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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큰티팟 Jan 13. 2021

엄마를 이해하는 엄마가 되다.

원망이 고마움으로 변하는 순간



'아이를 낳으면 진정한 어른이 된다던데. 너 진짜 어른이 되었구나'

내가 아이를 낳고 주변으로부터 제일 빈번하게 듣던 말 중 하나다. 처음엔 내 몸으로 겪은 임신/출산의 고통을 비롯하여 잠 못 자고 온전히 아이만을 위해 시간을 쏟는 희생을 반복하며 어쩔 수 없이 내가 흐려지는 모습을 위로해 주는 말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어른이 된다는 말은 말 그대로 정말 내가 생각하는 어른- 엄마, 아빠와 같은 그런 존재가 된다는 말이었음을 곧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어릴 적 느꼈던 감정들을 꽤 잘 기억하는 편이다. 가장 어린 건 세 살 적 기억부터. 물론 교통사고부터 자잘한 사건 사고와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어떤 사건과 관련된 주변 배경들 이를테면 -그날의 날씨와 소리까지도 기억을 한다. 그리고 기억하는 그 사건들은 대부분 위험하거나 속상한 일들이었으므로 감정도 대체로 두려움, 공포 그리고 외로움에 관련된 것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성장하면서 엄마에게 서운함이 많았다. 맞벌이 가정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엄마에게만 더 서운함이 짙은 유년시절을 보냈다. 아마도 대부분 내가 정서의 갈급함을 채워주길 요구했던 대상이 엄마였기에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엄마는 내가 네 살 때부터 일을 하셨다. 그게 자라면서는 내내 마음의 상처였다. 엄마의 존재가 꼭 필요하던 날 엄마가 없었던 날들이 있었고, 엄마는 경제적으로는 여유롭게, 정신적으론 독립적으로 키우려 애쓰셨다. 학창 시절 엄마가 제공해준 금전적 보상은 달콤하게 즐겼지만, 그렇다고 엄마를 이해하고 용서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곤 엄마 탓을 하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어 나의 부족함을 마주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내가 잘못된 건 나의 성격이 이런 건 다 엄마 탓이라고. 그 시절 엄마의 부재로 내가 이렇게 된 거라.. 속으로 생각했다. 가끔씩 엄마와 다툴 때 표출하기도 했다.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걸 서른이 넘어서야 느꼈다.. 나는 얼마나 철이 없던 걸까.


임신이 되고 나서 제일 먼저 향한 건 서점이었다. 무지한 세상에 떨어지는 불안함을 잠재워줄 건 정보력뿐이었고 당시 내게 남은 8개월의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한 육아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쌓아두어야만 했다. 그렇게 육아 서적 코너를 서성이며 베스트 도서는 모조리 구매해서 읽었다. 임신기간 동안 다양한 도서를 읽으면서, 아이의 몸과 마음, 인지 발달은 0-3세 사이에 가장 크게 이루어지고, 특히나 앞으로 어른이 될 때까지의 정서상 발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애착형성'이 이때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게 대체 얼마나 중요하길래 거의 모든 책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또 높이는 포인트였을까? 당시에는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비로소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주변에 사람이 늘 많았다. 새 학기에 먼저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새로운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었다. 새로운 사람과 삶을 공유하고 나아가 그의 삶의 일부가 되는 것. 반대로 내 하루하루가 새로운 사람과의 이야기로 채워지는 일들이 즐거웠다. 이처럼 사회성이 좋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편인데, 그 성격 형성의 기초가 이미 영유아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았다. 당시 어린이집을 4세부터 갔으니 난 이른 편이었다고 엄마에게 불평했는데.. 나는 내 아이가 16개월이 되었을 때 어린이집에 보냈다. 바이러스 시국과 맞물려 자잘한 아이의 질병으로 짧게는 1주, 길게는 한 달간의 가정 보육을 하게 되는데 하루하루가 어찌나 고된지 정말 못할 짓이라고 수십 번도 더 생각했었다. 그런데, 엄마는 나를 36개월간 집에서 보육을 하셨던 거다. 그것도 혼자서. 내게 줄 수 있는 사랑과 애정을 모조리 쏟아부어주셨고, 그 시간을 어찌 견디셨을지. 감히 상상할 수 조차 없다. 당시엔 천기저귀를 사용해서, 한겨울에도 빨고 말리고 했어야 했다던데.. 요즘처럼 좋다는 육아 아이템들도 모두 없었을 테고.. 기나긴 하루를 어떻게 버티셨을지, 종종 내 아이를 돌보면서 그 생각이 떠올랐다. 육아책을 읽으며, 가장 중요하다는 영유아 시절 그 황금기에 엄마가 내 옆에 있어주셨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쓸어내렸다. 진심으로 감사했다.


엄마가 얼마나 많은 시간 나를 만져주고, 사랑한다 해주었을까. 내가 내 아이를 만지며 하루에 수십 번도 더 해주는 이 표현이 나에겐 너무 당연했는데 남편은 처음에 이런 내 모습에 놀랐다고 했다. 육아에 있어서 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일 보다 중요한 일이 없는데, 남편이 어려워하는 이 일을 내가 너무도 쉽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내가 엄마에게 받은 사랑 덕분이었을 거라는 걸 이제야 안다.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었지만, 쉬고싶은 주말에도 시내의 서점에 데려가 주셨던 일, 책을 본다 하면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던 일들. 배우고 싶다고 말하면, 한 달만 하고 그만두더라도 무슨 일이든 꼭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셨던 일들이 지금의 나의 취미가 되고, 나아가 배우자를 선택하는 중요한 가치가 될 만큼 의미 있어졌는데, 그 모든 것들이 엄마와 보냈던 시간들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깨닫는다. 아쉽게도 그 소중했던 하루하루는 내 머릿속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기록되어 있었던 것인데. 철없는 나는 학창 시절 기억나는 일 중 원망할 일만 찾고 또 기억했던 것 같다. 바보같이.


어른들이 내가 아이를 돌보는 것을 보실 때, 웃으면서 종종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들이 있다.

 "이렇게 예쁘게, 정성스럽게 키우는데 다 크면 지 혼자 잘난 줄 알고 말대꾸나 하고, 혼자 알아서 큰 줄 알지"

이제야 이해한다. 이 아이가 내게 서운함이 가득한 어른으로 성장한데도, 아이에게 향하는 이 사랑과 애정을 거둘 마음이 없다. 엄마라는 사람은 내가 준만큼 되돌아오지 않을 사랑이라 하더라도, 기꺼이 그것도 아낌없이 자식에게 줄 준비가 되어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에, 그런 사랑을 직접 경험해보면서 이래서 어른이 되는구나를 깨닫는다. 그와 동시에 내가 어떠한 사랑을 받았는지를 느끼기에 그 감사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엄마 때문에' 가 아니라 '우리 엄마 덕분에' 이렇게 건강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키울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다가오는 어버이날엔 감사 편지를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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