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by 최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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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유시민 지음, 돌베개, 2023, 인문교양



� 읽게 된 동기 & 책 소개



나는 날카로운 통찰과 탄탄한 논리로 무장한 진보 논객 유시민도, 투사의 이미지로 기억되는 정치인 유시민도, 대중적 글쓰기를 전업으로 삼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작가 유시민도 좋아한다.


그는 ‘지식소매상’이란 별칭이 붙을 만큼 고급 지식을 대중이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재능이 있다. 작가로서 그동안 역사 정치 경제 글쓰기 여행 등 평생 인문학 분야의 글만 써온 그가 처음으로 과학을 소재로 책을 펴냈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라니, 제목부터 흥미롭다. ‘운명적 문과생’인 작가가 풀어 쓴 과학책이라면 ‘수포자’이자 ‘과알못’인 나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책장을 폈다.


그는 서문에서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는 과학교양서가 아니다. 나는 중요한 과학의 사실과 이론을 쉽고 정확하게 설명할 능력이 없다. 내가 흥미롭게 본 사실, 내게 지적 자극과 정서적 감동을 준 이론, 인간과 사회와 역사에 대한 내 생각을 교정해준 정보를 골라 나름의 해석을 얹었을 뿐이다. ‘과학을 소재로 한 인문학 잡담’이라고 하면 될 듯하다.”라고 밝히고 있다.


책은 총 6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인문학과 과학의 관계를 설명하고, ‘나는 무엇인가’라는 오랜 물음에 답하는 ‘뇌과학’으로 시작해, 우리는 왜 존재하는지 이유를 설명하는 ‘생물학’, 물질 세계의 최소 단위를 다루는 ‘화학’,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탐구한 ‘물리학’, 우주의 언어이자 천재들의 놀이인 ‘수학’의 순서로 전개했다.



✍️ 마음에 새긴 문장



� 그럴법한 이야기와 확실한 진리 (인문학과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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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단순한 사실의 집합이 아니다. 과학은 마음의 상태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실체를 마주하는 방법이다. 문과라도, 나이를 먹었어도, 과학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p.31



� 나는 무엇인가 (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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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얼마나 대단한가. 명백한 오류임을 과학자들이 분명하게 밝혔는데도, 두뇌는 계산하고 심장이 느낀다는 관념은 지식인의 언어습관에 멀쩡하게 살아 있다. 내가 다녔던 대학 경제학과의 과가 마지막 소절 가사도 “찬 이성 더운 가슴”이었다. 심장은 그저 뛰기만 하는 근육 덩어리임을, 냉철한 손익계산도 따뜻한 연민도 모두 뇌가 하는 일임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왼쪽 가슴에 손바닥을 대고 그 노래를 불렀다. 나도 아리스토텔레스 추종자였다. 당연하다. 경제학은 인문학이고, 나는 문과니까.” -p.63



“뇌에 깃든 우리의 자아는 단단하지 않다. 쉼 없이 흔들리고 부서지고 비틀리는 가운데 스스로를 교정하고 보강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견딘다. 자유의지는 그런 자아가 지닌 것이다. 자아가 불안정한데 자유의지가 어찌 강고하겠는가. 모든 전향을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으로 본다면 자아를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자아는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보다는 뇌의 물리적 변화나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 때문에 달라질 가능성이 더 높다. 인문학보다는 뇌과학과 신경생리학이 전향이라는 행위를 더 잘 설명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p.93



“내 뇌는 매순간 퇴화하고 있다. 내 자아는 날마다 어리석어지는 중이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조금이라도 덜 어리석어지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내 뇌의 뉴런이 순조롭게 다양한 연결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책을 읽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공감하고 세상과 연대하며 낯선 곳을 여행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뇌에 새로운 데이터를 공급하는 것뿐이다. 어리석어지는 속도를 늦추는 유일한 방법이다.” -p.100



“그 운명이 어찌 될지 나는 알지 못하고 책임질 수도 없다. 단지 나 자신의 삶 하나를 스스로 결정하려고 애쓸 따름이다. 악과 누추함을 되도록 멀리하고 선과 아름다움에 다가서려 노력하면서, 내게 남은 길지 않은 시간을 살아내자. 이것이 내가 뇌과학에서 얻은 인문학적 결론이다.” -p.101



�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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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모 사피엔스를 ‘진화가 만든 기적’으로 본다. 내가 기적의 산물임을 뿌듯한 기분으로 받아들인다. 이기적 유전자 이론은 내 자존감을 높여주었다. 나는 이렇게 마음먹었다. 나는 유전자가 만든 몸에 깃들어 있지만 유전자의 노예는 아니다. 본능을 지시하고 통제하면서 내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행위로 삶의 시간을 채운다.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행위로 삶의 시간을 채운다.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가치 있다고 여기는 목표를 추구한다. 살아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방식을 선택할 권한을 내가 행사하겠다. 유전자‧타인‧사회‧국가‧종교‧신, 그 누구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겠다. 창틀을 붙잡고 선 채 죽은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p.128



� 단순한 것으로 복잡한 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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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했던 최초의 생명체는 자연선택이라는 필연과 유전이라는 우연을 통해 다양한 종으로 진화했다. 그 진화의 어느 단계에서 우리 종이 탄생했고, 80억 호모 사피엔스의 한 개체인 내가 있다. 이보다 더 신기하고 극적이고 장엄한 창조 신화나 탄생 설화를 나는 들은 적이 없다. 화학이 말했다. ‘너는 내가 만든 기적이야.’” -p.184



�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물리학)



“엔트로피 법칙은 우주의 묵시록이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 나는 러셀의 말에 공감한다. 신을 믿어야 할 이유는 없다. 엔트로피 법칙은 영원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말한다. 이 우주에는 그 무엇도, 우주 자체도 영원하지 않다. 오래간다고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존재의 의미는 지금, 여기에서, 각자가 만들어야 한다. 우주에도 자연에도 생명에도 주어진 의미는 없다. 삶은 내가 부여하는 만큼 의미를 가진다.” -p.256



� 우주의 언어인가 천재의 놀이인가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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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계의 수학자라고 해서 인간계의 보통 사람보다 행복하고 훌륭한 인생을 살지는 않았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나는 그들이 부럽지는 않다. 나도 그들처럼 내가 가진 것으로 인생을 산다. 수학을 못해도 내 인생을 나름의 의미로 채울 수 있다. 그러나 굳이 부정하진 않겠다. 수학을 잘하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는 것을!” -p.288



� 바보를 겨우 면한 자의 무모한 도전 (후기)



“중요한 건 ‘바보’를 면하겠다는 결심이다. 파인만의 ‘거만한 바보’는 자신이 바보인 줄 모른다. 죽을 때까지 ‘바보’여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행복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렇게 살고 죽는 것도 하나의 인생이다. 그러나 자신이 ‘바보’였음을 알고 ‘바보’를 면하는 게 ‘바보’인 줄도 모르고 사는 것보다 낫다. 부끄러움은 잠시지만 행복은 오래간다.” -p.291



� 느낀 점



역시 나는 ‘과알못’이 맞다. 쉽고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과학 이론이 담긴 내용 중에서 내가 이해한 부분은 미미하다.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 책은 작가가 오랜 시간 과학책을 읽으며 인간과 사회, 생명과 우주에 대해 배운 바를 정리하고, 이를 인문학적 언어로 풀어낸 결과물이다. 이제 과학에 첫걸음마를 시작한 내가 온전히 내용을 이해한다면 거짓말이다.


그렇다고 배운 게 전혀 없지는 않다. 나를 알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을 알아야 한다는 당위성은 받아들였다. 앞으로 얼마든지 과학과 친해질 수 있다는 희망도 봤다. 조금 더 깊이 있는 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작가가 소개한 책들을 하루빨리 읽고 싶다는, 읽어야 한다는 의욕도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효용 가치는 충분하다.


작가는 말한다.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인문학과 함께 과학도 공부하고 싶다.” 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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