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당하기 연습

거절이 두려운 모두에게

by 최하늘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8112109491526383


‘거절당하기 연습’에 대한 기사를 접한 지 수년이 지났다. 글로만 봤을 때는 ‘그냥 하면 되잖아? 별거 아닌 거 같은데?’라는 오만함이 앞섰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매번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미뤄 왔다. 그러다 마침내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새로운 취미로 컬러링 북을 하려던 참이었고, 지우개 두 개 고른 다음 하나를 공짜로 달라고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화방에서 연필과 지우개를 사기로 했다. 그런데 글로만 읽을 때와 달리, 직접 실행에 옮기려고 하니 상상만 해도 떨렸다.


긴장을 안고 화방에 입장했다. 카운터에는 계산 전담하는 직원 하나와 매장을 안내하는 직원이 둘이 있었다. 계산 전담 직원은 나이가 어려 알바로 보였고, 나머지 둘은 사장 혹은 관리자처럼 보였다. 그들은 끊임없이 고객에게 관심을 보이며, 필요하면 물건을 직접 가져다줬다. 문제는 거절당해야 할 사람이 그만큼 늘었다는 것이다. 마음은 두 배로 무거워졌다.


우선 계획대로 지우개를 고르고, 연필을 집어 들자마자, 남직원이 다가와 어떤 연필을 찾느냐고 물었다. 친절하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 같았다. 어쩔 수 없이 4B 세트라고 하자 “톰보우요?”라고 하며, 카운터에서 바로 가져다줬다. 그의 친절이 오히려 속을 뒤집었다. “좀 더 둘러보고 올게요.” 도망치듯 말했다. 내 속을 모르는 남직원은 바구니를 건네며 여기에 담으면 된다고 했다. 제발 그만 친절해 주세요.


바구니를 들고 괜히 매장을 빙빙 돌았다. 넓은 매장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떨림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마냥 돌아다닐 수만은 없어, 필요 없는 물건들을 하나씩 주워 담았다. 스케치북, 포스트잇, 연필깎이, 연필깍지… 바구니가 무거워질수록 내 마음도 덩달아 무거워졌다.


이러다가는 ‘오늘 집에 못 들어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고 카운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80% 정도 결심이 들었을 때, 남직원이 나를 보더니 순수한 얼굴로 계산할 거냐고 물었다. 아직 결심하지 못했는데 반사적으로 “네.”라고 대답했다. 제기랄. 왜 그랬을까?


그가 바코드를 찍었다. ‘삑’ 소리가 카운트다운처럼 울렸다. 물건이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숨을 쉬기가 어려워졌다. 폭발을 예감하면서도, 발사를 멈출 수 없는 우주선에 타고 있는 듯했다. 계산이 끝났고,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저 죄송한데… 지우개 하나만 공짜로 주시면 안 될까요?”


남직원은 웃으며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용기가 가상하다고 했다. 다행히도 우주선은 폭발하지 않았다. 대신 도파민이 폭발했다. 두려움은 사라지고, 짜릿함과 안도가 뒤섞여 밀려왔다.


대화를 들은 여직원이 웃으며 지우개를 가져오고 있었다. 그 틈에 수줍게 남직원에게 거절당하는 연습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여직원에게 지우개와 기대하지 않았던 연필깍지도 덤으로 받았다. 나는 고개 숙여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여직원은 인사도 잘한다며 칭찬했다.


가게를 나와서도 두근거림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행복했다. 그 떨림은 아직도 내 안에서 숨 쉰다. 지금 그 지우개와 연필깍지는 내 방에서 조용히 미소 짓는다. 그리고 내 마음의 궤도 속에서도 오래도록 공전할 것이다.


어쩌면 당신도 함께.


https://youtu.be/-vZXgApsPC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