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기본기의 중요성
조직 개편 후 한 달이 지났다. 셀 구성원들은 아직 조금 버거워하는 눈치다.
염장 지르는 것 같아 드러내놓고 말하고 있진 않지만, 원래 회사 생활은 좀 빡빡하게 돌아가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해도 될까 말까 한 게 스타트업이다.
나와 같이 창업했던, 그리고 지금 이 조직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친구는 아직 불만인 듯하다. 조금 더 속도가 빨랐으면 하고, 실제 비즈니스에 유의미한 도움을 주는 기능들을 더 많이 개발하고 싶다고 한다. 십분 동의한다. 이 친구도 나와 함께 창업해서 스스로 일을 배우며, 제품 전면 개편도 1달 만에 끝내곤 했으니 속도에 불만이 있을법하다(작은 기능은 하루 이틀이면 나갔다). 아마 그때의 기억이 이 친구와 나의 업무 기본기와 가치관으로 굳어진 듯하다.
우리흥은 선수 출신의 아버지로부터 축구를 배웠다고 한다. 손웅정 감독이 우리흥을 어찌나 엄격하게 교육시켰는지 우리흥은 자기가 입양된 아이가 아닐까 하고 고민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흥은 EPL에서 가장 강한 양발을 사용하는 스트라이커가 되었다.
2002년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해버지 박지성 선수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했었던 이영표 선수는 어린 시절 빈 우유갑으로 드리블 연습을 하면서 집에 갔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토트넘 핫스퍼에 입단하고도 꽤 괜찮은 드리블러로 평가되었다(다만 당시 토트넘의 위상이 지금과는 달랐다. 그러나 축구 불모지 출신의 선수라는 것을 감안해야한다).
유벤투스의 레전드 네드베드는 코치가 아주 질릴 때까지 연습했고, '나는 하루에 12시간을 연습했고, 두 다리 중 어느 한 다리가 우월하지 않다고 느꼈을 때 처음으로 희열을 느꼈다.'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미드필더가 되었다. K리그 올스타 vs 유벤투스 때 밉상이 되기는 했지만.
단언컨대, 위대한 축구선수가 투박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있지만, 별 볼 일 없는 기본기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없다. 만원 정도 걸 수 있다.
직업인의 업무 역량도 크게 기본기와 기술로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축구의 포지션마다 갖추어야 하는 기본기가 다른 것처럼, 직업인도 큼직한 직무 구분마다 필요한 기본기가 조금씩 다르다. 경영 관리 직무라면 회계 기본 상식이 기본기 중 하나일 것이고, 웹 제품 관련 직무라면 UI/UX 관련 상식과 제품 개발 프로세스 관련한 지식이 기본기가 될 것이다.
인사 담당자, 재무 담당자, 프로덕트 매니저, 프로덕트 디자이너 등 구체적인 포지션이 정해지면 그간 쌓아온 기본기를 바탕으로 디테일한 기술(업무 스킬)이 만들어진다. 얼마만큼의 기본기를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서 기술의 성장 속도, 숙련도와 응용력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단단한 기본기를 갖추고 있는 선수들이 더 빠르게, 더 높게 성장하듯이, 튼튼한 기본기를 갖추고 있는 직업인이 더 빠르게, 더 높게 성장한다.
조직 개편 후, 나의 비공식적 참견은 공식적 관리로 바뀌었고 공식적 실무는 비공식적 지원으로 바뀌었다. 각 셀들에 조언들을 하다 보면 지금의 내 이야기가 5년~7년 전 대학 창업 동아리 & 창업 교육에 출강하며 이야기했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느껴진다. 한동안은 성장의 둔화인 듯싶어 고민했으나, 돌아서서 생각해 보니 업무 기술은 업무 기본기를 토대로 살이 붙는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10년 전에 배운 것으로 아직도 먹고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