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는 <행운에 속지 마라>부터 시작해 <블랙스완>, <안티프래질>, <스킨 인 더 게임>으로 이어지는 나심 니콜라스 탈렙의 인세르토 시리즈에 푹 빠져 있다. 최근엔 <안티프래질>을 읽었는데, 신선한 통찰이 가득해 읽는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이 책을 읽지 않은 채 살아온 시간이 아까울 정도였다.
<안티프래질>에는 최적화와 짜내기(squeeze)라는 개념이 나온다. 최적화는 작은 이득이라도 더 얻기 위해 여유분을 최대한 줄이는 것을 뜻하는데, 상황이 나빠졌을 때 대응할 여유분이 없어 큰 손해를 보게 되는 취약성을 유발한다. 짜내기는 이렇게 취약해진 상황 때문에 비용이 아무리 커도 어떤 방법을 무조건 실행해야 할 때를 의미한다. 짜내기로 인한 손해는 최적화를 통해 누적한 이득을 모두 토해내게 한다. 세상을 둘러보면 이런 패턴이 적용되는 일이 꽤나 많다.
약속시간에 딱 맞게 출발하는 버릇을 가진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야 하는 경우가 잦다. 시간을 최적화하다가 휴대폰을 집에 두고 오거나 버스를 놓치는 변수에 취약해져 택시를 타게 되는 소소한 짜내기의 예시다.
헬스를 할 때도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의 한계치까지 몰아붙이다 보면 언젠가 한 번 자세가 틀어지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부상을 당하기 마련이다. 최적화로 근육을 약간 더 붙여보려다 몇 달간 운동을 강제로 쉬게 되는 셈이다.
과거에는 건물 하중 계산법이 정확하지 않아서 집을 지을 때 철근을 빵빵하게 넣었다고 한다. 무지를 인정하고 여유분을 둔 것이다. 하지만 하중 계산법이 발전하면서 필요한 철근의 양을 거의 정확히 알 수 있게 됐고, 비용을 최적화하기 위해 철근을 아끼는 쪽으로 건설 기술이 발전하게 됐다. 이로 인해 요즘 짓는 아파트는 업자가 철근을 빼돌리는 변수에 극도로 취약해져 버렸다. 건물은 무너지고, 건설사는 비싼 아파트를 전부 부수고 다시 짓는 선택지만 남는다.
빚은 회사를 옮기거나 아플 여유를 모두 빼앗아 간다. 혹시 건강이 나빠져 일을 쉬게 되면, 순살 아파트를 사려고 영혼까지 끌어 모아 대출받은 사람은 집을 헐값에 급매해야 하겠고, 빚을 내서 투자한 경우 주식이 폭락하면 더 큰 빚을 내거나 고위험 투자에 손을 대게 된다.
무리한 부채로 굴러가는 사업도 마찬가지다. 남의 돈으로 운영하던 사업이 업황이 잠시 나빠져 망했다면, 운이 나쁜 게 아니라 여유분 없어서 망한 것이다.
당신이 고소득 직장을 얻었고, 그 소득에 맞춰 집을 사고 차를 바꿨으며 자녀를 유학 보냈다면 직장 상사의 갈굼과 야근에 취약해진다. 평소 주변에 월급 자랑을 너무 많이 한데다 다른 사람들을 깔보기까기 했다면 도망갈 구석은 더욱더 좁아진다. 괴롭힘을 당해도 참아야 하고, 모욕을 당해도 견뎌야 한다. 선장님이 포커를 치자면 쳐야 하고, 거래처 사장님이 밤새 술을 마시자면 그래야 한다. 그 회사에 어떻게든 붙어있는 것만이 당신의 유일한 선택지가 됐기 때문이다.
요즘 청년 세대는 빛나는 청춘을 1년이라도 더 즐기기 위해 최대한 결혼을 늦추는 인생 최적화에 푹 빠져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한 사람보고 뭘 모르고 멍청하다며 손가락질 하는 게 흔한 풍경이 됐다. 이런 풍조는 평균 결혼 연령을 늦췄고, 신체적 여유가 없는 부부의 건강상 변수는 난임이나 자녀의 심각한 건강 문제로 이어지곤 한다. 자녀는 부부의 인생을 모두 짜낼 수밖에 없는 유일한 선택지임을 생각하면 정말 아찔한 최적화가 아닐 수 없다.
그 밖에
너무 협소한 분야에 전문화하는 바람에 은퇴 후 가질 수 있는 직업의 폭이 극도로 좁아지는 일
강성 주장을 공개적으로 하고 다니는 바람에 생각을 바꿀 여유가 줄어들고, 특정 정치인/정책/의견을 억지로 옹호하거나 공격할 수밖에 없게 되는 일
위생을 과하게 챙겨서 자녀의 면역체계를 망가뜨리고 후일에 큰 병원비를 치르는 일
자녀가 조금의 상처도 입지 않도록 캥거루처럼 키워서 끝내 은둔형 외톨이로 만드는 일
등이 생각난다.
우리 몸이 바보라서 눈알을 두 개 들고 있는 게 아니다. 여유분까지 들고 있는 자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스스로를 어떤 목표로 너무 몰아붙이지 말 일이다. 짜내기 상황으로 몰리지 않는 것이 길게 보면 가장 최적화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