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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큰티팟 Oct 04. 2019

엄마라는 이름이 주는 용기와 뻔뻔함 그 사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지키고 표현하는 일

입추가 지나고, 말복이라는 것이 무색하게 39도에 육박하는 너무도 뜨거운 주말이었다. 남편과 아이와 시원한 커피를 한잔하기위해 스타벅스를 향해 유모차를 끌고 있었다.

 

내가 사는 곳은 아파트와 오피스텔, 호텔, 극장 및 상가가 하나의 차도를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줄지어져 있는 한마디로, 주거공간과 상업공간이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공간이다. 해서 두 공간이 함께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장점과 단점이 극명하다. 육아를 하다가도 갑자기 영화가 보고 싶어지면, 남편과 시간차를 두고 각자 지하의 극장으로 뛰어내려가서 보고 올 수 있다는 점. 디럭스 유모차를 끌고 다닐 만큼 가까운 거리에 에어컨 빵빵한 문화센터가 있는 거대한 몰이 있다는 점, 무엇이든 필요한게 생기면 바로바로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주변에 펼쳐진다는 점은 내가 이곳을 주거 공간으로 고려할 때 가장 크게 가치를 둔 것이기도 하다. 

단점은 사람이 많고, 그만큼 차가 많아서 항상 주변을 둘러보아야 한다는 것과, 과연 사람인가 자동차인가 싶은 배달 오토바이 운전자들의 아슬아슬한 주행을 시도때도 없이 목격할 수 있다는 점정도가 되겠다. 회사원일 때, 임신중일 때도 사실 이 문제들이 그렇게 불편하진 않았었던 것 같다. 


유모차를 끌고 집 앞 30m 근방의 스타벅스를 가려면 작은 도로를 지나 아파트 건너편 호텔의 도보를 걸어야 한다. 남편과 나는 익숙하게 유모차를 끌면서 호텔의 정문을 막 지나고 있었다. 그 때, 호텔 앞에서 경비(?) 주차요원(?)으로 보이시는 아저씨가 다급하게 나와 남편에게 비키라고 사인을 보냈다. 왜죠? 하고 동그랗게 눈을 뜬 우리에게 무작정 ‘비키세요! 이리 나오세요!’ 손짓을 하는게 아닌가. 무의식적으로 남편과 나는 뒤를 돌아봤고, 거대한 호텔 버스가 우리 뒤에 바짝 따라 붙고 있는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옆으로 유모차를 틀었다. 그런데, 그 틀었던 곳이 바로 차도였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서있던 곳이 인도였기에 핸들을 틀어버린 곳이 차도일 수 밖에 없던 것이다. 상가로 입/출차 하는 차들이 정신없이 지나다니는 그 도로로 핸들을 꺾어서 종종걸음으로 그 구간을 벗어나려는데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뒤를 돌아 아저씨에게 용기내어 말했다.

 “아저씨 저희가 서있던 곳이 인도 아닌가요? 이 공간이 차도에요!”  

그러자, 아저씨는 한숨을 푸욱 쉬시며 차가운 표정으로 날 응시했다.

나의 편견일 수도 있지만 아마 남편이 없었더라면, 더 큰소리로 내게 한마디 던지셨을 것 같은, 목구멍에 올라오는 말을 삼키시는 그런 느낌이었다. 


스타벅스에 도착한 후, 남편에게 방금 이 사건의 대응은 우리가 잘못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아저씨가 비키라고 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차도로 핸들을 꺾는다는 것이 우리 아이에게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고, 남편은 그 아저씨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 상태에서 우리가 계속 유모차를 끌고 갔더라도 뒤의 호텔차량 때문에 위험했을 거라고 피하는게 맞았을 것이라 이야기했다. 나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10년만에 다시 운전대를 잡고 연수를 하는 요즘,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뒤에서 빵빵거려 마음이 조급해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또, 지난주에는 옆차선에서 신호도 없이 갑자기 차선을 바꾸고 끼어드는 바람에 사고가 날 뻔 했었는데, 초보였던 나는 브레이크를 밟는게 아니라 핸들을 반대차선으로 돌리면서 또 다른 사고를 만들어 낼 뻔했었다. 그 날의 경험으로, 도로위에선 ‘남들의 말을 절대 신경쓰지 마라, 흔들리지 말고 스스로 신념을 가지고 차분하게 운전해야 한다’고 내게 가르쳤던게 누군데! 


아마 아이가 없었더라면, 애초에 호텔 앞에서의 저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의식하지도 못한 채 조금 불편했던 순간으로 느끼고 지나가버렸을 일이었겠지만 그 날의 나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 곳은 다름 아닌 집 앞이거니와, 앞으로도 줄곧 내가 아이와 함께 다녀야 할 인도이기 때문이다. 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모차를 돌려 호텔 로비로 향했다. 지배인을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하였고, 지정된 곳이 아닌 곳에 호텔 버스를 정차해 둔 것에 대해, 경비아저씨의 무례함에 대해 사과를 들었다. 그렇게 호텔 자동문을 빠져 나오는데 이 무더위에 차가운 수박을 한입 베어 물은 것처럼 마음이 시원해지면서 그제서야 웃음이 나왔다. 

어찌되었든 문제를 해결한 내 스스로가 조금 멋있어 보이기도 했는데, 이불속에서는 약간 민망해서 허공에 발길질을 해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싶은데, 옆에서 곤히 자는 아이를 보면서 입술을 앙다물었다. 

이런 일이 백번이 생긴다해도, 백번 다 항의할 수 있다. 나는 저 아이의 엄마이니까. 

아이를 키우면서 옳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정말 옳은 일이었는지에 대해 자문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이번일을 계기로 옳은 것을 표현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임을 깨닫는다.

그게 타인에게는 까다롭고 피곤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목소리를 낼 것이다.

나는 엄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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