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르기 아니에요
나는 계란을 못 먹는다. 메추리알, 오리알, 타조알도 마찬가지로 못 먹는다. 이런 식성을 알게 되면 질문이 따라온다.
“계란 알레르기 있어요?”
“아니요.”
“그런데 왜 못 드세요?”
“……”
그동안은 사실대로 말하면 분위기를 망칠까 봐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굳이 아픈 기억을 꺼내고 싶지도 않았다.
“계란이 들어가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불편하겠어요.”
맞다. 불편하다. 생각보다도 더 많은 음식에 계란이 들어간다. 그래서 나 때문에 우리 집 음식은 계란이 안 들어가는 게 기본값이다. 간혹 내가 먹을 것만 따로 만들기도 한다.
“계란을 빼 달라고 하면 되지 않아요?”
그나마 샐러드처럼 토핑으로 올라가는 건 빼 달라고 하거나 덜 수 있으니 괜찮다. 그래도 괜히 눈치가 보여서, 일단 그대로 받아 앞접시에 따로 덜어 놓는다. 계란을 안 먹겠다고 말하면 그만큼 할인해 주면 좋겠지만, 세상은 그런 배려까지는 해 주지 않는다.
“계란 들어간 것 중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다행히도 계란이 들어간 모든 음식을 못 먹는 건 아니다. 계란의 형체만 보이지 않는다면 먹는 데는 거리낌이 없다. 과자와 빵, 어쩌다 먹는 에그타르트도 문제없다.
“그래서 왜 못 먹는다고요?”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 중 하나다. 다섯 살 때 할머니가 해 준 계란프라이를 먹다가 헛구역질했다. 그때부터 김밥을 먹을 때는 지단을 빼서 먹어야 했고, 다른 아이들이 좋아하는 계란과자도 손을 못 댔다.
그래도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나아졌다. 유치원에 들어간 일곱 살 무렵부터는 김밥의 지단도 빼지 않아도 됐고, 삶은 계란의 노른자도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계란 특유의 냄새는 여전히 역했다. 냄새만 맡아도 입맛이 뚝 떨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유치원 점심시간에 계란말이와 김치찌개가 나왔다. 계란말이는 그때까지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어서 나는 근심 어린 얼굴로 반찬만 깨작거렸다.
반찬을 이리저리 굴리며 버티다 보니 친구들은 하나둘씩 다 먹고 자리를 떴다. 나만 여전히 식판 앞에 앉아 수저만 만지작거렸다. 내 앞에는 계란말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도저히 그걸 먹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 선생님이 내 자리에 다가왔다.
선생님은 숟가락에 계란말이를 하나 올리고 그 위에 김치를 얹어 내 입으로 밀어 넣었다. 설명도, 묻는 말도 없었다. 입을 굳게 다물며 저항했지만, 입안으로 이물감이 밀려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제대로 씹을 새도 없이 목구멍으로 타고 내려갔다. 비린내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세 번을 반복하자 점심시간도 끝나 버렸다.
그날 하루 종일 나는 울상이었다. 그 선생님에 대한 내 기억은 이 점심시간 하나뿐이다. 그녀에게는 수많은 점심 중 한 번이겠지만, 나에게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점심 한 번으로 남았다.
그 사건 이후로 계란은 절대 입에 대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급식을 먹기 시작했다. 나를 맡았던 몇몇 선생님은 잔반을 조금만 남겨도 바로 지적했다. 몇 해 동안 급식 표에 계란이 보이는 날이면 한숨부터 나왔다.
급식에 계란이 나올 때마다 최대한 늦게까지 버텼다. 그러면 선생님은 점심시간 끝나기 10분 전에 버리라고 말했다. 그때쯤이면 급식 당번이 이미 잔반통을 치워 버린 뒤였다. 나는 식판을 들고 복도에서 놀고 있는 친구들 사이를 헤쳐 나가 1층 급식실로 내려가 우물쭈물 말해야 했다.
“이거… 버려 주세요.”
식판을 내려놓고 돌아오는 길이 참 멀게 느껴졌다.
성인이 된 지금도 “왜 계란 못 먹어요?”라는 가벼운 질문 앞에서, 그때의 식판을 꺼내 보이기는 어렵다. 계란을 못 먹는다는 한마디 뒤에, 나는 여전히 그때의 점심시간을 숨기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