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사는 태도에 관하여

「라틴어 수업(한동일)」

by Chloe

HY가 내 새 출발을 응원하면서 선물해 준 책이다.

따뜻한 마음을 담아 자신의 취향을 나누어 준다는 면에서 책선물은 언제나 설레고 감사한 일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인 최초 로마 대법원의 변호사로, 오랜 기간 이탈리아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HY는 먼 나라에서 스스로를 지키며 고군분투할 내 모습이 아른거렸나 보다.

자주 보지 못해도 떠올리면 언제나 마음이 따뜻해지는 친구다.


‘라틴어수업’은 라틴어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저자가 라틴어와 법학을 배웠던 이탈리아 유학시절을 회상하며 삶에 대한 철학을 전하는 내용이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의 길을 잃지 않고 잘 가고 있습니까? 그 길을 걸으면서 무엇을 생각합니까?
그 길 위에서 지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나는 안정지향적인 삶에서 자유로운 삶으로 궤도를 옮기는 중이다.

궁극적인 지향점은 자유로우면서 뿌리가 튼튼한 삶인데,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면서 동시에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삶이 가능할까?

레퍼런스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여러곳을 검색하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을 유튜브에서 만났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성과 속도를 위해 어느 하나의 회사, 환경에 국한되어 일하기보다

스스로 그런 삶을 가능하게 하도록 작업환경을 만들 자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없으면 만들면 된다는 그들의 담대함이 빛나 보였다.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오늘의 절망을, 당장 주저앉거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끝 모를 분노를 내일로 잠시 미뤄두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나를 괴롭혔던 그 순간이, 그 일들이 지나가고 있음을,
지나가버렸음을 알게 될 겁니다.

단연코 내가 가장 싫어했던 삶의 태도였다.


수능을 앞둔 고3 딸의 성적이 갑자기 박살 난 때에도,

우등생이던 딸이 대입을 망치고 타지로 보내져 고장난 몸과 마음을 붙들고 겨우 살아갈 때에도

엄마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위로만 되풀이했다.


지금 당장 힘들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딸을 두고

본인의 능력으로 당장 해결할 수 없으니 가장 값싼 말로 어르고 달래는 책임 회피의 일종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엄마에 대한 원망은 풀리지 않은 채 깊은 곳에 응어리져 있었다.


8년간 사회에서 부러지고 꺾이고 나서야 엄마가 했던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게 됐다.

엄마는 내가 하루하루를 너무 고통스럽지 않게 살길 바랬다.

한번 꽂히면 정말 하루종일 그것만 생각하는 집요한 딸의 성질머리를 잘 알고 있었기에,

내가 당장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매 순간을 전전긍긍하지 않길 바랐다.

오직 바꿀 수 있는 것은 나의 마음가짐뿐이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받아들이고 평안해지길 바랐던 것이다.


앞서 말했던,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는 단기간에 성취되지 않을 것이다.

긴 기간 동안 좌절했다가,

앞서가는 이들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미워했다가,

다시 일어서고 또 넘어지기를 반복할 것이다.

그러니 더욱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긴 길을 지치지 않고 씩씩하게 걸어 나갈 수 있도록 나를 안아주고 위로해 주자


라틴어수업(한동일)


사실 언어 공부를 비롯해서 대학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양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틀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학문을 하는 틀이자 인간과 세상을 보는 틀을 세우는 것이죠


어떤 것에 대해 아는 것 그 자체가 학문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앎의 창으로 인간과 삶을 바라보며 좀 더 나은 관점과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 점이 바로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배운다”라는 말에 부합하는 공부의 길이 될 겁니다.


어제의 메리툼이 오늘의 데펙투스가 되고, 오늘의 데펙투스가 내일의 메리툼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가 없죠. 우리는 무엇 하나 명확히 답을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스스로를 살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무엇이 메리툼이고 데펙투스인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성찰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곁가지를 뻗어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제 마음을 한 겹 한 겹 벗겨보니 그가 제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행동과 말을 통해서 제 안의 약함과 부족함을 확인했기 때문에 제가 아팠던 거예요. 다시 말해 저는 상처받은 게 아니라 제 안에 감추고 싶은 어떤 것이 타인에 의해 확인될 때마다 상처받았다고 여겼던 것이죠.


매사 느리고 어설픈 저는 항상 자책하고, 질책받을까 두려워하기만 했는데, 선생님 덕분에 못난 저를 마주하고 용서하고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와 화해하는 법을 선생님으로부터 배우게 되었고, 그것이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값진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말시험은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마지막 수업입니다. 문제지를 보면 교재를 참조하더라도 그리 풀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저는 여러분이 시험을 통해 학문 앞에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느꼈으면 합니다. 그것은 내가 아는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고 미천한지, 학문 앞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는 겸손밖에 없다는 사실을 시험을 통해 조금이나마 느껴보길 바랍니다.


도전을 멈추고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 자책하고 불안해했던 저에게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을 보장할지 장담할 순 없지만, 오늘은 행복하게 산 사람의 내일이 불행하지만은 않을 것이기에’라는 구절은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안다.

매일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 20대는 과거에 발목 잡혀 너무 먼 미래를 꿈꾸며 사느라 현재에 충실하지 못했다.

내 30대는 하루하루를 행복과 성실함으로 꽉 채워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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