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야 Dec 13. 2022

돌고 돌아 영어전담교사로

사실은 영어교육전공이라서


 그렇게 잠이 들었는지 여느때와 같이 아이 하원을 하러 나갔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게 또 일상에 파묻혀 지내고 있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번아웃인가? 그 이후로 같은 강도의 상황은 다행히 오지 않았다. 하지만 밀폐된 공간이나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 있을경우 왠지모르게 숨이 차오르면서 견딜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간혹 받는다. 그때마다 상황을 부정해보지만 그날의 후유증이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틀림없다.


 어김없이 계약시즌이 돌아왔다. 계약을 몇번 치뤄보니 결과에 대한 어떠한 예상이나 기대는 정신건강에 아주 해롭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계약직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볼때마다 항상 변수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사실 계약직을 뽑는 절차 자체가 학교관리자들에겐 번거러운 일일뿐 나의 능력과 무관하게 명퇴하신 전직 초등 교사나 갓 임용되어 발령대기중에 있는 새내기 예비정교사가 이 자리를 탐내기라도 하면 나는 예외없이 탈락이다. 


 그런데 진짜로 변수가 일어났다. 보결교사는 누구도 탐내는 자리도 아니고 내가 될수 있는 자리였는데 같은 학교에 영어전담 자리가 비게 된 것이다. 그렇다. 나는 중등영어 정교사 2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공고가 났다. 기간도 동일하다. 당연히 같은 자리에 지원했고 되리라 어느정도 확신했다. 하지만 면접에서 교감 선생님이 영어전담 자리를 제안하는 것이 아닌가. 공고에 '영어교사 자격증 소지자 지원 가능'이라고 명시했으면 수많은 장롱속의 자격증들이 튀어나왔을텐데. 젠장. 속으로 '계약문제에서 만큼도 나는 끝까지 부품이구나'하고 생각했지만 초심을 유지하며 빠른 판단을 했다. 자리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계약직이다. 다음 계약만 따낼수 있으면 어떤 자리도 상관없다라는 마인드로. "네. 저는 사실 보결전담 자리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지만 학교사정이 그렇고 지원자가 없다면 기꺼이 그 자리를 맡겠습니다." 그럼 그렇지. 나는 이렇게 순응적인 사람이다.

 

 그렇게 영어전담교사가 되었다. 마치 떠돌이 생활을 하다 고향에 온 기분이 들었다. 영어가 무서워서, 피해다니면서 고생만 하다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다. 동시에 다시 영어 공부를 하라는 운명적인 계시가 아닐까도 생각해보았다.



 

 사실 영어를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음을 고백한다. 학창시절 내내 교사가 되고 싶었기에 사범대 진학을 노렸고 점수에 맞추어 간것이 영어교육과였다. 수능영어에만 몰두했을 뿐 영어에 특출나지도 영어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영어교육과라는 꼬리표는 지금도 부담스럽다. 외국에 머물때는 국어교육과라고 속이고 다닌 적도 있다.  전공이니 부담감에 휩싸여 늘 자신감이 없기도 했다. 영어가 나의 부전공이나 취미 정도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다시 만난 영어>는 달랐다. 이학교 저학교 이교실 저교실 학년을 넘나드는 떠돌이 교사에서 번듯한영어전담 책상을 차지하니 전공인 영어가 새삼스러우면서도 눈물나게 고마웠다. 7살 딸아이가 배우는 파닉스의 원리도 흥미롭고 수업연구를 위해 쏟는 시간과 배움이 꽤나 즐겁고 만족스러웠다. 내친김에 올해 수능영어를 풀어보았다. 예전보다 지문의 난이도도 높고 까다롭게 출제하려는 흔적이 보였지만 감을 잃지는 않았다. 의욕이 샘솟는다. 내친김에 엄마표 영어?? 수많은 영어학원들 사이에 듣기만 해도 엄마들조차 부담스러운 이것은 도대체 누가 하는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란 말인가. 나도 해볼까? 아니다. 일단 나부터 즐길수 있는 영어를 시작해보자.


그렇게 영어는 다시 뗄레야 뗼수 없는 나의 전공임이 확실시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네? 보결전담교사가 뭐에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