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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계형 개발자 Oct 14. 2023

괜찮은 관계를 위한 거절

적절한 이기심이 관계에 도움이 된다

이번주 친한 친구가 결혼식장에 축의금을 받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결혼식이 고작 3일 남은 시점이었는데 갑작스레 축의금 데스크를 지켜달라니 무척 당황스럽다.


데스크를 지켜본 사람은 알겠지만 생각보다 신경 쓸 일이 많다. 돈 받는 것도 일이고 큰 돈 지키는 것도 일이지만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식권을 나눠주는 것 은근 스트레스가 쌓인다. 특히 평소 시니컬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나에겐 억지로 웃는 표정을 유지하는 것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 이런 중요한 일은 한 달 전에 미리 부탁해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친구와 나는 각별한 사이긴 하다.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녔고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아 학창 시절 성적, 가족, 연애, 진로 다양한 주제로 고민을 자주 주고받았다. 대학에 입학하고 직장생활을 하며 왕래가 줄어들었고 1년에 1번도 보기 힘든 사이지만 그동안 저축한 우정 덕분에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도 언제나 거리낌 없이 속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 덕분에 나의 결혼식에서도 그리고 친구의 결혼식에서도 모바일 청첩장만 주고 받아도 아무런 서운함이 없다.


친구는 누구보다 나를 신뢰하기 때문에 중대한 임무를 내게 부탁한 것 같다. 그러나 데스크를 지키는 일은 적어도 지금의 나에겐 우정만으로는 힘든 일이었다. 최근에 일이 많아 힘들기도 했고, 스트레스받는 일도 있어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오래간만에 지방에서 하는 결혼식인 만큼 혼자서 전날 결혼식 근처 숙소에서 머물다 여유를 마음껏 즐기다가 참석하려고 했다. 그런데 결혼식 데스크를 앞두고 있다면 내가 편하게 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고민 끝에 친구의 요청을 거절했다. 아니 거짓말을 했다. 결혼식 2시간 전에 온라인 미팅이 있다고. 너무 눈에 띄는 거짓말이었지만 친구는 개의치 않고 괜찮다고 다른 사람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다행히 결혼식 당일 데스크 자리는 평소 친구와 자주 만나던 또 다른 친구가 채웠다. 나의 예상외로 너무 쉽게 흘러갔다. 친구가 속상해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싶었지만 친구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3일 남은 시점에서 난감한 부탁을 받았던 나의 불편한 심정도 같이 해소됐다. 정말 속이 다 후련했다.


만약 불편한 마음을 갖고 결혼식 데스크를 지켰다면 어땠을까. 당연히 결혼식 전까지 여유롭지 못하게 있었을 것이다. 결혼식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는 진이 빠져 녹초가 되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중요한 임무를 고작 3일 전에 부탁한 친구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솔직한 거절 덕분에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 나의 마음 뿐만 아니라 친구와 나와의 관계도 모두. 오히려 전보다 돈독해진 느낌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오히려 거절하는 것이 관계에 더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 한 방울 먹지 않는 내가 꾸역꾸역 참석했던 술자리, 애매한 사이인 회사 동료의 결혼식, 인원수를 채우기 위해 참석했던 체육모임은 어쩌면 굳이 가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법한 일이다. 괜히 참석해서 고생한 나만 원망스러운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솔직한 마음을 숨기는 것은 지금 당장은 괜찮아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관계에 해롭다. 진짜 괜찮은 관계를 위해선 꾸역꾸역 참아가는 것보다는 내 마음을 숨기지 않고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거절할 수 있는 용기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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