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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계형 개발자 Jul 21. 2024

시니어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것들

저는 자동로봇이 되겠습니다

IT 분야에서 8-9년 차는 참 애매한 연차인 것 같습니다. 다른 회사에서 8-9년 차는 과장급이죠. 위로는 차장과 부장, 아래로는 대리와 사원 사이에서 중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업무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대리와 사원의 업무를 검토하고 주도하며 리더 역할을 경험하게 됩니다. 모든 곳이 이와 같지는 않겠지만 과장이 되면서 업무뿐만 아니라 조직 생활에서 맡게 되는 역할이 바뀌고 자연스럽게 리더의 역량을 쌓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일하는 It 회사에선 직급이 없습니다. 연차는 쌓였지만 전 여전히 사원입니다. 약간 난이도 있는 업무를 맡게 되는 정도를 제외하면 여전히 시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수평적인 분위기의 또 다른 말은 개인 영역에 대한 존중입니다. 이건 프라이버시뿐만 아니라 업무 영역도 동일합니다. 회의로 결정해야 하거나 스스로 헬프를 치는 게 아니라면 서로의 영역을 터치하지 않는 게 국룰이죠. 그래서 리더가 아닌 이상 제가 타인의 업무에 직접 관여할 책임도 명분도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무언가를 알려주거나 사수를 하면서 리드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 동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대충은 알고 있지만 자세히는 모릅니다. 


IT 회사의 조직도. 리더를 제외하면 모든 연차가 수평하다

다른 회사에선 시니어가 되면서 동료들의 고민 상담도 해주고 업무를 주도하면서 책임감도 커지고 리더 역량도 쌓는다고 하는데 전 글쎄요. 8년 연차가 쌓여도 저의 업무영역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기술적인 역량을 제외하면 다른 부분들은 여전히 주니어 때랑 비슷한 것 같아요. 아직 제가 일을 만들어내거나 거시적인 사각에서 팀을 리드할 자신은 없습니다. 팀원의 고민을 상담해 주거나 조직의 문화나 분위기를 담당하는 책임은 더욱 없죠.


현재 회사 구조에선 리더가 되거나 스스로 변화를 주지 않는 이상 다른 분야의 역량을 키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아, 회사 구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네’라고 변명만 늘어놓고 싶진 않습니다. 뭔가는 해봐야죠. 그래서 저는 요즘 회사에서 ‘자동 로봇’이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시켜야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알아서 일을 만드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로봇청소기로 비유하면 리모컨을 눌러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자율 판단에 맞게 움직이고 만약 바닥 물청소가 필요하다면 알아서 물을 떠 오고 바닥을 닦는 로봇입니다.



리더도 여러 팀의 업무를 동시에 맡다 보면 모든 업무를 세세하게 지시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특정 프로젝트가 급하고 중요해지면 다른 프로젝트에는 관심을 쏟기 어렵죠. 이런 상황에서 제가 만약 리더라면 (당연한 말이지만) 나의 업무를 대신해 줄 사람을 원할 것 같습니다. 즉 팀원들이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도록 자기 대신 업무를 지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리더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이제는 리더의 자동봇이 돼서 스스로 업무를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처음엔 핀트가 어긋나는 부분도 있겠지만 리더의 입장에선 하염없이 업무를 기다리는 사람보다는 주도적으로 일거리를 찾는 사람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금씩 업무를 만들어가다 보면 어긋나는 부분들도 맞춰질 거고 리더로서의 시야와 안목도 생기게 될 거라고 봅니다. 과장은 아니지만 과장으로서의 일을 제가 맡을 수 있게 되는거죠.


동료의 업무를 검토하고 리드하는 경험은 아직 정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제게 사람을 붙여주십시오!" 이렇게 말할 수도 없고요 하하 (물론 장난입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리더의 입장에서 계속 생각해 보는 훈련을 해보려고 합니다. 왜 이런 식으로 업무 분장을 했는지, 내가 리더의 검토를 받으면서 좋았던 점은 무엇이었고 불편했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하다 보면 저의 내면에 리더로서의 역량이 간접적으로는 발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임진왜란에서 큰 공을 세운 이순신 장군은 사실 1591년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했고 이때 처음으로 수군을 맡았다고 합니다. 전쟁이 발발하기까지 불과 1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순신 장군은 평상시부터 언제나 준비된 상태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도 훌륭히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제가 준비고 있는 것들은 제가 리더가 되지 않는다면 필요 없는 것들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게 책임과 권한이 주어지기 전부터 준비를 하고 있다면 기회가 주어질 때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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