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사십 중반을 넘어섰다.

by 우성

브런치에 한참 집중해서 글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브런치라는 플랫폼의 매력을 느꼈고, 뭔가 여기에 글을 쓰면 책을 내고 정식 작가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도 가지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글쓰기'는 주업이었다. 물론 그게 돈이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난 어떻게든 글을 써서 먹고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였다.

그러다가 생산성이 없는 글쓰기에 에너지를 낭비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브런치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몇 년이 지났고 내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늘 방황만 하다가 드디어 운명의 짝을 만났다. 수년의 연애 후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됐다. 결혼을 하면서 맨날 작은 자취방만 전전하다가 집다운 집으로 옮기게 됐다. 그렇다고 허름하더라도 요즘 집의 상징이 된 아파트를 전세건 자가건 얻어서 들어갔다거나 청약이 당첨돼서 신축에 입주를 한 것도 아니었다. 서른 평짜리 빌라 같은 평범한 출발도 아니었다.

그저 상가건물의 열다섯 평 정도 되는 방 두 개짜리 월세로 옮긴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내겐 큰 변화였다.

큰(?) 집에 어울리게 소파도 여느 가정집에 있을만한 걸로 들여놨고, 맨날 행거에 걸어놓던 옷도, 제대로 된 옷장에 사서 수납을 했다. 자취방에 보통은 있기 힘든 양문형 냉장고도 새 걸로 장만을 했고, 무엇보다 주거상 가장 큰 변화는 내가 살아본 곳 중 가장 높은 곳이라는 거였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곳은 3층이다. 그전에는 높아봐야 2층이나 보통은 반지하나 일층이 대부분이었다. 아, 내가 살아본곳 중 가장 오래 살고, 가장 허름했던 곳이 3층 건물의 옥탑이었으니 거기까지 포함하면 두 번째였다.

3층에 살아보니 일단 바깥 풍경을 보는 게 가능해졌다. 비가 오면 침대에 걸터앉아 비 내리는 하늘과 , 비에 젖은 세상을 보는 맛이 있었고, 눈이 오면 또 가늘건 굵건 눈이 내리는 하늘과 눈이 덮인 새하얗게 변한 세상을 보는 맛이 쏠쏠했다.

집에서 아내와 둘이 술을 한잔하고 살짝 취한 얼굴로 담배 한 대 물고 아래를 쳐다보는 재미도 있었다. 나는 상관이 없었지만 그전에 둘이 살던 반지하에서 결혼시작을 하는 건 죽어도 싫다고 하던 아내가 고른 집이었다. 둘이 살 때는 상관이 없던 반지하가 왜 결혼을 하면 죽어도 안되는지는 나중에 알았다. 어쨌든 아내가 그렇게 고른 월세집은 우리에게 점점 추억이 쌓이는 공간이 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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