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속성지식과 소멸성지식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불변의 법칙>에선 지식을 영속성 지식과 소멸성 지식으로 구분합니다. 꽤 유용한 개념인데 책에선 챕터 부연 설명을 위해 짧게 설명하고 있어서 제 나름의 의견을 추가해 다시 정의해봤습니다.
소멸성 지식은 현상입니다. 어떠한 사건의 피상적인 부분이죠. 시의성과 종속성이 있어 시간이 지나거나 관련 주제에 대한 관심도가 줄어들면 가치가 하락합니다. 반대로 영속성 지식은 본질입니다. 사건을 형성하는 법칙이나 원리가 영속성 지식에 해당하죠. 시의성이 없고 독립적이기 때문에 언제나 유효합니다.
부동산을 예로 들어 생각해 봅시다. ‘2021년 동안 98만 가구가 내 집 마련을 위해 패닉 바잉을 했다’는 사건 자체는 소멸성 지식입니다. 반면 기사에서 추론할 수 있는 ‘공포 심리가 매수로 이어지는 과정’은 영속성 지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멸성 지식에만 초점을 두면 21년도에 부동산 시장에 일어난 사건 자체만 보게 되지만 영속성 지식을 추론하면 비트코인이나 17세기 튤립 과열 투기 사건처럼 다른 상품, 다른 시간대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서양 격언처럼 별개의 사건들은 동일한 패턴을 지니며 반복됩니다. 패턴의 원리는 소멸성 지식이 아니라 영속성 지식에 있습니다. 영속성 지식을 유용하게 활용하면 100% 는 아니더라도 사건을 미리 예상하고 대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영속성 지식은 투자뿐만 아니라 커리어, 사업, 인간관계 영역에서도 활용도가 높습니다.
개발에 필요한 지식도 소멸성 지식과 영속성 지식으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소멸성 지식은 특정한 플랫폼이나 언어에 종속된 지식입니다. 예를 들면 파이썬에서 asyncio 라이브러리 사용법은 소멸성 지식에 해당합니다. 파이썬에 종속되기 때문에 자바나 노드제이스로 플랫폼이 바뀐다면 asyncio 라이브러리 사용법은 큰 의미는 없죠.
그러나 이벤트 루프, 코루틴처럼 asyncio 라이브러리를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비동기 프로그래밍 개념은 영속성 지식입니다. 이러한 비동기 프로그래밍 개념은 파이썬뿐만 아니라 nodejs, 코틀린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됩니다. 그래서 비동기 프로그래밍 개념은 플랫폼과 언어를 떠나서 여전히 유용합니다.
영속성 지식이 탄탄하다면 소멸성 지식은 쉽게 습득할 수 있습니다. 앞서 예로든 asyncio 라이브러리도 비동기 프로그래밍 개념이 탄탄하게 갖춰져 있다면 공식 개발 문서나 잘 정리된 블로그 글을 통해 쉽게 익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기술은 소멸성 지식을 편리하게 습득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습니다. 과거의 구글 검색 엔진이 그러했고 요즘엔 Chat GPT가 소멸성 지식을 완벽하게 정리해 줍니다. 심지어 코딩까지 대신해주는 세상이죠.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변하지 않을 겁니다.
AI 시대에선 ‘제대로 된’ 질문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답변 퀄리티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질문 못지않게 답변을 이해하는 능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AI 가 내놓은 답변을 판단하는 건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기 때문이죠. 특히 AI 할루시네이션 현상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요즘 시대엔 답변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능력이 필수입니다.
저는 ‘제대로 된 질문’ 뿐만 아니라 ‘답변을 이해하는 능력’은 영속성 지식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AI에게 모든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할 수 없고 AI 가 내놓은 답변을 모두 신뢰할 수 없습니다. 결국 핵심을 꿰뚫고 필요한 정보를 선별하고 적용해야 하는데 이건 탄탄한 기초인 영속성 지식이 갖춰졌을 때 빛을 발합니다. 그래야 AI 가 내놓은 코드를 비판적으로 보고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 개발 방식은 개발자가 직접 코딩을 하기보단 AI 짜준 코드를 프로덕트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변화될 겁니다. 지시하고 검수하기 위해선 구체적인 문법이나 라이브러리 지식보단 전반적인 원리와 구조처럼 틀을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바로 영속성 지식이죠. 그리고 영속성 지식을 얼마나 잘 갖고 있느냐가 향후 개발자의 가치를 좌우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