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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Park Aug 31. 2023

그럼에도 왜 미국에서 사냐건

천방지축 엉망진창 빙글빙글 돌아가는 나라지만

    미국에 온 지 오늘부로 딱 8년이 되었다. 2015년 JFK 공항에 설레고 무서운 마음으로 발을 디딘 게 벌써 8년 전이란 말이다. 시간의 속도는 빛보다 빠르지는 못하더라도 그만한 유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때는 빛보다 더 빠르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느 날 큰맘 먹고 플랭크라도 할 때면 1분이 달팽이 보다도 더 느리게 가는 것만 같으니까.


하도 미디어에서 해외살이를 다루는 콘텐츠들이 많다 보니 이제는 사람들이 가진 미국 생활에 대한 환상이 꽤 많이 없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생각해 보면 나는 비교적 정보가 덜할 때 와서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 지금같이 온갖 정보들로 넘쳐나는 상황이었다면, 그때처럼 나는 쉽게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세계 최강국인 미국, 선진국인 미국에 대한 나의 환상은 초등학교 때 어느 선생님이 '미국 같은 곳에 가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한국이 어디 있는지, 있기는 한 나라인지도 모른다'는 말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그리고 디즈니 랜드가 있다는 것도 환상에 한 숟가락을 더했을 테다. 대학에 들어간 후 디자이너를 꿈꾸면서 공부하게 된 자료들에도, 또 경영학을 공부할 때 참고했던 자료들에도 미국 뉴욕이 배경인 것들이 허다했다. 디자이너가 뭔지, 마케터가 뭔지에 대한 막연한 로망만 가지고 있던 나에게 빅애플이 가진 의미는 부푼 풍선처럼 다가왔었다. 무엇이든지 첨단일 것 같고, 언제나 세계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그곳. 그 나라에 가면 뱀의 머리가 아니라 용의 꼬리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미지의 세계'라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그런 로망이 깨지기까지는 미국에 온 후 단 몇 달도 안 걸린 것 같지만.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이곳의 통신상황(?)과 대중교통이었다. 8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화 신호가 잡히지 않는 곳이 드물지가 않다. 뉴저지에서 애리조나로 이사 온 지 4년이 지나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지금은 와이파이가 잡히기도 한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 같다), 내가 있을 때만 해도 뉴욕에서 지하철을 탈 때 3G조차 잡히지 않는, 아예 전화가 먹통이 되는 게 당연한 일상이었다. 가뜩이나 뉴욕 지하철은 지저분하고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고 범죄도 심심찮게 일어나는데 휴대전화가 안된다니? 게다가 뉴욕의 지하철 상황이라는 게 시시때때로 바뀌는 거라 누구도 스케줄을 감히 예상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공사를 한답시고 운행을 중단한다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방향을 통해서 빙 돌아서 가야 하는 일들이 다반사였다. 지금은 한국처럼 (이제야) 편해진 것 같지만 그 당시만 해도 자판기에서 교통카드를 뽑아야 했고, 기계가 카드를 한 번에 읽지 못해 뒷사람 눈치를 보며 여러 번 긁어야 했던 상황도 일상이었다. 버스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뉴저지에서 뉴욕을 오가는 데 주로 이용했던 버스 역시 버스 티켓을 끊어야 했고 (디지털 버전도 있기는 했다), 버스 시설은 낙후되어 있었으며, 정류장에 친절히 버스가 언제 오는지 알려주는 간판 같은 건 - 내가 떠나올 때쯤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앱이 있어도 정확하지 않고, 버스가 중간에 사라져 버린다거나 사람들이 정류장에 있는 것을 보고도, 만차가 아니었는데도 그저 지나쳐 가버린 경우가 허다했다 - 심지어 한 시간 여를 기다린 버스인데도 말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뉴욕에서 집에 오는 버스를 탈 때 터미널 번호가 제멋대로 바뀌어 있었고, 새치기하는 사람들과 소리 지르는 사람들, 저 밖까지 길게 늘어선 줄, 버스의 행방불명 등 머리 아프게 하는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 그리고 전화 신호 얘기를 마저 하자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2021년에 새로 지어진 동네인데, 사람들의 입주가 끝난 지 2년 여가 지난 지금도 전화 신호가 잡히지 않아 오로지 와이파이에 의존하고 있다. 그 마저도 늘 안정적인 게 아니고. 하하.


인종차별은 또 어떠하며 사람들의 기질은 또 어떤지. 뉴욕에서 당했던 몇 번의 인종차별과 뉴스에 나오는 각종 사태들. 말도 안 되는 건강보험 시스템과, 출산 후 아빠가 자신의 아이를 안는 것에 마저 비용을 청구하는 상황까지. 도대체 이 사람들이 왜 이러는 걸까 싶고 이런 나라가 정말 세계 최강대국이 맞아?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요소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지금쯤이면 아마 한국에 있는 나의 몇몇 친구들처럼 "그냥 한국으로 와!" 하며 나에게 소리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분간은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분명 미국이라는 나라는 살기에 불편한 나라가 맞다. 한국에서 온갖 편의와 화려함 - 단언컨대 나는 미국에 비해 한국이 진정으로 안팎으로 화려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 을 누리던 사람이라면, 미국은 거주보다는 여행으로 간만 보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그럼에도 미국에서 살고 싶은 걸까?


작은 것부터 따지자면 일단 나는 전원주택 생활이 좋다. 물론 여기도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한국에 비하면 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의 비중이 높다. 나도 2021년부터 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할 수만 있다면 다시는 이웃과 벽을 공유하는 형태의 주거환경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한국에서도 마음먹으면 전원주택 살이를 할 수 있다지만 대부분 지방에 있을 테니까... 직장이라도 다니려면 선택의 폭이 많이 줄어드는 게 사실인 것 같다.


다른 한 가지는 한국어가 아닌 언어를 쓴다는 점이다. 한국어가 싫다거나 한국어를 비하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나는 우리말만큼 예쁜 언어를 찾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말에는 말 맛이 있고 그 표현력은 무궁무진하다. 다만 나는 다른 언어를 사용할 때에 내 사고회로도 조금은 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국어를 쓸 때의 나의 마음가짐과 영어를 쓸 때의 마인드 셋이 미묘하게 조금 달라지는 것 같달까? 이건 어떤 언어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인데, 여하간 뇌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활용할 수 있는 것 같아서 그 점이 재밌다. 또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해도 하도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보니, 내가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기만 한다면 내 영어가 좀 어설퍼도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는 것이다. 두 가지의 언어를 오갈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게는 한 가지 언어만 사용할 때보다 좀 더 재밌는 점으로 인식된 듯하다. 물론 병원이나 은행, 법률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원어민인 남편에게 의지할 때가 많아서, 언어를 핑계로 머리 아픈 일들을 조금은 떠넘길 수 있다는 점도 한몫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하.


또, 확실히 남의 눈치를 덜 보는 환경인 점이 마음에 든다. 뉴욕에서 놀랐던 것 중에 또 하나는 패션의 심장인 줄 알았던 뉴욕이 사실은 운동복 차림의 사람들과 패션 테러리스트들로 그득그득하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가을인데 뉴욕 거리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만나볼 수 있었다. 사람들의 옷차림에는 계절의 경계가 없는 듯했다(애리조나도 별 다를 바 없다. 1년의 반 이상이 여름인 이곳도 40도에 육박하는 더위에 털부츠를 신고 다니는 사람들을 가끔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오면 내가 뭘 입든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하는데, 사실 아무도 나를 상관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내가 편한 게 장땡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쳐다볼 사람들은 쳐다본다. 미국이라고 다들 관자놀이에 가림판을 세우고 다니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나의 편의가 우선인 거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런 당당함(?)이, 나갈 때는 늘 꾸며야 한다는 강박보다 내가 꾸미고 싶을 때 꾸민다는 태도를 가질 수 있게 해 준 것 같다. 각자의 기준과 각자의 다름을 어느 정도 포용력 있게 인정해 준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획일적이지 않다는 점도 매력적인 것 같다. 한국을 떠나 온지 꽤 돼서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있을 때만 해도 웬만하면 다들 대학에 가고 회사에 들어가고 집과 차를 장만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다들 어떤 '흐름'에 따르는 것 같은 삶이랄까? 어떤 나이에 어떤 일을 한다는 게 얼추 정해져 있고 그 흐름에서 벗어나면 주위에서 수군대거나 스스로가 도태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하는. 그에 비하면 이곳은 살아가는 모습들이 조금 더 다양한 것 같다. 고등학생 때 만난 사람과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애를 낳고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리는 사람, 결혼하지 않고 스스로를 돌보는 데에 집중하며 자기 일에 자기 자신을 연동시킨 사람, 평생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행복하게 지내는 사람, 은퇴를 한 후에 삶이 지루해져 다시 일을 하는 사람 (한국은 정년퇴임 후 나이 때문에 재취업이 아주 힘들다고 들었다), 아이를 일곱 낳은 사람, 정규직보다 계약직을 선호하는 사람... 한국도 하나하나 다 뜯어보면 그렇겠지만, 이곳은 뭐랄까, 어떤 기준선이라는 게 없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어떤 삶도 도태되었다며 손가락질받지 않는 환경이랄까. 물론 범죄자나 마약을 하는 사람들은 예외지만. 웬만하면 어떤 모습으로 살든 그 삶을 존중해 주고 존중받는 느낌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왜 이런 상황인데 아무도 나를 꾸짖지 않지?' 하는 생각이 아직도 가끔 들고는 한다.


    사람 사는 곳은 결국 다 비슷비슷하다지만 분명 어느 곳에나 그곳만의 장단점들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더더욱, 상상보다 더 좋을 수도 있고 훨씬 못할 수도 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분명 이해가 가지 않는 이상한 나라임에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이곳에 더 머물러 있고 싶어 한다는 것에는 이곳만의 어떤 매력이 있다는 뜻일 거다. 어쩌면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이곳에 대한 어떤 환상 같은 것이 남아 있어서 나의 기대를 부추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직은 좀 더 이곳에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크다. 언제 이 마음이 바뀔지 모르겠지만. 바뀐다면 또 그때 나름의 이유들이 있겠지. 그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 건조한 사막을 즐기며 살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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