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는 것의 팍팍함이란...
일을 관두고 쉬는 기간이 길어져서 돈이 바닥이 났다.
당장 생활비는 물론이고 다달이 상환해야 하는돈까지 급하게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닥친 적이 있었다.
일이야 새로 구하면 되지만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월급날까지 기다릴 만한 상황이 도저히 아니었다.
카카오 대리운전이 업계에서 급부상하고 있던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그때 쯤의 겨울이었다.
대리 운전을 하고자 결심은 했지만 역시 쉽지않았다.
사실 난 대리 운전 경험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하려고 했던 경험이.
사무실에 가서 기본적인 메뉴얼을 숙지한 후그나마 익숙한 집 근처에서 콜을 잡기 위해 기다렸고 오래 지나지
않아 첫 콜을 배정 받았다.
나름 다른대리 기사와 차별화를 한다며 술 취한 손님을 위한 서비스로 박카스까지 한 병 사서 가방에 넣은 채였
다.
누가 그랬었다.
아무것도 아닌 박카스 한 병에 간혹 고마움을느낀 손님들중에서 적지 않은 팁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순수한 호의라기 보다는 백퍼센트 꼼수를 부린셈이었다.
그러나 난 그날 처음 배차 받은 콜을 잡지못했다.
배차를 받긴 했다.
그것도 집 근처의 왠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랜드마크쪽으로.
그러나 원래가 방향 감각이 없고 길치였던 난어디어디라고 말을 해줘도 잘 모른다.
주소를 알고 지도를 손에 들고서도 한참 해맨적이 많았다.
그날도 똑같았다.
손님과 통화를 하고 나서도 한참동안 근처에서 어딘지 감도 잡지 못한 채 맴돌기만 했다.
빨리 오기를 재촉하는 손님의 전화가 계속 왔다.
그러나 난 받을 수가 없었다.
그런 경험이 이미 있었던 내가…
카카오 대리를 해보겠다고 마음 먹은 건 단순했다.
기업 이미지 때문이었다.
일반 대리운전 업체의.. 뭐랄까...
카카오 대리는 메뉴얼이 초보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을 정도였다.
콜 배정을 받은 후 차주에게로 가는 경로가 GPS로 안내됐고 자체 내비게이션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등록된 카
드로 결제가 자동으로 되어 손님과 요금으로 실랑이를할 필요가 없다는 게 너무 좋았다.
실제 운행을 해본 결과 손님들의 매너도 대부분좋았다.
대리 기사를 부르는 차주들의 추한 꼴을 많이본 나로서는 그런 것들만으로도 카카오 대리에 대한 신뢰를 가지
게 됐다.
콜을 하나 잡은 곳에서 다시 콜을 잡고 이동하는식으로 움직여야 공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수입을 극대화
할 수가 있는데, 난 항상 운행 하나가 끝나면버스를 타고 첫 출발지로 와서 다음 콜을 잡았다.
그런 식으로는 하루에 두건도 간신히 하는 지경이었다.
첫날은 두번째 운행 완료 후 간신히 심야버스를타고 오긴 했으나 버스 정류장이 집에서 너무 먼 곳이어서 한시
간 반 가량 걸어서 와야 했다.
그날 밤길을 걷다보니 나와 같은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그 시간에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스마트폰을 주시하고 있으며 귀에 이어폰을 꽂았거나 마스크를 쓴 사람들
은 열이면 열 모두 대리기사들이었다.
벌어먹고 사는 것에 대한 구차함과 노동의 신성함을동시에 느낀 밤길이었다.
겨울이고 연말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축제 분위기에 취해 있는데 난 단돈몇 만원 벌자고 기온이 영하까지 떨
어진 이 추운 겨울에 뭐하고 있는 건가,라는 자괴감이 들 때도 많았다.
서울 외곽에 운행을 나갔다가 심야버스를 겨우잡아타고 동대문에서 내린 후 다시 집으로 오는 다른 심야버스
를 탔던 날도 있었다.
그날은 그 멀리서 심야버스를 타고 온 것만해도대단하다고 생각돼 그대로 마무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서울 월계동을 갔다가 나올 때 삼십 분을 걷고그곳에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따라서 겨우 버스를 잡아탄 후 버
스 안에 누가 토해놓은 토사물을 확인하고 경악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길래 따라 내렸다가 그곳에서인천행 오만 원짜리 콜을 잡았다.
사십 분을 달려 도착한 그곳에서 난 분명 한국땅임에도다른 공기가 느껴지는 인천 특유의 어떤 냄새를 맡았다.
유흥가와 모텔들이 밀집한 지역이어서 그랬는지도모르겠다.
취해서 비틀거리며 이미 모텔에 들어가있는 남자와통화를 하며 어떤 모텔인지 찾는 여자를 봤다.
십오 분 정도 걸어서 번화한 거리에 도착했고, 어떤 나이트클럽 앞에 죽치고 있는 딱 봐도 가출팸인 것 같은 아
이들을 보고 겁을 먹기도 했다.
알고 보니 늦은 밤의 인천은 조심해야 하는곳이었다.
물론 인천이라는 도시의 이미지를 훼손하기 위해이런 말을 하는 건 절대 아니다.
유독 내가 그 늦은 시간 있던 곳이 그런 곳이기때문일 터였다.
어느 나라,어느 도시를 가도 항상 밤 늦은 시간은 조심해야 되는, 거기가 그런 곳 같았다 .
대리운전은 딱 연말까지만 했다.
일한 일수로 따지니 딱 열흘이었다.
새해부터 출근을 하기로 한 회사가 있기도 했고, 퇴근 후에는 어떤 가게의 매니저로 일해 주기로 약속이 돼있었
다.
그날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콜을 잡으면서 연달아이동을 해서 수입을 극대화 한 날이었다.
네 번의 운행을 하고 십만 원을 벌었던.
마지막 운행을 한 손님은 나보다 다섯 살 정도어린 남자였다.
와이프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결혼 삼 년 째지만 아직 엄두가 안 나서 애는가질 생각도 못한다고도 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까 생각 중이라고도.
연말이라 회식이 연이어져서 그날도 저녁 5시반경부터 이어진 술자리가 아직까지 이어진 거라고 했다.
내가 그 손님을 만난 시간은 새벽 세 시경이었다.
남은 사람은 여태 마시고 있다고도.
비슷한 나이여서 그런지 사는 것에 대한 팍팍함이랄까..
묘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 손님을 내려주고 난 또 한시간 가량을 걸어서집에 와야 했다.
운행을 하면서 조금씩 내리던 눈은 폭설 수준으로변해 있었다.
폭설이 아니었더라면 집까지 걸어가는 그 한시간가량이 조금은 짧게 느껴졌을까?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린 그 길의, 나 외에는 걸어 다니는 사람 하나 없던 새벽 세시 반의 늦은 시간의 그 길들
은 참 쓸쓸해 보였다.
걸어가는 나도 그날 밤 따라 유독 쓸쓸했지만, 그 길 자체도 쓸쓸해 보였다.
그때의 겨울은…
12월 말경의 어느 날 밤은 그랬다.
누군가에게는 힘겹고 팍팍했고 절박한..
그런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