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오래 타신 부원 아저씨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과거 하역기기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인력으로 짐을 부렸다고 한다. 부두에 배를 대면 육상 인부들이 우르르 올라와 보름이건 한 달이건 짐을 퍼 날랐고 그 시간 동안 선원들은 육지로 나가 신나게 놀았던 것이다.
반면 내가 승선했던 천연가스 운반선은 부두 접안부터 출항까지 24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괴물 같은 하역 펌프 덕에 수 만 톤의 화물도 10시간 남짓이면 하역이 끝난다. 상륙은커녕 당직 운이 나쁘면 20시간 넘게 한숨도 못 자고 작업해야 할 때도 많다. 과거에는 걸음을 삐끗하더라도 한 짐 분량의 화물을 주워 담았으면 끝났을 것도, 요즘은 밸브 하나 잘못 만지면 벤트 마스트에서 영하 160도짜리 액화가스가 갑판으로 뿜어져 나온다. 예전엔 배를 일 년 타면 집을 한 채 샀다고 했지만 요즘은 꿈도 못 꿀 일이니, 월급은 줄고 책임만 잔뜩 늘어난 셈이다.
개발자로서 요즘 AI의 발전을 볼 때도 이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같은 시간에 10배 많은 코드를 작성한다는데, 다른 말로는 같은 월급에 책임져야 할 작업물이 10배 늘어난다는 말이다. 개발 실력 퇴화는 덤이고, AI가 작업할 동안 딴짓 하는 버릇으로 얻게 되는 성인 ADHD는 조만간 산재처리가 돼야 할 것이다.
평소 아니꼽던 개발자들을 AI로 대체하며 통쾌해하는 사장님들도 사실 그리 좋아할 일은 아니다. 너도나도 AI를 사용하니 다른 회사보다 돈을 더 버는 것도 아니고, 젠지세대가 "AI가 한 거라 잘 모르겠는데요" 하는 소리 들을 일만 남았다. 차라리 AI를 돌려놓고 인터넷 쇼핑을 할 수 있게 된 직원들 사정이 조금 더 나을지 모르겠다.
유발 하라리의 말마따나 우리는 10배 빨라지는 만큼 10배 더 불안해지고 있다. 모두가 충혈된 눈으로 겨자 퍼먹기 대회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망중한 대회 중에도 서로의 눈물 정도는 닦아주면 좋겠다. 그것 까지는 아직 AI가 못 하는 인간의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