상실한다. 보이지 않게 된 해준은 마치 주술을 외우듯, 귀신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듯, 마치 방언이 터지듯 말을 술술 하기 시작한다.


“지난 사백이 일 동안 당신을.... 당신이.... 그렇다고 해서, 난 경찰이고 당신이 피의자란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에요. 피의자 알죠? 경찰에게 의심 받는 사람.”


“나 그거 좋아요. 편하게 대해 주세요, 늘 하던 대로, 피의자로......”


“내가 서래 씨 왜 좋아하는지 궁금하댔죠, 아니, 안 궁금하댔나? 서래 씨는요. 몸이 꼿꼿해요. 긴장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똑바른 사람은 드물어요. 난 그게 서래 씨에 관해 만흐아는거얼 말해 준다고 생각합니드아아.


그리고 유골을 향해 가는 해준. 뚜껑을 열어 펜타닐부터 확인한다.


“여기 있던 펜타닐 네 알 어쨌습니까.”


대답하지 않는 서래. 하지만 해준은 더 추궁하지 않고 유골을 날리기 위해 절벽에 선다.


이때, 서래의 시점쇼트로 해준을 보여준다. 마치 서래가 지금이라도 달려들어 해준을 밀어버릴 것만 같다. 서서히 다가오는 서래. 그런 서래의 움직임을 느끼고 눈을 꼭 감는 해준. 서래가 마침내 해준을 꼭 안자, 해준은 긴장했던 숨을 터트린다. 뒤돌아보는 해준. 서래는 해준이 ‘깊은 바다에 버리’라고 했던 스마트폰을 보여준다. “이걸로 재수사 해요.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요.” 해준의 품에 안긴 채로, 말을 이어가는 서래.


“난, 해준 씨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서, 이포에 왔나봐요.”


이 말은 모순이다. 재수사를 통해 서래를 검거하면 사건은 헤결되는 것이다. 그러니, 서래가 해야 할 말은 해준 씨의 해결 사건이 되고 싶어서 왔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사는 종말부에 한 번 더 반복되는데, 그때야 비로소 해준과 관객은 외국인의 말실수처럼 보였던 이 대사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알게 된다. 서래는 이미 이 순간,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한 것이고, 헤어짐으로써, 자신을 헤결이 아닌 미결로 남길 결심을 한 것이다. 해준에게 키스하는 서래, 이후 서래의 헤드 랜턴 빛을 받아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을 매만지는 해준의 얼굴이 서서히 줌 아웃 된다. 헤드 라이트 불빛이 집에 주차하는 해준의 자동차 전조등으로 이어진다.


<장면 41. 정안이 이 주임과 떠나다>


집으로 도착한 해준. 그러나 공교롭게도, 정안은 이 주임과 함께 떠나는 중이다. 석류와 자라를 들고. 무기력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우리 매주 하기로 한 건 계속 하는 거지?”라는 해준의 대사가 공허하게 맴돈다. 그런데, 해준은 왜 이 말을 굳이 덧붙였을까? 첫째, 결국 아내가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어적 발언, 둘째, 서래와는 플라토닉적인 사랑을 나누고 있으나, 정안과의 육체적 관계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아집. 셋째, “원전은 완전히 안전”처럼 정안이 했던 “매주 해야 해”를 따라하기만 하는 해준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해준과 정안 사이의 거리를 보여주려고? 답은 무엇이든 좋다. 솔직히 웃기려고 넣은 것 같다. 뒤에 이어지는 “비켜줄래?”라는 정안의 대사에 임팩트를 주기 위한 작업처럼 보이기도 한다.


방안에 누워있는 해준. 의사가 처방한 숨쉬기 기계를 착용하고 있다. 곰팡이들이 눈에 띈다. 의사가 해준에게 숨쉬기 기계를 시연했을 때, 그의 모습은 마치 코가 길어진 피노키오처럼 보였다. 즉, 거짓말이라는 것인데, 해준의 불면증은 이론적, 기계적으로 해소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기계를 착용하고 있는 해준의 모습 또한 거짓말쟁이 피노키오처럼 보인다. 해준은 지금까지 정안에게, 자신에게, 서래에게 했던 거짓말의 응보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장면에서 시작되는 플래시백이 해준이 서래와 잠에 드는 장면인 것은 당연하다. 


플래시백. 서래와 해준이 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마친 후 이동 했던 장면이다. 해준은 서래와 수갑으로 연결되어 있고, 불면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잠 잘 때 자신이 입으로 숨을 쉬어서 그렇다는 말까지 하며, 해준은 서래 앞에서 계속 말한다. 해준의 이러한 말은 그날 서래가 자신에게 잠을 선사했던 날을 회상하도록 만들고, 결국 당신 없이는 내가 잘 수 없었다는 고백을 하는 것과 똑같다. 자기만 모른다. 이후 리액션 쇼트로 보여지는 서래의 모습. 아마 서래는 해준이 모르게 그와 호흡을 맞춰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해준은 잠에 든 채로 경찰서에 도착했을 것이다. 


<장면 42. 해준이 임호신의 대포폰을 발견하다.>


일광욕을 하고 있는 해준. 이미 그의 눈은 실명에 이른 사람처럼 보인다. 연수로부터 임호신의 스마트폰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는 해준. 해준은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하여 호신과 서래가 나눈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다. 그는 스마트폰을 통해 호신이 서래와 자신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과, ‘음성파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서래가 범인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 해준은 철썩이를 불러 심문하기 시작하고, 서래가 철썩이의 모친이 입원했었던 병원에 방문했던 일을 유골을 뿌릴 때 확인했던 사라진 펜타닐과 연관지어서 추리를 이어나간다. 1부에서 서래가 월요일 할머니의 간호를 의심 없이 맡겼던 것이 사건의 실마리가 된다면, 이번에는 유골을 뿌리도록 한 행위가 사건의 실마리가 된다. 항상 자신의 진심을 고백하는 과정에서 진실을 드러내고야 마는, 서래라는 인물의 한계라고 해야 할까? 더욱이, 호신과 서래가 주고 받는 문자 메시지는 인상적이다. 


<장면 43. 해준이 서래를 추적하기 시작하다>


위치추적이 되고 있는 서래를 쫓아가며, 서래에게 전화를 거는 해준. 음성파일에 대해 물어보자 서래는 “당신이 나에게 사랑한다고 하는” 내용이라고 답한다. 이에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말했어요?”라고 답하는 해준. 해준의 말에 리액션 하는 탕웨이의 연기가 압권이다. 서래가 차를 세우고, 카메라는 완전한 부감으로 바다와 도로, 그리고 자동차를 ‘관조’한다. 다시 운전석에 앉아있는 서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카메라. 서래는 중국어로 말한다.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나의 사랑이 시작되었죠.” 해준은 아마 평생 이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할 것이다. 지금 해준에게 들리는 말은 녹음이 아니며, 번역될 수 없고, 그가 중국어 발음을 성조까지 완벽히 복원할 수도 없을 것이기에, 서래의 담담한 고백이 해준에게 와닿지 못하는 것처럼, 해준은 자신이 말했던 “붕괴”가 사랑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었음을 알지 못한다. 이동진 평론가가 말한 ‘미끄러짐’은 이를 표현하기에 탁월한 단어다. “답답해 정말”이라는 해준의 앙탈이 처연하게 들려오고, 서래는 차에서 내려 어딘가로 이동한다. 이어서 해준이 도착하여 차를 세운다. 서래가 흙을 파기 시작한다. 해준이 안약을 넣는다. 잘 보아야 하는 그의 눈에 서래의 스마트폰이 눈에 들어온다. 스마트폰을 열어 음성파일을 확인하는 해준. ‘무너지고 깨어짐’이라고 저장한 녹음파일이 눈에 들어온다.


<장면 44.해준이 서래의 녹음파일을 확인하다>


마치 유튜브 영상을 멈추었다 재생하는 것 같은 효과와 함께 플래시백이 진행된다. 해준이 음성파일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서래는 이미 흙을 다 파고는 그 속으로 들어간다. 해준은 잘 보고 싶었던 사람이지만, 결국 잘 보지도 못했으며, 보이지 않는 음성의 의미를 해독하는데 (그것도 자신이 한 말을!) 급급하다. 해준이 음성파일을 다시 재생하자, 호텔에서 그것을 듣고 있었던 서래의 모습으로 플래시백이 일어난다.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데 빠트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라는 해준의 말을 문장마다 따라하던 서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환하게 웃는다. 이때 서래가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게 해준의 사랑 고백이었다는 것을, 해준 자신조차 모르게 세어 나온 진심이었다는 것을 ‘해독’한 기쁨이 아닐까?


서래는 완전히 구덩이 안으로 들어와 있다. 서래의 손으로 물이 흘러 들어오고, 그 손이 디졸브 되면서 해변가를 살펴보고 있는 해준의 모습이 보인다. 해준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서래의 손바닥 안에 있다. 모래사장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해준의 모습이, 서래가 스스로를 파묻은 해변가로 점프컷 해서 이어진다. 자칫 어색한 점프컷일 수 있지만, 왠지 모를 통일성을 가지고 있어 부자연스럽지 않고 오히려 좋았다.


모래사장에 도착한 해준. 그의 발밑으로 소용돌이 치는 파도가 서래를 감추어 주고 있다. 해변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던 해준은 연수에게 전화를 걸어 화를 내보기도 하고, 큰 소리로 서래를 불러보기도 한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재생하는 음성파일. 해준은 그제서야 자신이 한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서래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를 모두 이해한다. 어쩌면 관객에게는 앞서서 들렸던 호미산에서의 나레이션이 해준의 머릿속에서는 지금 재생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해준은 그러한 자신의 생각을 애써 부정하려는 듯, 아니면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에 모든 것을 걸기라도 한 듯, 손정등까지 켜고는 미친 듯이 해변을 뛰어다닌다.


<끝>


해준의 손전등이 관객을 향한다. 그는 과연 우리를 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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