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컨피던스(이안 로버트슨)」
보장된 정년, 내 퍼포먼스와 무관하게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은 달콤했다.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적당한 보상은 나를 안주하게 만들었다. 나는 편안했지만 잔잔하게 불행해져 갔다. 내 인생에서 큰 일은 겨우 회사의 업무가 전부였고,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외부에서는 아무렇지 않을 일들을 부풀리고 키웠다.회사가 인생의 전부가 된 사람의 인생은 시시했고 생각보다 더 재미없었다.
긴 고민 끝에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열기로 결정했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싶은 설렘에 잠자는 게 아쉬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울타리를 벗어난 삶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의욕은 넘쳤지만 자주 꺾였다. 가슴 뛸 만큼 설레다가도 막상 실행하려니 두려웠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마음먹은 것의 절반 이상은 시작도 전에 꺾였다.성취의 출발은 실행이고, 자신감을 실행을 위한 가장 강력한 연료다. 수많은 가능성을 실현해갈 나에게 자신감이라는 연료가 필요했다.
자존감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느냐를 말해줄 뿐, 나중에 무엇을 얼마나 잘 해낼지에 대한 예측은 아니다. 그 예측이 바로 자신감이다. 자존감과 자신감은 서로 다르지만 깊이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자신감은 자존감을 높여주지만 자존감이 반드시 자신감을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좋아하면 기분은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일을 해내려면 자신감이 필요하다.
자존감을 보호하는 데 쓰는 정신적 에너지는 사실 자신감을 높이는 데 필요한 실질적인 행동을 기피하게 만들기도 한다. 자존감은 실제로 행동하는 대신 자화자찬하기만 하는데, 에너지를 쓰면서 자신감과 정반대의 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한때는 높은 자존감이 만병통치약이라 굳게 믿었다. 꽤 오랫동안 자존감을 높이고 지키는 것에 몰두했다.
다만, 나를 보호하는 일은 종종 성장을 저해하고 일의 진행속도를 늦추곤 했다. 선배들의 쓴소리를 꼰대들의 잔소리로 매도하다보니 시간이 흘러 경력이 쌓여도 내 단점은 여전했다. 라포 형성에 소극적이었고, 의견이 충돌되는 상황이면 적극적으로 내 의견을 주장하지 못했다. 묵묵히 해야 할 일을 잘 해내는 직원이었지만, 창의적인 방법으로 큰 성과를 내는 직원은 될 수 없었다. 싫은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나 혼자 잘 해낼 수 있다는 오만함은 나를 더 고립되게 만들었다. 당시에는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 믿었던 것들이 오히려 내 성장을 방해하고 있었다.
생각과 감정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습관과 루틴, 익숙한 사람들과 장소다. 그런 방식들이 해야 할 일을 해내게 만들고 자기 의심과 동요에 휩쓸리지 않게 해 준다 끊임없이 들고 나는 생각과 이미지의 파도를 좁은 수로에 가둬놓는 것이 바로 그와 같은 외적 지지대다.
24년도 성취는 루틴 덕이다. 과거에 나는 행동하기 전 머릿속으로 많은 시나리오를 검토하다가 결국에는 지쳐서 행동을 미루곤 했다. 한번 할 때 완벽하게 하자는 환상에 사로잡혀, 생각하는데 에너지를 다 소진해 버렸다. 머리는 복잡한데 실제로 하는 일은 없으니 자연스레 자신감이 떨어졌다. 그러니 23년, 한해 나의 좌우명은 일단 하자였다. 머리를 비우고 일단 뛰어드니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는 일들이 많았다. 그렇게 행동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머리는 가벼워지고 몸은 더 빨라졌다.
편견의 위협이 줄어들면, 혹은 그 이면에 있는 유전 이론이 약해지면 여성들도 능력이 없다고 여겨지는 분야에서 남성들 수준만큼 실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여성은 유전학, 생물학, 호르몬적으로 남성보다 선천적으로 더 불안하다. 불안은 자신감을 훼손한다. 남성들은 순풍을 맞으며 경쟁하는 반면 여성들은 편견과 고정관념의 역풍을 맞으며 불리하게 싸워야 한다.
여성들은 대개 남성들보다 자신감이 낮다. 8년 간 직장생활로 내가 직접 겪은 바도 그랬다. 나를 포함한 여자 동료들은 먼저 나서고 싶어 하지 않았고, 자기 능력치를 과소평가했다. 시키는 건 잘 해내지만, 도통 의욕이 없고 자기 어필도 잘하지 못했다. 그렇게 묘하게 우울한 분위기를 ‘겸손이 미덕이다’로 포장하며 서로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그쳤다. 남성 동료들은 정반대였다. 객관적인 능력이 부족함에도, 대부분 자신감이 넘쳤고 ‘할 수 있습니다’를 입에 달고 살았다. 나는 그들이 무모하고 자기 객관화가 부족하다고 폄하했다. 내가 틀렸다. 성취의 장애물은 능력 부족이 아니라 실행 부족이다. 높은 능력에도 불구하고 은은한 자기 불신이 적극적인 행동을 가로막았고, 많은 성취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자신을 믿어라. 그렇지 않아도 그런 척해라.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다.
야후의 전 최고경영자 마리아 메이어는 ‘자신의 성공 비결이 썩 준비되지 않은 것 같은 일들을 해내는 것’이라고 언젠가 말했다.
그러니 명심하자. 내가 가진 것을 알아봐 주고 나를 온전히 믿어주는 것이 사회생활의 출발점이다. 자신감은 행동과 경험으로 학습 가능한 영역이다. 생각하지 말고 먼저 발을 내디뎌야 한다. 내가 가진 것은 이미 충분하고, 뭐든지 해낼 수 있다. 게다가 쉽게 흥분하지 않는 성격과, 넓은 시야는 과도한 자신감에 취하지 않도록 나를 도와줄 것이다.
자신감은 ‘실행가능’한 나의 능력을 믿음과 동시에 내가 꿈꾸는 것들이 이 세상에서 ‘실현가능’하다고 믿을 때 극대화된다.
뉴컨피던스(이안로버트슨)
자신감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해낼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다. 이는 ‘행동 가능’의 요소다. 두 번째는 그 행동으로 세상이 조금은 변할 거라는 믿음이다. 이는 ‘실현 가능’ 요소다.
자신감은 목표가 명확하지 않거나 목표에 정확히 집중하지 않을 때 종종 부족해진다. 젊은 골프 선수가 큰 대회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사기가 저하되어 일찍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너무 멀고 높은 목표이자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목표이기 때문에 이룰 수 있는 확률이 몹시 낮다. 특별한 목적 없이 그저 즐기기 위해 경기에 참가한다면 그것도 좋지만 큰 발전은 없을지도 모른다. 목표를 이루기 가장 좋은 ‘스위트 스폿’은 약간 힘들지만 성취 가능한 목표일 때 생긴다.
자신감은 우리 마음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 정확한 대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그래서 이를 더 잘 해내고, 결국 더 자신감이 생기고, 점점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미루기는 자기 마음을 모를 때 생긴다. 자기 생각에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말의 일상적인 표현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행동 이전의 ‘생각’에서부터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결단력 있는 사람은 커다란 동요 없이 일련의 행동을 선택한다.
불안해도 괜찮다는 믿음은 몇 가지를 시사한다.
1. 불안한 감정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 때문에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2. 불안한 감정이 영원하지 않다는 뜻이다.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3. 두려움과 거리를 두고 이를 지나가는 바이러스처럼 일시적이고 외적인 것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이를 줄이는 한 가지 방법은 무슨 일이든, 예를 들어 공감 능력처럼 여성이 더 뛰어 날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전환하는 것이다. 고정관념은 정신적 에너지를 소진하게 하고 자기 충족적 예언으로 작용한다.
편견의 위협이 줄어들면, 혹은 그 이면에 있는 유전 이론이 약해지면 여성들도 능력이 없다고 여겨지는 분야에서 남성들 수준만큼 실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남성들은 순풍을 맞으며 경쟁하는 반면 여성들은 편견과 고정관념의 역풍을 맞으며 불리하게 싸우고 있다.
자신감은 믿음이고 믿음은 변할 수 있다. 킴이 기차를 놓친 것과 같은 현상을 ‘자기 불구화 현상’이라고 한다. ‘어차피 합격하지도 못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실패를 회피하고 실패로부터 입을 자존감을 보호하는 마음의 작용이다. 자신감은 학습할 수 있지만 한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바로 변화가 가능하다는 ‘믿음’이다.
여성은 권력이 뇌에 끼치는 중독적이고 성격마저 바꾸는 효과에 남성보다 덜 취약하다. 보통 여성이 남성보다 손실 회피 성향이 강하고 그래서 위험에 더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그 조심스러운 접근은 아마추어 주식 거래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더 잦은 거래는 곧 더 큰 손실을 뜻했고, 여성보다 훨씬 자주 거래를 한 남성을 결국 여성보다 50퍼센트 이상 손해를 보았다.”
지나친 자신감의 긍정적인 영향은 취하되 부정적인 영향은 피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전 세계에서 여성 지도자의 수를 확실하게 늘리는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거의 모든 중국 사람이 더 이상 밀이든 쌀이든 농사를 짓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가 문화를 결정했고 그 안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다시 문화의 일부가 되어 다음 세대로 전해졌다. 밀과 쌀은 각기 다른 사고방식뿐만 아니라 완전히 서로 다른 가치를 대변한다. 밀 재배 지역의 분석적인 사람은 모두를 위한 공정성과 취약계층에 대한 돌봄에 가치를 두고, 쌀 지배 지역의 전체주의적인 사람은 충성과 권위, 존엄에 가치를 둔다. 후자는 외집단에 대한 적대감과 차별에 더 익숙하고 전자는 이에 반대한다.
변화를 받아들인 다는 것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자신감을 갖고 미래를 향한 ‘실행 가능’과 ‘실현 가능’의 다리를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