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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현 Jun 22. 2017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을 통해 본 리더의 자격


좋아하는 영화다. 2년 전에 비행기에서 틀어줘서 우연히 보게 된 것이었는데 곧 빠져들어 초집중해서 몇 번을 돌려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날 그 비행기에 타지 않았다면 아마 이 영화는 끝내 안 보고 말았을 것이다. 종교적인 영화에 관심이 없는 데다 잔인한 장면이 나올 것 같은 영화는 무서워서 못 보기 때문에 나에게 이 영화는 그 제목만으로도 ‘피해야 할 영화’ 목록에 오를만하기 때문이다. 아까운 영화를 놓칠 뻔했다. 그 비행기에 타길 참으로 잘했다.      


내가 이 영화에서 주목한 것은 모세의 고뇌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어서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았음을 미리 밝혀둔다. 람세스가 매우 지질한 모습으로 나오는 것이 공평치 못하다고 느끼기는 했으나 성서에 대해서도 이집트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데다 애당초 모세가 주인공인 할리우드 영화에 공평한 관점을 기대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보았다. 이 영화에 대해 개인적인 감상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한 지 무려 2년 만에 쓰는 것이라 나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변명도 미리 덧붙이겠다.      


신의 모호한 메시지와 모세의 고뇌     



다시 말하지만 내가 이 영화에서 주목한 것은 성서나 역사가 아니라 리더인 모세의 고뇌하는 모습이었다. 신의 모호한 메시지와 모세의 고뇌. 신은 불완전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통해 존재를 보여주고 모호한 메시지만을 던져준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전달하되 구체적인 방법은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모세는 그 어린아이가 신인지, 신이 나를 돕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신이 신다운 완벽한 모습으로 현현하여 ‘내가 너를 도울 것이니라’라고 친절히 말해주는 게 아니었다니!     


따라서 모세는 모든 순간 갈등하고 고뇌한다. 사람들은 그가 모든 것을 알 것으로 기대하고 그를 따르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판단이 정말 옳은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러면서도 묵묵히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한다. 아.. 리더의 운명이란 본래 이런 것이었다. 이끄는 자는 모든 것을 알고 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판단을 믿고, 그러나 순간순간 흔들리고 갈등하면서 외롭게 앞장서는 것이다. 그리고 기꺼이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마침내 모세가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홍해 앞에 다다랐을 때 그의 갈등과 좌절은 최고조에 달한다. 자신만을 믿고 따라온 사람들이 꼼짝없이 죽게 된 순간.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한 순간. 그리고 그 유명한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그때 모세의 모습은 참으로 슬퍼 보였다. 원망이나 후회의 빛은 보이지 않았고 그저 마지막을 각오한 듯 슬프고 외로워 보였다. 결국 그는 이집트 장군 시절부터 차고 다니던 검을 홍해에 던진다. 자신과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의 운명을 신에게 맡긴 셈이자, 드디어 온전히 신을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그리고 밤이 온다.      


다음 날, 모세와 사람들은 홍해의 물이 빠져있는 것을 보게 된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익숙하고 기대하는 스펙터클한 영상과 극적인 효과는 없다. 바닷물이 쩍 하고 갈라지지도 않고 그나마 물이 완전히 없어진 것도 아니다. 그냥 물이 줄어들어 많이 얕아져 있는 모습이다. 그 시점에조차 신은 모세에게 확신을 주지 않는다. 그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그 바다를 건너도 안전할지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언제 다시 물이 불어날지 알 수 없다. 신이 일으킨 기적이니 믿고 건너도 된다는 명징한 메시지는 어디에도 없다. 그냥 뒤를 좇는 이집트 병사들을 피해 달아날 길이 하나 열렸을 뿐이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 모세는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안전하게 홍해를 건너고 그를 추격하던 이집트 병사들은 갑자기 불어난 바닷물에 휩쓸려간다.



그저 계속해서 그를 따를 뿐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게 '걸어서' 바다를 건넌 뒤에도 그 엄청난 기적에 대해 흥분하거나 모세의 능력을 찬양하고 떠받드는 사람들은 없다. (이 영화에는 없다.) 그저 계속해서 그를 따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 인간으로 감당하기 버거운 큰 책임이다.      


이 영화를 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시종 리더로서 한 인간의 고뇌와 갈등에 초점을 맞추어 보았고 그래서 이 영화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정말 좋았다. 리더에게 필요한 자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였다.      


리더는 결정적인 순간에 신이 도울 것임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리더는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공감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돕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 어떤 순간에도 확실한 길은 없다. 따라서 리더는 남보다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하며 자신의 판단력을 믿어야 한다. 리더는 불확실성과 싸우며 순간순간 흔들릴지라도 기꺼이 앞장서는 사람이다. 하나의 큰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펼쳐진다. 어떤 고비를 넘기고 어떤 성과를 냈건 리더에게는 자만심에 빠져 우쭐거릴 시간이 없다. 그리고 리더는 결정적인 순간에 신이 도울 것임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나 자신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많이 돌아보게 했던 영화였다. 그리고 여러 장면에서 위안을 얻었다. 특히 모세도 모든 일의 처음과 끝을 다 알고 이끌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부분이 내게는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알기 때문에 이끄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소명 의식을 바탕으로 나의 판단력을 믿고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이 끝내 옳은 것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신이 도울 것임을 믿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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