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나는 두려워 죽겠는데, 주변 현실은 햇살 찬란한 평화로운 하루인 날. 나중에 본인의 기분이 증상이었음을 알게 되고 납득할 수 있는 의학적 설명을 들으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고 나는 괜찮다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되뇌이는 그런 날 말이다. 잠시 너무 걱정과 불안이 심해서 경험한 일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망상이 그토록 진짜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혼란스러움은 남는다.
K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는 집착적으로 염증에 두려움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거의 우리 병원 단골이었는데, 항상 피곤한 인상에 예쁜 얼굴이 돋보이지 않는 편이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그녀의 피부도 푸석해져갔다.
"소독 좀 하고 싶어요.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진찰을 하고 질 안쪽을 소독을 하면 정상적인 분비물과 크게 차이가 없거나, 그녀의 편집증적 생활로 인한 전신 면역 상태의 저하로 인한 칸디다 질염의 반복이 관찰되었다. 특별히 냄새가 나는 상황도 아니었는데도 그녀는 병적으로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집착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좀더 편안하게 마음을 먹고 생활하도록 항상 권유했다.
"잠은 잘 자나요? 직장까지 출퇴근은 얼마나 되나요?"
그녀의 남편은 코골이가 심한 편이었는데, 최근 급격한 체중 증가로 더 코골이가 심해졌다고 한다. 덕분에 그녀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최근 직장에서의 야근도 더 잦은 상황이었다.
"질염이라고 하면 반드시 성생활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산부인과를 오는 것을 꺼려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실제로 단일 성 파트너와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는 경우에서 이렇게 잦은 칸디다성 질염이 있는 경우는 좀더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성생활이 아니라 전체 삶 말이에요. 영양 상태, 수면의 질, 스트레스, 기본적으로 당뇨나 고지혈증 등과 같은 기저 질환이 있는지도 확인해 보아야 해요."
사실,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쉽게 그녀의 삶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일일이 365일 24간 그녀를 따라다니면서 그녀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잔소리를 할 수도 없다. 그녀의 남편에게 직접 가서 살을 빼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언제쯤 '정상'과 '비정상' 상태는 한끗 차이라는 것을 그녀가 알 때가 올까? 뇌에서 스위치 하나만 돌리면 되는 것을.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지금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그 스위치를 그녀는 영영 돌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가 작은 도움을 주길 바라지만 그녀의 망상은 몇 일째 내리는 하얀 눈 처럼 계속 그녀를 괴롭히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