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식이와 한 몸이 된 그날 밤
이번 주제는 고구마다. 왜냐고? 아무튼 그렇게 됐다. 주제를 선정하고 한참을 고민했다. 고구마튀김을 좋아하지만 이걸로 어떻게 글을 쓰나. 백날 머릿속으로만 굴려 봐야 바뀌는 건 없다. 그래. 없으면 만들면 되지.
고구마 축제부터 찾아봤다. 긴 여름이 끝나고 가을도 저문 11월에 누가 고구마를 캐겠는가! 축제는 진작 다 끝난 상태였다. 아, 어떡하지? 애완 고구마라도 키워야 하나? 어? 애완돌도 키우는데 고구마라고 못 키울게 뭐야. 마침 집에 먹다 남은 고구마도 있겠다. 흐흐흐. 이걸로 고민 끝.
고구마 박스를 들춰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놈으로 하나 골랐다. 원산지를 보니 해남이다. 그래서 뻔하지만 고춘식이라고 작명했다.
반갑구마. 인쟈 니 이름은 춘식이여.
페트병을 잘라 물을 채우고 고구마를 담가 두었다.
뭔가 이상함이 느껴져서 찾아보니, 햇빛을 받아야 한다더라. 아이고 상당히 귀찮은 놈이었다. 그래 나 대신 너라도 많이 받아라. 창가로 옮겼다.
다시 보니까 거꾸로 심었네. 에이씨 바보.
추워서 반응이 없는 것 같아 방 안에 다시 두었다.
아무런 변화가 없다. 속이 터질 것 같다.
10일 차.
아직도 그대로다. 예쁘게 키워서 성장기를 올리려고 한 기대가 무너졌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최후의 수단을 쓰는 수밖에.
“춘식이는 오늘 밤 수청을 들라.”
“예?!?!? 나으리—, 춘식이는…”
“어허! 맛만 좋으면 그만 아니더냐! 춘식아, 옥체나 깨끗이 하거라.”
따뜻한 물에 닿자 춘식이 몸이 서서히 달아올랐다. 뽀얀 증기가 피어오르며 춘식이를 한층 더 탐스럽게 감쌌다.
그날 밤, 나는 춘식이의 옷을 한 겹 한 겹 벗겨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속살이 드러나자 달큼한 향이 코끝을 찌르더니, 뜨거운 숨이 얼굴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나와 춘식이는 서로의 배가 맞닿으며 하나가 되었다.
결국 춘식이와의 관계는 끝났다. 열흘 동안 설레고 허둥댔지만, 남은 건 텅 빈 페트병과 헛발질 몇 번뿐이다. 그래도 괜찮다. 이렇게 끝나는 사이도 있는 법이다.
모든 걸 잘할 수 없듯, 모두에게 잘해 줄 수도 없다. 고구마도 그렇다. 같은 줄기에서 나와도 모양이 천차만별이다. 작은 건 짧게, 큰 건 길게 익혀야 한다. 모두에게 똑같이 잘해 주는 건 여러 자식을 둔 부모의 영역이다.
완벽한 사랑을 내보이면, 오히려 불신을 사는 세상이기도 하다. 미움 좀 받으면 어떤가. 사람에게 구워지고 삶아지는 건 춘식이 하나로 충분하다.
이 글도 누군가에겐 시시하고, 누군가에겐 불편할지 모른다. 그래도 그런 어긋남을 감수해야 관계가 한 발 나아간다.
이렇게 말해 놓고도 나는 여전히 어긋남이 두렵다. 서툰 모습이 누군가에겐 별로인 사람으로 남을까 봐 전전긍긍할 때가 많다. 이 글도 그런 서툰 모습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도 올려 본다. 오늘은 토마토처럼 얼굴이 좀 빨개지면 어떠랴.
장내미생물이 돼 버린 고(故) 춘식이를 추모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