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만나고 싶었습니다
�한계를 앞지른 질주, ‘멈추지 않는 기록 제조기’ 신현진을 만나다!
기획 및 취재 최연신(하상매거진 인터뷰어)
“나는 단순히 달리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안의 불꽃을 태우고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육상의 전설로 평가받는 미국의 ‘제시 오언스’의 말이다. 그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4관왕을 달성할 당시, 아돌프 히틀러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리안 인종 우월주의’를 실력으로 잠재웠던 역사적 배경과 맞물려 강력한 상징성을 갖는 인물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한계를 벽이라 부르며 멈춰 설 때, 제시 오언스처럼 그 벽을 문으로 바꾸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비장애인 육상 무대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증명한 뒤, 이제는 시각장애인 육상이라는 새로운 트랙 위에서 한국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선수, 바로 신현진(23세, 여)도 그런 사람이다.
그는 한쪽 눈의 시신경이 없는 상태로 태어나 세상이 뿌옇게 보이는 형체만을 감각하며 자라왔다. 하지만 운동장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선명한 궤적을 그리며 달렸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가장 빠른 아이’로 시작해, 전국소년체전 2관왕을 거쳐 성인 무대인 전국장애인체육대회 3관왕에 이르기까지.
어둠과 빛의 경계에서 오직 자신의 속도에 의지해 달려온 신현진. 한계를 지우고 마주한 보다 뜨거운 그의 레이스, 그 찬란한 기록의 문장들을 이제 함께 펼쳐보려 한다.
이야기 하나 _ 시력 대신 감각하게 된 것, 달리기라는 즐거움
신현진의 레이스는 태어날 때부터 남들보다 조금 특별한 조건에서 시작되었다. 선천적인 시각장애(사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일반 학교에서 비장애 친구들과 어울리며 누구보다 뛰어노는 것을 좋아했다.
“어릴 때는 육상이 저에게 노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뛰는 것 자체가 너무 즐거웠고,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그 시간이 그저 재미있었죠.”
어린 시절의 그는 그 흐릿한 세상을 ‘운동장’이라는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당당하게 마주했다. 물론 즐거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친구들의 움직임을 온전히 따라가지 못할 때 느끼는 소외감이나, 보이지 않는 장애물에 걸려 넘어질 때마다 찾아오는 막막함은 어린 그가 감당해야 할 시각장애의 무거운 뒷면이었다.
특히 사시 증상으로 인해 초점을 맞추기 어려웠던 그는 타인을 바라볼 때 시선이 엇갈리는 순간들을 떠올릴 때면 묘한 위축감을 느끼곤 했다. 시선의 방향이 어긋날 때마다 마주해야 했던 타인의 낯선 반응들은 소녀의 마음 한구석에 지워지지 않는 생채기를 남겼다. 그럼에도 그는 움츠러드는 대신 일반 학교에서 비장애인 친구들과 똑같이 어울리는 길을 선택했다.
신현진은 아주 오랫동안 자신이 시각장애인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고백한다. 장애를 의도적으로 숨기려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 상태로도 장애인 시합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정보를 뒤늦게 접했을 뿐이다. 그는 이미 비장애인 친구들 사이에서도 ‘학교에서 제일 잘 달리는 아이’였으며, 눈의 상태가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련해 왔다. 장애인 육상의 존재를 알기 전부터 그는 이미 자신의 한계를 실력으로 극복하고 있었다.
그에게 육상은 훈련이기 이전에 가장 즐거운 ‘놀이’였다. 육상부였던 언니를 따라 시작한 달리기는 그에게 세상 무엇보다 큰 재미를 선사했다. 그러나 2016년 소년체전 2관왕을 차지하며 천재성을 드러내던 그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중학교 시절, 놀이 중에 발생한 발목 골절 부상이 화근이었다. 그로 인해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부상이 재발하며 트랙을 떠나 있어야 했던 침체기를 겪었다. 그러나,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다시 신발 끈을 묶으며 트랙 위에서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 그는 묵묵히 코치의 지도를 따르며 훈련에 매진했고, 인일여고 시절 주 종목을 확장하며 다시 한번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육상 샛별’ 양예빈 선수와 비교되며 언론의 주목을 받을 때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타인과의 비교에 신경 쓰기보다 코치가 내준 스케줄을 묵묵히 소화하는 데 집중했다. 100m와 200m에 이어 400m까지 종목을 넓히며 체력과 실력을 확장한 것도 이 시기였다. 특히 그는 코너를 돌다가 직선 주로로 빠져나갈 때 느껴지는 특유의 스피드감 때문에 200m 종목에 깊은 애착을 느낀다.
이야기 둘 _ “편견을 깨기 위한 선택들”
스무 살이 되던 2023년 무렵, 신현진은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을 맞이했다. 비장애인 엘리트 무대에서 활동하던 그에게 포항시청 감독은 시각장애인 선수 등록(T12 등급)을 처음으로 제안했다. 사실 그전까지 그는 자신의 눈에 대해 스스로 안 좋은 감정을 품고 있었다. 장애를 세상에 드러낸다는 것은 처음에는 분명 불편하고 낯선 감정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곁에서 지켜보던 지도자들과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끊임없이 긍정적인 격려를 보냈고, 마침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주변에서 제 눈이 가진 특성이 오히려 대단한 일이고, 재능을 그냥 두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 말들이 제 감정을 긍정적으로 바꿔놓았죠. 장애를 공개하고 나니 오히려 사람들의 눈을 보는 게 더 편안해졌습니다.”
그는 주변의 격려를 통해 자신의 눈을 결함이 아닌, 오히려 남들보다 더 잘해낼 수 있는 ‘대단한 재능’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특별한 가능성을 그대로 두기에는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에 마침내 장애 등급(T12)을 받기로 결심했다.
2025년 초, 유튜브를 통해 시각장애 사실을 공개한 것은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받아들인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특히 그를 곁에서 지켜본 트레이너가 건넨 “위대한 선수”라는 말은 그가 선수로서 자부심을 갖게 된 결정적인 위로이자 응원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시각장애 선수로 등록한 이후에도 육상 선수로서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비장애인 대회에서 뛰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트랙 위에서 쏟는 열정은 여전하다. 다만, 심리적인 변화는 뚜렷했다. 장애를 공개하기 전에는 타인과 눈을 맞추는 것이 늘 조심스러웠으나, 이제는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한결 자연스럽고 편안해졌다. 굳이 설명하거나 감출 필요가 없어졌기에 얻은 자유였다. 숨 가쁘게 달려온 스무 살의 전환기를 지나, 신현진은 이제 자신의 장애를 날개 삼아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다.
이야기 셋 _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2025년 부산에서 열린 제45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는 신현진의 새로운 질주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생애 첫 출전이었던 이 대회에서 그는 놀랍게도 긴장보다 차분함을 유지했다. 불과 1~2주 전 일반 엘리트 전국체전을 치르고 온 직후였던 데다 부상까지 겹친 상황이었으나, 오히려 그 무거운 부담감이 그를 “내 것만 하자”는 마인드컨트롤로 이끌었다.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신현진은 400m를 시작으로 100m와 200m에 이르기까지 출전한 모든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3관왕에 올랐다. 단순히 순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세 종목 모두에서 한국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기록 제조기다운 면모를 보였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기대감을 묵묵히 견디며 오직 “기록을 깨겠다”라는 일념 하나로 트랙을 박차고 나간 결과였다.
“주변에서 한국 신기록에 대한 기대를 많이 하셨어요. 1등을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무조건 내 기록을, 그리고 한국 기록을 깨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차분하게 경기에 임했습니다.”
비장애인 전국체전 2관왕에 이어 장애인체전 3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의 이면에는 지독한 훈련과 긍정적인 멘탈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하루 3~4시간, 시즌을 대비해 겨울과 여름 전지훈련 기간에는 두세 차례의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며 체력을 비축한다. 현재도 1월 중순부터 따뜻한 제주도에서 한 달간의 전지훈련 일정을 이어가며 몸을 만들고 왔다. 멘탈 관리 또한 특별하다. 좌절의 순간이 와도 오래 머물지 않고 금방 털어내는 긍정적인 성격은 그가 혹독한 레이스를 견디는 가장 큰 자산이다.
3관왕 달성 후 예상치 못하게 받은 ‘신인선수상’은 그에게 고된 훈련에 대한 따뜻한 보상이었다. 수상의 순간, 그는 가장 먼저 곁에서 고생한 코치진과 주변의 조력자들을 떠올리며 감사를 전했다. 한국 육상계에서 비장애 전국체전 2관왕과 장애인체전 3관왕을 모두 경험한 선수는 매우 드물다. 23세라는 젊은 나이의 신현진에게 이 두 무대는 차이보다 가능성을 확인하는 장이었다.
이제 그의 시선은 국내를 넘어 세계로 향한다. 국제대회에 나가 더 뛰어난 선수들과 경쟁하며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실력을 키우겠다는 목표가 확고하다. 현재 11초대인 100m 기록을 11초 6~7대까지 당기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200m 종목에서 한국 신기록을 경신하는 것이 그가 꿈꾸는 궁극적인 목표다. 2026년 아시안게임과 패럴림픽 동시 출전을 향해, 신현진은 오늘도 멈추지 않는 기록을 준비하며 전력 질주하고 있다.
이야기 넷 _ 인생 후반부의 새로운 선택들, ‘멈추지 않는 사람’
트랙 위의 신현진은 언제나 한계에 도전하는 전사이지만, 그 직선 주로를 벗어난 일상의 신현진은 소박한 즐거움을 소중히 여기는 평범한 20대이다. 고된 훈련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특별한 취미를 가질 여유는 없으나, 그에게 유일한 숨구멍이 되어주는 활동은 바로 여행이다. 연습 일정 탓에 긴 시간을 내기 어려워 주로 가까운 일본을 찾지만, 그곳에서 쇼핑과 관광, 맛집 탐방까지 해볼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하며 에너지를 채운다. 마음이 잘 맞는 친한 지인 언니와 함께 떠나는 이 짧은 여정들은, 매일 이어지는 피로를 견디게 하는 소중한 보상이다. 비록 지금은 짧은 여행에 만족해야 하지만, 언젠가 시간이 주어진다면 캐나다나 시드니처럼 멀리 있는 나라들도 마음껏 누벼보고 싶은 꿈이 있다.
시각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그는 자신만의 균형을 잡기 위해 묵묵히 노력한다. 시각적 제약으로 인해 중심을 잡는 것이 쉽지 않기에, 그는 일상적으로 밸런스 운동, 즉 중심 잡기 운동에 매진하며 신체의 감각을 예리하게 다듬는다. 이러한 노력의 끝에 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은 그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사의 시간이다. 하지만 그는 그 영광이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하나의 성과를 내기까지 뒤에서 묵묵히 도와준 수많은 사람의 손길을 떠올릴 때, 그의 감사는 비로소 완성된다.
신현진은 시각장애라는 불편함이 때로는 자신을 움츠러들게 만든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 때로는 버거울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과 닮은 길을 걷고 있을 청년들과 청소년 선수들에게 당부의 말을 잊지 않는다. 장애라는 제약이 마음의 벽이 되지 않도록,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세상 앞에 당당하게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트랙 위에서 증명해 낸 그의 당당함은 이제 같은 꿈을 꾸는 이들에게 가장 따뜻한 응원이 되고 있다.
“시각장애가 주는 불편함과 타인의 시선 때문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저는 모든 시각장애인, 그리고 청년 선수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냥 당당하게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그의 말처럼, 신현진은 지금도 여전히 트랙 위에서, 그리고 꿈을 향해 걷는 길 위에서 매일 자신의 기록을 앞지르며 다시 태어나고 있다. 2026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과 패럴림픽을 향한 그의 질주는 이제 막 본격적인 스퍼트를 올리기 시작했다.
�출처: 시각장애인을 위한 월간문화교양지 하상매거진 2026년 3월호(통권 제1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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