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의 이동경로(김화진)」
소설 읽는 걸 의도적으로 기피했던 때가 있었다. 실용적인 지식이나 마음을 울리는 문장 같은 것에 심취했을 시기였고, 아마 소설을 읽고 남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나는 감정을 다루는 일에 미숙하다. 익숙하지 않은 감정들을 마주해야 할 때면 그냥 피해버리곤 했다. 피하기만 하다 보니 내가 내 마음을 모르는 지경이 됐다.
편도체에 위에 먼지가 소복이 쌓였는데, 내게는 이 먼지를 쓸고 닦는 일이 소설을 읽는 것이다. 스스로 알아채기 힘든 미묘한 감정들을 소설 속 주희, 현우, 솔아, 지원을 관찰하며 어느 순간 깨닫게 되곤 한다.
말하지 못하면서 먼저 말 걸어주기를 기다리는 마음과
내가 너무 버터같이 굴어서 질려버린 건가 하며 자책하는 마음 같은 것들을 말이다.
내 마음의 공간을 타인에게 기꺼이 내주다 보니 스스로에 대한 애정이 쪼그라들었던 가엾고 사랑스러운 때가 떠올랐다. 혼자일 때는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옆에서는 내가 별로인 점만 손가락을 다 꼽아도 모자랄 만큼 생각나는 게 부끄럽고 속상했다.
내가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 같은 순간은 사랑의 한가운데다.
나의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너를 사랑하지 않아. 너의 것을 포기하길 원할만큼 너를 사랑하지 않아. 나는 찰랑이는 선 아래에서 사랑을 한다. 사랑을 시작하는 것만큼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 어렵지가 않다. 나는 다른 사랑을 만날 거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으므로.
나에게는 너밖에 없지 않으므로.
나는 사랑의 시작은 어렵고 끝은 쉬운 사람이다. 그러니 내가 사랑에 빠지는 건 꽤 흔치않은 일인데, 11월 어느 날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랑을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 놓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모든 현상과 사건에 왜?라는 물음표로 난도질을 해대는 그 집요한 습성을 사랑의 영토에는 적용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나 그를 왜 사랑하냐 와 같은 물음에 논리와 분석 같은 것은 필요 없다. 그냥 그렇게 돼버린 것이다. 이미 사랑하게 돼버린 순간에, 내가 너를 왜 사랑하게 됐을까 와 같은 질문은 힘이 없다.
내가 나열한 이유들을 가진 타인을 만난다 해도 그를 사랑하지 않을 테니까 언어로 다 담아내지 못할 그의 고유성이 내가 그를 사랑하는 단 하나의 이유다.
삶의 재미는 다채로운 감정을 발견하고 알아채는 것에서 온다. 나는 앞으로도 생존에만 매몰되지 않기를 바란다. 돈벌이가 안 되는 것들에도 기꺼이 마음을 주고, 애달파할 것이다.
공룡의 이동경로(김화진)
어떨 때 힘이 나는지, 어떨 때 무기력해지는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나 같은 사람은 어떤지, 우리를 만나러 이곳에 오는 게 귀찮은지 가뿐한지, 그렇다면 왜인지, 누가 보고 싶어서 오는지, 아니면 글 쓰는 게 정말로 좋아서 오는지, 모임원 셋 중 가장 신뢰하는 독자는 누구인지, 그 사람과 단둘이 글에 대해, 자신에 대해 서로에 대해 털어놓고 싶어지지는 않는지, 그리고 그게 나는 아닌지, 그런 것들. 돌아보면 온통 나에 관한 마음이 궁금했다.
사랑받고 싶던 사람이 선택하는 차선은 사랑하기이다. 사랑받기 위해서 사랑을 한다.
지원이 입을 다물어서 나도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속에서, 목 끝까지 뜨거운 것이 끓고 있었다. 다시 새겨주겠다고 왜 얘기 안 해줘요. 나는 서운했다. 언제나 그런 것이 서운했다. 솔아의 원망스러운 눈망울이 보이지 않아도 보였다. 사랑 앞에서는 누구나 어린아이가 된다.
지원과 멀어졌을 때 버터가 떠올랐다. 내가 너무 버터처럼 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끼하게 굴거나 어지럽게 굴었을지도 모른다고 왜 멀어졌나를 알고 싶지 않아서, 지원이 나를 멀리하는 이유가 나 자체일 것이 너무 무서워서,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서 더욱 말을 걸지 못하고 묻지 못하다가 우리는 멀어졌다.
이미 꼬일 대로 꼬여 있던 나를 터뜨린 건 왜인지, 나의 용서를 바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갑자기 내가 준 상처를 그대로 받아버리는 저 사람이 너무 연약하고 사랑스러워서, 미안하고 짜증이 났다. 슬픔이 저 배꼽 밑부터 순식간에 차올라 눈 밑까지 도달했을 때. 차라리 그때 울었어야 했나? 솔아씨, 피망이가 사라진 건 커다란 불행 같아요.
둘이 똑같아. 똑같이 벽 같고 한 뼘도 침범하지 않으려고 하고. 한 번쯤은 그냥 무리해 봐요 언니 한쪽이 벽이면 한쪽은 담쟁이덩굴 같아야지 언니
주희는 유리컵처럼 투명해서 그 안에 담긴 것을 그대로 보여줬다. 그러나 그 안에도 가라앉은 것들이 있겠지. 기울이고 숙여도 보이지 않는 밑바닥의 것들 말이다. 그런 건 왜 알고 싶을까? 누군가의 치명상. 누군가의 밑바닥. 그런 걸 안다고 해도 사랑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데 말이다. 주희가 왜 나를 선택했을까? 나는 자꾸 그런 의문을 품는다. 나에 대한 고민이라기보다는 주희를 알고 싶은 마음에 더 가깝다.
내주지 않는 표정. 그런 게 있었어. 나는 지원을 좋아하면서도 그 표정을 두려워했어. 그런 사람들은 사소한 일로 다투고도 절대 먼저 사과하거나 다가오지 않는다는, 인생에서의 숱한 경험이 있었거든
이유 없이 훌쩍 다가가고 싶었거나 내게 다가와줬던, 제각각의 이유로 나를 떠났거나 내가 떠나보낸 친구들을 생각한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지 하고 곱씹는 것은 나의 오랜 취미다.
관찰자이거나 관찰자가 등장해서, 나는 언제나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의 관찰자를 원했다. 누군가가 너 지금 그렇구나, 하고 아주 정확하게 말해주길 바랐다. 소설을 쓰며, 내가 바라는 것은 내가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가 누구를 더 좋아하는 마음은 슬프고 안쓰럽다. 누가 누구를 덜 좋아하는 마음은 슬프지만 어쩔 수 없고, 가끔 삶을 사는 방식이 더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가 덜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가 기우뚱거리는 것이 전부인 것 같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