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밀러)」

by Chloe
그래서였다. 나는 절박했다. 단순하게 말하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책에서, 망해버린 사명을 계속 밀고 나아가는 일을 정당화하는 그 정확한 문장을 찾아내는 것이 내게는 절박했다. 어쩌면 그는 무언가 핵심적인 비결을 찾아냈을지도 몰랐다. 아무 약속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희망을 품는 비결, 가장 암울한 날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비결, 신앙 없이도 믿을을 갖는 비결 말이다.


이 책은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궁금중으로 시작한다. 동료와 가족이 죽고, 대지진으로 그제껏 모아 왔던 표본 유리병이 깨지는 온갖 고난에도 작가가 말하듯 망해버린 사명을 계속 밀고 나야 가야 한다는 의지의 원천이 나조차도 궁금해졌다.


다양성이 결여된 환경은 필연적으로 변이에 취약해진다. 획일화는 진화의 가장 큰 적이다.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


무한 경쟁사회에서 학력, 집안, 어느 하나 매력적인 조건이 없는 내 한 몸을 건사하려면 열 번 넘어져도 열한 번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끈기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나는 목적도 모르는 경쟁에 나를 계속 집어넣었다. 경쟁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회피하고 타고난 끈기와 인내심으로 일상을 버텨내며 살아갔다. 하루하루가 시험대였고, 불안한 감정은 돌아보지 않았다. 자칫 감정에 휘둘려 지금까지 해온 것들의 무의미함을 마주 보고 싶지 않았다. 한국사회에 유능한 인재상은 효율화, 최적화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나보다 잘난이들의 뒤꽁무니를 따라가며, 내 존재를 배재해고 그들을 닮아가야지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그저 내 고유함보다는 그들과 비슷하게 유능해지고 싶었다. 경쟁에 뒤쳐진 이들이 도태되는 것을 당연한 수순으로 여겼고 동시에 나를 채찍질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적자생존은 어느 순간 내가 신봉하고 있는 문장이 되었다. 인간의 능력에는 차등이 있다는 협소한 믿음이 인간종에는 계층이 존재한다는 비약으로 발전했다. 그러니 타노스의 우생학, 기준미달의 인간들은 제거되어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에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힘들다 생각했다.


이윽고 다윈은 종이, 그리고 사실상 분류학자들이 본질적으로 불변의 것이라 믿었던 그 모든 복잡한 분류 단계(속, 과, 목, 강 등)가 인간의 발명품일 뿐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끊임없이 진행되는 진화의 흐름 주위에 인간이 우리 ‘편리’하자고 유용하지만 자의적인 선들을 그었다는 것이다.

Natura non facit saltum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분류학자라면 이게 얼마나 심란한 생각일지 상상해 보라. 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대상이 알고 보니 퍼즐 조각도 실마리도 아닌 무작위성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것들은 신성한 텍스트의 페이지도, 성스러운 암호를 이루는 상징도, 신성한 사다리의 가름대도 아니었다. 움직이고 있는 혼돈의 모습의 담은 스냅사진에 불과했다.


우생학자들은 이런 단순한 상대성의 원칙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유전자 풀에서 ‘필수 불가결한’ 다양성을 제거하려고 노력함으로써 그들은 사실상 지배자 인종을 구축할 최선의 기회를 망쳐버리고 있었던 셈이다. 만약 당신이 ‘부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라면 정부는 당신을 집에서 끌어내 당신의 배를 칼로 긋고 당신의 혈통을 끊어버릴 권리를 지금도 갖고 있는 것이다.

사다리는 없다. 나루타 논 파싯 샬툼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고 다윈은 과학자의 입으로 외쳤다. 우리가 보는 사다리의 층들은 우리 상상의 산물이며, 진리보다는 ‘편리함’을 위한 것이다. 다윈에게 기생충은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 경이였고, 비범한 적응성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나는 꽤 자주 심각해졌다. 내가 몸 담그고 있는 환경을 습관적으로 비하했다. 유전자라거나 가정환경이라거나 이미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끌어오며 내 우울을 정당화하고 우울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나는 특별히 불행한 환경을 타고난 사람이니까라는 가림막아래 내 몸을 숨기고 나를 자주 불행하게 만들었다. 낙천적으로 사는 이들이 부러웠지만, 평생 닮아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까르르 웃고 털어내 버리는 경쾌함 같은 게 쉽게 나올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자주 흔들리던 20대를 지나 30대의 초입에서도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그럼에도 이제는 안다. 무겁게 사는 건 별로 좋지 않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나보다 빛나는 이들을 쫓으며 자주, 쉽게 불행해지곤 했던 내 20대를 위로하는 문장이다. 나는 이미 충분하다. 내가 누구보다 못나거나 부족하다는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내가 좀 더 자주 행복하고 유쾌하게 살길 바란다.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다. 획일성이 진화의 가장 큰 적이다.
그가 명료히 보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 범주는 결코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자연에 사다리를 세우고 계층구조를 만들기 위해 그가 집착했던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라는 범주의 명명 아래 우리가 세상을 더 오래 검토할수록 세상은 더 이상한 곳으로 밝혀질 것이다.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 안에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잡초 안에 약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 계속 그것을 잡아당겨 그 질서의 짜임을 풀어내고, 그 밑에 갇혀 있는 생물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모든 자 ruler뒤에는 지배자 Ruler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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