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롤로로 Jun 20. 2021

‘여기를 넘어간 학생은 흡연자로 간주함’

김윤석의 <미성년>이 이룬 성취.

 김윤석의 미성년을 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랜만에  감정선을 잘 절제하며 극을 이끌어간 수작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는 한국에서 영화, 드라마를 막론하고 가장 흔하고 자극적으로 이용되는 불륜이라는 소재로 긴장감과 재미를 놓치지 않은 채 흘러간다. 그동안 불륜의 피해자나, 구경꾼으로 간주되던 그들의 자녀를 스토리의 중심으로 끌어온 것은 그런 의미에서 유효한 전략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미성년의 키워드는 3가지였다.  '여기를 넘어간 학생은 흡연자로 간주'한다는 학교 옥상의 문구, ‘인물들의 배치’, ‘김윤석의 사고’가 바로 그것이다.


 먼저 ‘흡연자로 간주함’이라는 문구. 이 문구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카메라가 불필요하게 이 문구를 강조하는 숏을 넣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우리가 통상적으로 학생의 옥상 출입을 막을 때 사용하는 문구와는 뭔가 다른 점이 있다는 점에서 영화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옥상이라는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은 두 부류다. 담배를 피우거나, 피지 않거나. 따라서 사실 논리적으로 본다면 옥상에 있는 사람을 모두 흡연자라고 간주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그리고 실제로 옥상에서 존재하는 유일한 인물인 주리와 윤아는 비흡연자라는 점에서 우리는 ‘판단에 대한 기준이 과연 올바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 미성년이라는 단어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성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 가장 보편적인 판단기준은 그 사람의 나이를 묻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나이를 묻는 행위'는 자주 반복되는데, 윤아가 출생증명서와 카드를 스스로 만들 수 없는 이유 역시 그녀의 나이 때문인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 ‘나이’라는 기준이 과연 성인과 미성년을 나눌 수 있는 기준인가. 영화는 초반부터 명확히 전달된 주제를 어른들의 미숙한 모습을 계속 노출시키며 더욱 강화한다. 특히 윤아의 어머니가 딸에게 '행복해지고 싶다'라고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은 여성으로서 억압받았던 삶을 회복하려는 노력이라기보다는 아직까지 앙탈을 부리고 있는 미성숙한 어른의 모습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 ‘인물의 배치’에 대해 생각했다. 이 영화에서는 유독 '관음'하는 행위가 강조된다. 영화의 첫 장면은 주리가 아빠의 불륜장면을 창문 너머로 훔쳐보고 있는 것이고, 인물 간의 대화는 너무나도 정직한 오버 더 숄더 쇼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주리와 윤아가 학교에서 싸움을 하는 장면에서는 배경으로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는 학생들을 '무리'로 배치하여 관객의 눈에 잘 띄도록 한 것이 보였다. 출산을 마친 윤아의 엄마를 찾아간 주리에게 '둘이 무슨 관계'냐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인물들을 모습을 반복적으로 삽입한 것 역시 그러하다.


 나는 이러한 장면을 차곡차곡 쌓은 이유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죽은 아이의 뼈를 갈아서 주리와 윤아가 서로 마시는 장면으로 설정한 것과도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대상을 타인으로만 바라보고 궁극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던 작중 인물들과 달리, 그들은 여러 가지 사건과 시련을 겪은 후,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타인의 '몸'을 자신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용기를 얻은 것으로 나에게는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굳이 그러한 '쌈마이 한' 연출이어야 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김윤석이 당한 사고에 대한 생각이다. 나는 자동차의 붉은색 라이트를 이용한 이 장면이 매우 인상 깊었다. 하지만 인상 깊었기에, 김윤석이 48만 원의 택시비를 주고 집으로 돌아올 때 '뭐야, 죽은 거 아니었어?'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영화를 본 후 다시 한번 그 장면을 곱씹다 보니, '왜 안 죽었나'가 아니라 '왜 살려두었나'로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야 함을 깨달았다. 만약, 이 인물의 생존 이유가 단순히 택시비 48만 원이라는 도구를 통해 그의 질함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면, 그것은 너무나 평면적인 해석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은 과도할지 모르겠지만, 자동차의 붉은 라이트를 지옥으로 떨어지는 그의 모습을 이미지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극 중에서 염정아가 천주교도로서 고해성사를 하는 장면, 극 중 자주 배경으로 등장하는 십자가, 그리고 '너 때문에 우리 집은 지옥이야'라는 대사들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해석도 충분히 타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녀들을 향했던 '너 때문에 우리 집은 지옥이야'라는 대사가 김윤석을 향하는 역전의 순간으로 볼 때, 붉은 라이트 장면은 더욱 강렬해진다.


 <미성년>이 매우 독특한 촬영 방식을 사용했거나, 통속적인 소재를 특출난 시나리오로 새롭게 해석한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단단한 응축력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긴 국경을 지나자, 새빨간 눈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