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과 짜증

by CHL

최근 2년 간, 깨지 않고 쭉 자본 날이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듯하다. 왠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통 세 네시 사이에 한 번, 네다섯 시 사이에 한 번, 총 두 번 깨곤 한다. 많을 때는 한 시간 단위로 깬다. 어제는 기어이 잠을 설쳤다.

월요일은 경영진 회의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열두 시 전까지는 자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2시에 깨버렸다. 회의에 늦지 않기 위한 기상 시간은 다섯 시 십분, 회의에 유일하게 참석하는 실무자이니만큼 지각은 옵션에 없다. 두 시간 잔 몸뚱이로 세 시간 만에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잠에 들려고 노력을 했지만, 보통 이런 밤엔 괜한 고민만 많아진다.

시튼 동물기에는 '늑대왕 로보'라는 굉장히 영리한 늑대가 나온다. 몇 년째 잡히지 않던 로보를 잡기 위해 로보의 짝 블랑카를 인질로 잡았을 때(인질이라는 표현이 맞나 싶다), '로보'는 블랑카의 목에 메여있는 쇠사슬을 땅에 묻고는 함께 도망가려고 몇 번을 시도했다고 한다. 어릴 때는 참 바보 같은 늑대로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쓰잘데기 없는 고민에는 로보의 눈 가리고 아웅이 꽤 많은 도움이 된다. 억지로 눈을 돌리면, 며칠 안가 생각이 다소 비워진다.

요즘 일과 사람 관계에 고민이 조금 있었다. 일도, 관계도, 접촉이 많아질수록 기대가 커진다. 기대는 보통 실망을 가져온다. 그러나 접촉을 줄이고 한 발짝 멀어지면 별 고민이 아니었다거나 / 내가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 아직도 밤새 고민 하는 걸 보면 나는 개만도 못한 사람인 듯하다(늑대는 개과다).

결국 새벽 네시, 집 근처 편의점에서 핫식스를 사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꽤 먹을만하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덕분에 오늘은 종일 기분이 별로였다. 밤새 못 잤으니 컨디션은 시작부터 별로였고, 몇 주째 오고 가고 있는 진지한 이야기들은 웃는 입도 쓰게 만들었다. 아직도 머릿속에서 엉켜있는 고민은 뭐 하나 집중을 못하게 했다.

하루 종일 기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꽤 노력했다(티 났을 것이다. 나는 표정에서 기분이 거의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나 오늘도 역시 시작부터 많은 일이 몰렸고, 정신없는 와중에 성에 차지 않는 업무와 몇 달째 화나게 만드는 R&R이 또다시 눈에 밟혔으며, 나의 팀원에 대한 우려스러운 피드백을 받았고, 항상 화딱지 나게 하는 정부기관은 오늘도 나를 화딱지 나게 만들었다. 그렇게 오후 세시쯤, 출근 7시간째 혼자 짜증을 삭이고 있었지만 결국엔 참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무슨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화상회의에서 보이는 폭발 직전의 표정은 참 가관이었다. 차라리 화면을 끄고 있을걸, 그 생각을 못했다. 어른이 되고 밥 값 하기 시작하면 많은 것에 초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직도 자기감정 하나 통제 못하는 건 참 부끄러운 일이다.


출근 후 13시간, 기상 후 19시간 만에 퇴근했다. 요즘은 속상하면 퍼즐 맞추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그래도 여기에 배설하고 나면 좀 낫다. 내일은 개만한 사람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