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loe Nov 12. 2024

Lost in Translation

History vs. Spectacle in Gladiator 2


    어릴 적 봤던 벤허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CG 없이 인력을 투입해 구현한 전투 장면을 직접 구현해 낸 당시의 영화는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어 영화적 스펙터클을 만들어냈고, 이는 지금까지 나에게 전투신과 로마시대에 대한 기준이 되었다. 이후로 캐리비안의 해적, 300, 반지의 제왕 같은 작품들을 보며 차차 발전하는 CG기술이 구현하는 지점의 재미라던가 클래식한 영화가 주는 쾌감, 그리고 각 작품의 특징과 재미를 찾아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최근의 인상적이었던 전투신은 호빗이었으니 (마블 영화류는 번외로 치고)  오랜만에 로마 시대와 전투를 구현하는 글래디에이터2가 반가웠고, 보다 발전된 기술을 통해 다시 구현될 로마 시대의 웅장한 전투를 만나게 될 글래디에이터 2는 오랜 기다림 덕에 더 설레었다. 


    글래디에이터 2는 오프닝 크레디트부터 웅장한 음악과 무드로 기대감이 커졌지만, 시작한 지 십여 분도 안 돼 바다 장면에서 CG장면부터 배경의 합성 느낌이 강해 오히려 전투의 긴장감과 영화의 몰입감이 다소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직전의 실사 부분의 분위기가 좋았고 인물들의 스토리들이 잘 만들어져가고 있었기에 영화 속 인물들에 몰입해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영화 밖 현실로 뚝 떨어져 내가 모니터 밖에 있다는 것이 확 체감되는 느낌이랄까. 영상의 퀄리티가 들쑥날쑥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와 함께 중간중간 역사적 고증과 맞지 않는 장면들이 양말 속 모래처럼 덜그럭 거리면서 몰입도도 밀물썰물처럼 오락가락하게 되었다. 생동감이 지나치게 넘치는 상어는 너무 애니메이션같이 거친 모습을 보여주는데, 저 시대에 상어의 존재를 알았던가? 이동이 가능했나? 식인 원숭이는 정말 저렇게 생긴 걸까- 그냥 SF영화의 괴물 같은 느낌인데, 저 시대에 종이에 인쇄된 신문이 보편화되어 있던가? 로마 황제의 횡포로 힘겨운 사람들의 삶에 대한 조명은 인트로의 텍스트 몇 줄로 끝인 건가? 등등 영화를 보면서 자꾸 다른 생각들이 끼어들었다. 이게 판타지 영화라면 당연시 했을 연출들이 역사에 뿌리를 둔 작품에서는 이질감으로 다가와,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었다. 


    스토리의 전개는 빌드업이 좋았고, 러닝타임도 체감상으론 한 시간 반 정도로 짧게 느껴졌다. 특히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임에도 각 인물의 내면을 더 깊이 들어가면서 아는 이야기에 새로운 서사를 부여하는 느낌이라 흥미로웠다. 점차적으로 자연스럽게 마음으로 응원하게 되는 인물이 주인공이 되는 흐름도 좋았고. 다만 인물의 성장과 갈등을 통해 혈통이 아닌 주체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영웅 서사를 기대했지만, 결국 혈통에 의존하는 전형적인 서사로 귀결되는 것이 조금 씁쓸하달까.  


    엔딩 크레디트에서 동양인 스탭이 거의 보이지 않았던 점도.. 흥미로웠다. 최근 대부분의 영화가 다양한 인종과 문화적 배경을 반영하는 것에 비해, 글래디에이터 2는 이러한 부분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선 느낌이 있어 아쉬웠다. 


    쓰고 보니 굉장히 부정적인 이야기만 쓴 것 같은데, 사실 스토리의 기둥 자체가 좋고,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좋았어서 그를 받쳐주지 못하는 듯한 디테일이 아쉬워서 말이 길어졌다. 조금만 받쳐주었으면 여러 번 다시 보고 싶을 영화일 뻔했는데 여러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다 오히려 흐트러지니 느낌이랄까. 


    글래디에이터 2는 역사와 영화적 연출 사이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지점에서 어느 쪽에도 온전히 닿지 못한 듯 하다. 글래디에이터 1이 남긴 임팩트를 뛰어넘으려 했지만, 화려하지만 현실감이 떨어지는 CG와 부족한 고증 사이에서 길을 잃은 듯 하다. 언젠가 더 정교하고 진정성 있게 돌아올 로마의 서사를 기다리며, 시대를 초월한 서사의 힘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영화 #글래디에이터2


작가의 이전글 Deadpool and his joke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