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투트가르트 동•식물원 빌헬마

여기서라면 누구나 자연을 사랑하게 되어요

by 클로이

요즘 창밖을 내다보면 공기가 안 좋아 온통 뿌옇고 칙칙한 하늘만 보여 기분이 축축 쳐지던 차에 예전 사진을 뒤적이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아주 인기있는 동식물원인 빌헬마(Wilhelma)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이번엔 이곳에 대해 써보기로 했다. 슈투트가르트 출신 독일인들이 여기 가 보자는 얘기를 수백 번도 더 했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대도시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와서인지 자연에 큰 관심이 없어 뚝심 있게 그런 제안을 들을 때마다 거절하고는 슈투트가르트 시내 구경이나 맛집 탐방 따위를 하고는 했다. 하지만 슈투트가르트 주민이 된 어느 날 맛집 탐방도 좀 물리고 매일 가던 중심가에도 딱히 볼 것이 없어 드디어 이 유명하다는 동식물원에 가 보기로 했다.


왠지 로맨틱이라는 말을 형상화한 느낌이 들었던 곳

입장권을 사고 들어서면 맨 처음 나를 반겨주는 공간인데 덩굴과 벤치, 색색깔의 꽃까지 그야말로 로맨틱하기 그지없어 여기가 데이트 장소로 그렇게나 인기있다고 하던데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이 풍경을 눈에 담으며 여태 이 동식물원에 안 가본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위 사진의 왼쪽에는 큰 연못이 있고 연못가를 따라 또 벤치가 늘어서 있는데 햇살 속에서 데이트를 하면 좋을 것 같기는 했다. 사실 내가 갔던 주말에는 젊은 커플 대신 어린 아이들을 데려온 가족이 많기는 했지만 말이다. 위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벤치 뒤 잔디밭에서는 예쁜 옷을 입은 모델이 잘 가꿔진 자연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이 연못가에만 하루종일 앉아서 책을 읽어도 너무 좋을 것 같았다. 그날따라 날씨까지 완벽해서 정말 행복했다. 저 연못을 보며 세상에 저렇게 많은 종류의 연잎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같은 연못에서 마지막 한 컷


하지만 비싼 입장료를 헛되이 날릴 수 없기도 하고 앞에 보이는 수많은 온실에 대체 뭐가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겨 눈앞에 보이는 온실에 들어가봤다.


흐드러지게 핀 꽃으로 가득한 열대 온실

제일 처음 들어갔던 온실인데 천장에도 꽃을 심은 화분을 주렁주렁 달아놓아 예뻤고 열대에서 자라는 식물답게 알록달록해서 시선을 확 잡아끌었다. 게다가 자세히 보면 식물마다 이름과 원산지 등 간단한 설명을 적어둔 팻말이나 쪽지가 붙어 있어 세심하게 관리되고 있는 공간임을 느낄 수 있었다.


열대 테마 온실

열대에서 온 꽃으로 가득 찬 온실을 지나 이번에는 커다란 나무와 풀이 있는 온실에 들어왔는데 이전의 꽃이 있는 온실은 동남아 테마였다면 이번 온실은 남미에서 자라는 식물 위주로 꾸려진 것 같았다. 몇 미터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나무를 보고 있자면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다.


바나나!

아주 어렸던 유치원생 때 가족들과 갔던 제주도의 식물원에서 바나나와 파인애플을 본 이후로는 실제로 본 적이 없어 바나나 나무가 얼마나 큰지, 바나나가 나무에 어떻게 열리는지 깜빡 잊고 있었다. 아래에 달린 것은 아마 꽃인 모양인데 과장을 좀 보태서 내 머리보다 클 것 같았다.


망고가 열리는 나무!

위 사진 속 설명을 읽어보니 망고나무는 원래 야생에서 30m까지 자라는 수종인데 인도에서 처음 인류에 의해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망고 재배에 관한 기록은 무려 4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도 적혀 있다. 위 사진 속 망고‘나무‘는 아주 작은 것으로 봐서 묘목 단계인 듯 하다.


“위에 가면 그림 속 새가 더 있어요!“
진짜 있었다
새장이 달려있는 나무들

안에 계단이 있을 만큼 큰 온실이었는데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자생하는 새를 잡아 온 만큼 온실 곳곳이 인도네시아 어딘가의 숲에서 온 식물들로 꾸며져 있었다. 인도네시아에 가지 않고도 파랗고 빨간, 색색깔의 깃털을 달고 있는 예쁜 새를 실제로 보고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좋았지만 새장에 갇혀있는 새를 보면 과연 나 하나 좋자고 이국의 작은 새장에 새를 가둬두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키가 3층 건물만한 선인장

예쁜 새로 가득한 온실을 나와 사막에 왔는데 선인장이 상상 이상으로 거대해서 외계에서 가져온 식물이라 해도 믿어버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과연 등장인물을 포함해 영화 속 모든 생물이 거대한 아바타 영화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나 보다. 사진으로는 실감이 잘 나지 않지만 저 거대한 선인장 하나의 두께가 내 몸만했다.


가까이 가면 매운 향이 확 퍼지는 지역 고추 축제 출품 고추

이 온실에 가기 전까지는 모르고 있었지만 가을이면 슈투트가르트에서 고추 축제가 열리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 고추 축제에 출품할 여러 종류의 고추를 여기서 키우고 있는 모양인데 독일인들은 대부분 매운 맛에 내성이 전혀 없어서 의외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나를 제외한 주변의 독일인들은 고추에서 나는 매운 냄새 때문에 이 근방을 빠른 발걸음으로 지나쳐갔다. 사진 속 고추 옆 가장 왼쪽에는 작고 귀여운 아나나(Anana)가 있는데 독일어로 아나나는 바로 파인애플이다.


난초 온실

드디어 어디서 많이 보던 식물인 난초가 있는 온실에 도착했다. 그 익숙함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데서 나는 새로운 것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려면 마음의 중심을 잡아줄 익숙함과 편안함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에서 소개한 부분은 이 동식물원 전체의 1/4도 되지 않지만 더 얘기하다가는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여기서 줄인다. 여기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제대로 느껴서 어느새 도시와 인공적인 것에 강한 애착을 가진 나조차 그 모든 슈투트가르트 주민들처럼 이 곳을 열정적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어쩌면 자연 그 자체보다 열대지방을 뚝 떼어 독일의 한구석에 가져다 놓고 보존하는 기술력과 인간의 이기심을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