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랜드 가는 길에
강원랜드는 내게 욕망과 두려움의 성지였다. 한 번은 가 보자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지금은 바쁘잖아’ 같은 말로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3년을 미뤘다. 그러다가 강원랜드를 소재로 소설을 쓰고 싶어졌고, 그러려면 내가 가야 했다.
나는 극단적인 경험이 영감을 나눠준다고 믿었다. 그래서 더욱 좌절과 절망의 공기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잭팟을 노리고 인격마저 베팅하는 사람들—그건 내가 매체로만 만들어 둔 카지노의 환상이었다.
떠나기로 마음먹은 날 새벽. 눈을 뜨자 창밖은 잠들어 있었다. 알람은 울지 않았다. 이상하게 몸이 가볍고 눈이 감기지 않았다. 시간을 보니 5시 50분. 일어날 시간보다 30분 늦었다. 알람을 오후로 맞춰 둔 탓이었다. 샤워는 건너뛰고 머리만 감았다. 어제 싸 둔 짐을 헐레벌떡 들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에서 코레일 앱을 켜 사북행 표를 찾았다. 그런데 사북행만 매진이었다. 아침부터 강원랜드로 가는 사람이 많나 보다. 나는 하는 수 없이 7시 30분 표를 눌렀다. 늦잠 탓에 시간이 아슬아슬해 화면만 뚫어져라 봤다.
늦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운 탓에 환승을 놓쳤다. 다른 역에서 내렸다는 걸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뛰어도 7시 30분 기차는 못 탈 게 분명했다. 코레일 앱에서 표를 취소했다. 한숨이 먼저 나왔다.
계획이 틀어지자 의욕이 꺼졌다. ‘오늘은 그만하고 집으로 돌아갈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미루기와 작별하고 싶었다. 도착해서 어떻게 되든, 일단 가 보자는 마음으로 청량리역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환승해서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허둥대다 교통카드를 두 번 찍는 바람에 쓸데없이 추가 비용이 나갔다. 역무실로 가봤지만 내가 실수로 찍은 거라 환불이 어렵다고 했다. 나는 최대한 담담하려고 애썼다. 해뜨기 전에 집을 나와 혼자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대었다.
무인 발급기에서 입석 표를 끊었다. 10시쯤 동해행 무궁화호가 역에 들어섰다.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사북으로 간다. 예전에 이 근처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출발점에서 나는 또 다른 욕망의 끝으로 향하고 있었다.
기차에 오르자 앉을 자리는 없었다. 좌석 맨 뒤에 남은 좁은 공간에 내려앉았다. 바닥이 차가웠다. 나는 무릎을 세우고 가방을 끌어안았다. 그 자세가 문득 오래된 기억을 건드렸다.
기차를 마지막으로 탔던 건 5살쯤, 어느 날 밤이었다. 아빠를 만나러 가기 위해 엄마와 무궁화호에 올랐다. 왜 굳이 그렇게 멀리까지 가야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빠를 만나고 뭘 했는지,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기억이 없다. 그때 내가 어떤 감정을 품고 있었는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확실한 건 그날 잡았던 엄마 손뿐이었다. 그립다. 이런 기억도 내 삶을 지탱해 줄 수 있을까. 힘들 때면 기댈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사북으로 가는 걸까, 아니면 과거로 가는 걸까. 기차는 앞으로만 가는데 나는 뒤로만 갔다.
승무원과 승객이 이따금 통로를 지나 내 앞을 스쳐갔다. 나는 그 자리에서 벽에 기대 반쯤 몸을 눕혔다. 고관절이 쑤셔 왔다. 견디려고 펜과 메모장을 꺼냈다. 기차가 흔들릴 때마다 글씨가 흩날렸다.
좁은 데서 오래 버티다 보니 다리에 쥐가 나기도 했다. 빈자리가 보이기도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일어서면 어릴 때의 기억이 달아날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내릴 시간이 됐다. 가방을 메고 얼룩진 차창을 바라보니, 기차가 끼익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섰다. 나는 별생각 없이 플랫폼으로 내려섰다.
하늘이 유난히 푸르렀다. 사방의 산이 나를 감싸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려서 역명을 확인하니 민둥산역이었다. 한 역 일찍 내린 거였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 역 이름을 못 들은 내 탓이었다. 강원랜드 도착까지 시간이 또 늦어졌다.
일정이 꼬였지만 별수 없었다. 버스 도착까지 시간이 남아 요기를 하기로 했다. 근처 편의점으로 갔다. 문 앞에는 ‘콤프 마감’이라고 붙어 있었다. 서울보다 도시락이 많았다. 입맛이 없어 유부초밥을 골라 의자에 앉았다.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카운터에서 흘끔흘끔 나를 봤다. 외지인이 와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익숙한 경계심일까.
유부초밥을 절반쯤 먹었을 때 부녀가 문을 열었다. 소녀는 아버지 손을 잡고 들어왔다. 사장은 그 둘에게는 반갑게 인사했다. 그 손을 보는 순간, 기차 안에서 떠올렸던 엄마 손이 겹쳐졌다. 나처럼 스쳐가는 사람이 아니라, 이 근처에 사는 주민으로 보였다.
그 동네는 어딜 가든 콤프 얘기가 붙어 있었다. 소녀가 크면 콤프가 뭔지 궁금해지는 건 당연할 터였다. 부모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답해야 할까. 그런 것에 관심 갖지 말라고 다그쳐야 할까. 카지노에서 게임을 하면 쌓이는 마일리지라고 뜻 그대로 말해줘야 할까. 모른 척 넘어가야 할까. 이곳에서 이 소녀는 어떻게 자랄까. 유부초밥을 다 먹고 나서도 정답을 내지 못했다. 그저 소녀가 어쩔 수 없이 일찍 철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고뇌를 메모장에 끄적이다 보니 버스가 올 시간이 다 됐다. ‘그나저나 왜 민둥산역이지. 나무가 이렇게 빽빽한데’라는 의문을 풀지 못한 채 버스는 뒤뚱뒤뚱 출발했다. 창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소녀를 걱정하면서도, 나는 강원랜드로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