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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brosia Oct 23. 2020

사라진 머리카락이 내게 준 가르침

<샴푸의 요정> - 빛과 소금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압살롬”이라는 이가 있다. 압살롬은 성경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유명한 다윗왕의 자녀들 중 하나로, 온 이스라엘에서 가장  뛰어난 용모와 유난히도 풍성한 머리카락의 (매년 자르는 머리카락의 무게만 2kg이 넘는다고) 소유자였다고 성경은 말한다.

​ 여자도 아니고 남자를 수식하는 표현으로 풍성한 머리라니?! 읽으면서도 조금 의아했지만 사실 남자나 여자나 머리숱이 적은 것보다는 볼륨이 풍성해야 보기 좋은 것이 사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탐스러운 머리카락이 미의 중요한 기준 중 하나였음은  분명하다.

​ 압살롬은 훗날 용의주도하게 민심을 자기편으로 이끌어서 아버지 다윗에게 반기를 들고 왕위 찬탈을 시도한다.

하지만 다윗이 누구인가!! 비록 늙고 힘이 다 했다 한들 그 유명한 블레셋의 골리앗도 물리친 시대의 전사가 아니던가. 더불어 다윗의 곁에는 오랜 시간 목숨 바쳐 충성해온 그의 동료들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결국 다윗은 반역의 무리들을 모조리 쫓아내고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 특이한 점은 성경에 기록된 압살롬의 죽음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죽이려 했으나 아버지는 제발 아들을 해하지 말라고 부하들에게 명한다. 그러나 압살롬은 전투에서 패각 하고 후퇴하던 중 그가 자랑하던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나무에 걸려 말에서 떨어지고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만다.

​ 어려서부터 수없이 많이 읽었던 장면이지만, 항상 이 비극을 대할 때면 사람은 결국 자기가 자랑하던 것에 배신을 당하고 말 것이라는 인생의 역설을 감지하곤 했다.


무엇이든지 자만하지 말지어다.
뽐내지 말지어다.
너의 자랑이 너를 찌르는 칼이 될지니...


 어린 시절 일기장에 짝사랑하는 오빠를 향한 애달픈 고백뿐 아니라 이런 비장한 문장도 적어놓은 것을 보면 나는 언젠가 도래할 비극을 예감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비극이 이것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날 이때까지 단 한 번도 걱정해보지 않았던 것.

딱히 자랑할 것 없는 내 몸뚱이 중에서 그나마 가장 많은 칭찬과 감탄을 받았던 그것.

 그렇다. 머리를 묶으면 머리핀이 튕겨져 나가고, 한 번에 묶고자 하면 몇 번이나 잔머리를 쓸어 담아야 했던 나의 왕관 나의 자랑이었던 머리숱이여!

유전적으로, 선천적으로 머리숱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라면 고민이었던 나인데... 난 영원히 나를 배신할 일 없다 믿었던 존재에게 발등을 찍히고 만 것이다.

​ 처음엔 머리가 좀 많이 빠지네?! 하고 갸우뚱할 정도였다. 출산에 따른 엄청난 털갈이의 경험을 두 번 겪었던 터라 이렇게 빠지고 나면 또 보기 싫은 잔머리들이 잔뜩 돋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장마 후 돋아나는 잡초처럼 모양 없이 삐쭉삐쭉 솟아 나오던 잔머리가 보이지 않는다. 이마 라인이 점점 더 말끔해진다. 머리를 감을 때면 하수구가 막히지 않게 중간에 두세 번 빠진 머리를 정리해야 하고, 젖은 머리를 말리고 나면 내 발 밑으로 폭신한 카펫처럼 머리카락이 수북이 쌓이는 것이다.

무엇보다 질끈 머리를 묶는데 그 두께가 예전의 반에도 미치지 않는 것을 어느 날 깨달았다.


 급하게 주문한 서리태와 검정깨 선식을 아몬드 우유에 섞어 마시며 탈모 샴푸를 이리저리 검색해보는데, 갑자기 섬광처럼 압살롬의 이름이 내 머리에 스쳤다.
아하 그렇구나. 어쩌면 나는 내 교만의 대가를 이제 치르는 중인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풍요로움에 눈이 멀어 다른 이의 고통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일이 떠올랐다.


 사실 탈모는 남편의 오랜 고민이었다. 30대 후반부터 가늘어지기 시작한 그의 머리카락은 몇 년 전부터는 아예 정수리에서 그 존재를 찾아보기 어려워질 정도가 되었다. 탈모약을 복용하다가 임신을 위해 중단했고, 두피 클리닉을 좀 다니는가 싶더니 결국 어느 시점에서 관리를 포기해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내 머리카락을 보며 농담처럼 ‘이거라도 가져다 붙이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왜 그의 마음을 같이 헤아리지 못했을까. 세상에서 나와 가장 거리가 먼 일이다 생각하고 불난 집 쳐다보듯 했던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자기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다더니.


 나는 조용히 쿠팡을 열어 참회의 의식처럼 검색에 나섰다.


남녀 겸용 탈모샴푸 (대용량)
탈모 방지 맥주효모

검은콩 검은깨 선식

​경건한 마음으로 구매하기 버튼을 클릭했다.
나의 옛 영광을 되찾지는 못 할지라도 아픔을 함께 극복하는 좋은 배우자가 되고자 하는 바람을 담아.

조금 늦었지만 당신의 샴푸의 요정이 되어줄께.



https://youtu.be/cqxYufr2Jr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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