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의 값

by 최하늘

겨울이 저물 무렵, 나른함을 만끽하고자 강아지와 산책을 나섰다. 산책은 마음을 가꾸는, 곧 내면의 숲에 물을 주는 시간이었다. 걸음마다 묘목이 한 그루씩 자랐다.


시장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한 할아버지가 끌차에 몸을 기댄 채 서 있었다. 끌차 위 빈 마대가 그의 위장을 대변했다. 노인은 행인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웨웨에 왜왜.” 노인이 입을 벌리자 앞니가 빠져 송곳니만 도드라졌다. 짐승 같은 외양과 달리 목소리는 힘이 없었고, 애원에 가까웠다.


애써 외면했지만 노인의 메아리가 내 숲에 울려 퍼졌다. 되뇌다 보니 ‘빵 하나만 사 주세요’로 들려왔다. 그 말이 불씨였다. 그냥 지나치면 두고두고 마음에 남을 듯했다. 심호흡으로 진정시키려 했지만 내면의 숲에서는 그 숨결이 강풍이 되어 불씨를 키웠다.


강아지는 내 마음 따위는 알아주지 않고 쫑쫑 앞서 걸었다. 그 순간만큼은 강아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개만도 못한 사람이었고 그저 끌려갔다. 목줄을 쥔 건 내가 아니라 강아지였다.


마음의 불씨는 집까지 따라왔다. 집은 평온했어도 내 숲은 불타고 있었다. 강아지 발만 대충 씻기고 곧장 뛰쳐나왔다. 그가 자리를 옮겼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화마로 번져 숲을 뒤덮었다. 발걸음이 빨라질수록 숨이 가빠졌고, 숲에서는 재가 흩날려 목을 조였다.


시장 쪽으로 가자 다행히도 노인은 여전히 행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어눌한 말투는 정신 나간 사람 취급받기에 알맞았다. 나는 무심한 듯 그에게 다가갔다.


“빵 하나만 사 주세요. 배고파서 그래요.” 내가 두려워하던 말이 그대로 흘러나왔다.

“빵이요?” 나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다시 물었다.

“예.”


바로 근처 마트로 들어갔다. 노인의 요청대로 빵을 집으려다 3개입 묶음 앞에서 손이 멈췄다.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텐데 굳이 비싼 걸 사 줘야 하나. 그까짓 거 얼마나 한다고. 가격을 저울질하는 내 모습이 역겨웠다. 그럼에도 1,500원짜리 보름달 하나를 집었다.


빵만 건네긴 미심쩍어 우유 코너로 향했다. 영양을 생각해 큰 팩을 집으려 했지만 역시나 손이 가지 않았다. 결국 작은 팩을 골랐다. 계산을 마치자 빵과 우유 대신 양손에 위선이 들려 있었다.


내 속내를 알 리 없는 노인에게 빵과 우유를 내밀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하는 일 잘 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임종 직전처럼 쥐어짜듯이 말했다. 위선에 대한 최선의 보답이었다.


씨발.


더 잘해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만 불어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창작의 구실에 불과했고, 치워야 할 걸림돌이었다. 나는 부끄럽게도 글쓰기 소재에 목말라 그의 곁에 더 머물렀다.


그의 모습을 관찰하다 보니, 돈 주고 사면 안 되는 걸 돈 주고 산 내가 미워졌다. 처량한 모습을 마저 보고 싶었으나, 끝내 내가 더 비참해질까 봐 자리를 떴다. 그제야 숲의 불길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도 숲은 잔열을 품고 있었다. 분명 잘한 일이었을 텐데, 불을 끄느라 하루 종일 진이 빠졌다. 글로 옮기고 나서야 숲은 진화(鎭火)되고 진화(進化)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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