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가진 아주 사소한 징크스

by 최연신
elf-moondance-to-ski-6993894_1280 (1).png 사진출처 : 픽사베이


동계올림픽이 시작됐다. 2026년 2월 6일부터 22일까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이번 올림픽엔 93개국 3천5백 명이 참가한다고 알려졌다. 인류 최대의 겨울 축제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무색하게도, 축제의 열기가 예전 같지 않다. TV를 켜도 떠들썩한 분위기는 아닌 듯하다. 간혹 보이는 특집 방송을 통해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정도다.

메달 소식이 들려오면 분위기가 달라질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무관심의 계절 속에서도 누군가는 영하의 칼바람을 뚫고 4년이라는 긴 시간을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 바쳐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0.01초의 찰나를 앞당기기 위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고통을 견뎌낸 선수들, 그리고 그들이 안전하게 기량을 펼칠 빙판과 설원을 닦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린 수많은 사람의 노고가 떠올랐다.

사실, 나의 이 무심함 뒤에는 고약한 징크스 하나가 숨어 있다. 내가 간절히 응원하며 경기를 생중계로 지켜보면 꼭 우리 선수들이 실수를 하거나 아쉽게 패배하고 만다는 징크스다. 결정적인 순간에 스케이트 날이 삐끗하거나 다 잡은 승리를 놓치는 광경을 목격한 뒤로, 나는 ‘나의 시선’이 불운을 가져다줄까 봐 차마 화면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이 불편해졌다.

물론 터무니없다. 우주라는 거대한 질서 앞에서 겨우 먼지 한 톨만큼의 무게조차 지니지 못한 내게 누군가의 땀과 눈물로 빚어낸 결실을 가로막고 승패의 향방을 결정지을 힘 따위가 있을 리 만무하다. 무력함을 감추기 위한 가련한 방어기제이자 터무니없는 비약일 뿐임을 알면서도 이 미련한 마음은 쉽게 다스려지지 않는다.

이 비논리는 비단 올림픽이라는 거창한 무대 앞에서만 고개를 드는 것이 아니다. 돌아보면 나의 일상은 이토록 무해하고도 절박한 징크스들로 촘촘히 엮여 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매끈하게 미끄러질 것 같은 미역국이나 일을 망쳐버릴 것 같은 죽은 입에도 대지 않는 것. 특정 숫자나 색깔을 보면 불길한 예감을 떨치려 애써 시선을 돌리는 행동에도 나름의 징크스 논리가 깃들어 있다.

어찌 보면 통계적, 확률적 불운의 현상인 머피의 법칙과도 관련이 있다. 간절히 기다리는 연락은 꼭 핸드폰을 잠시 내려놓고 샤워를 하거나 화장실에 갔을 때만 울린다거나, 우산을 챙기지 않은 날에만 비가 오고, 혹시나 해서 우산을 들고 나간 날은 내내 맑고 쾌청하다거나, 버스를 놓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칠 때 평소보다 신호등의 빨간불이 유독 길게 느껴진다거나, 급한 용무로 달려간 화장실에서 내가 선택한 줄만 유독 줄어들지 않는 순간들 말이다. 분명 가장 짧아 보이는 줄 뒤에 섰음에도 불구하고, 내 앞의 문은 단 한 번도 열리지 않는 사이 방금까지 내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옆 줄의 행운을 얻어 유유히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할 때면, 세상이 나라는 존재를 표적 삼아 정교한 장난을 치고 있다는 확신마저 든다. 결국 징크스란, 잘못될 일은 결국 잘못된다라는 머피의 법칙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소심한 방벽을 세우는 일이다. 그것이 논리적으로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런 징크스에 저당 잡힌 삶은 꽤나 피곤하다. 일상의 평범한 순간마다 의미를 덧칠하고 금기를 설정하다 보면, 마음은 늘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위태로운 긴장 속에 머물기 마련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세상의 모든 우연을 마치 나의 책임인 양 짊어지고 사는 일은, 결국 스스로를 끊임없는 자기검열의 감옥에 가두는 일과 같다. 이 비논리적인 습관은, 때때로 나를 한없이 소심하고 무력하게 만든다.

이제는 이 미련한 감옥의 창살을 하나씩 부수어 보려 한다. 나의 시선이 운명을 뒤바꿀 만큼 거창하다는 오만을 버리고, 세상의 우연을 나의 책임으로 껴안았던 과도한 결벽에서도 한 걸음 물러나기로 한다.

우선은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중요한 약속이 있는 아침에도 금기시했던 음식을 기꺼이 마주하고, 불길하다고 여겼던 숫자를 피하는 대신 가만히 응시해 보는 연습을 하려 한다. 설령 그날의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것이 나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그저 삶이 우리에게 내어주는 수많은 변수 중 하나일 뿐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훈련이다.

이번 동계올림픽도 마찬가지다. 나의 응원이 불운의 도화선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누르고, 이제는 당당히 TV 앞에 앉아 그들의 치열한 궤적을 지켜보려 한다. 내가 눈을 감는다고 해서 빙판 위의 물리 법칙이 변하지 않듯, 내가 눈을 뜨고 그들을 바라본다고 해서 그들이 흘린 4년의 땀방울이 어디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임을 믿는다.

징크스라는 소심한 방벽 뒤에 숨어 숨죽여 빌던 비겁한 응원 대신, 이제는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와 스케이트 날이 얼음을 가르는 선명한 마찰음을 똑바로 마주하자. 그것이 나의 피로한 삶을 구원하는 길이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온 그들에게 보낼 수 있는 가장 예의 바른 환대일지도 모른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고통 속에서도 끝내 결승선을 통과할 당신들의 모든 순간을 이제는 똑똑히 지켜보며 박수를 보낼 것이다. 나의 시선이 불운이 아닌, 당신들의 등 뒤를 밀어주는 따뜻한 바람이 되기를 바라며. 4년의 기다림이 가장 찬란한 금빛 혹은 은빛, 아니 그보다 더 빛나는 완주의 미소로 기억되길 간절히 응원한다.



✍ 오늘의 고사성어: 파벽비거 (破壁飛去)


▶ 한자: 破(깨뜨릴 파) / 壁(벽 벽) / 飛(날 비) / 去(갈 거)

▶ 뜻: 벽을 깨뜨리고 날아갔다는 뜻으로, 오랫동안 쌓아온 실력이 때를 만나 발휘되거나 속박되어 있던 굴레를 벗어나 자유로운 경지에 이름을 비유한다.

▶ 유래: 당나라 때 장언원이 쓴 《역대명화기(歷代名畫記)》에 나오는 화성(畫聖) 장승요(張僧繇)의 일화에서 유래했다. 장승요가 안락사라는 절의 벽에 용 네 마리를 그렸는데,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눈동자를 그리면 용이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사람들이 믿지 않자 그는 용 두 마리에 눈동자를 그려 넣었고(화룡점정), 그러자 갑자기 번개와 천둥이 치며 벽을 부수고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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