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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큰티팟 Oct 08. 2019

관계의 변화

아이를 낳고 또 한 번의 주변 정리가 시작되다.


결혼 준비를 할 때, 주변 선배들이 그랬었다. 결혼식을 기점으로 인간관계가 크게 한번 바뀔 거라고.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가, 오래된 내 친구들이? 그럴 리가! 하고 자만했지만, 결혼식이 끝나고 1년 즈음 지나면서 그 말의 뜻을 가슴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내가 각별하다고 느꼈던 사람에게서 내 기대치만 한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느꼈고, 또 반대로 생각해서 날 떠나가는 지인도 있었다. 아직 혈기 왕성한 20대라면, 멀어지는 그를 붙잡고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을 설명해가며 이 관계를 어떻게든 다시 가깝게 붙여놓으려 애썼겠지만, 그러기에 우리는 각자 사는 게 바빠 자주 볼 수도 없을뿐더러 그런 복잡한 감정을 털어놓을만한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그만뒀다. 모든 관계를 '정상화' 하고 싶고, 가깝게 만들고 싶다는 건 나의 욕심일 테니까.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털어놓아도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렇게 된다면 정말 이제는 안부 묻는 연락조차 부담스러워질 것 같아서 혹시나, 언젠가, 어떠한 상황을 계기로 다시 가까워질 수도 있을 거란 희미한 희망을 하나 세워두고 애매모호하게 관계를 벌려둔 채로 놓아두었다.



그런데,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면서 또 같은 경험을 반복하게 되었다.

 

아이가 생기고는 대부분의 외출에 공간적 제약이 따른다. 아이의 용변을 바로바로 손쉽게 처리할 수 있어야 하고, 이유식을 데우려면 전자레인지도, 아기 의자도 구비되어야 하고. 그래서 외출 장소는 주로 집 앞, 대형 마트, 백화점, 몰 등으로 정한다. 이 부분이 친구들을 만날 때 가장 제약이 되는 부분이다. 


예전이라면 이태원, 가로수길, 송리단길, 성수동 등 어디든 핫한 카페나 맛집이 생겼다 하면 그곳이 만남의 장소가 되었을 거다. 어쩌다가 만남을 갖게 된다 하더라도, 그 장소가 유아휴게실이 없는 공간이라면, 유모차가 가기 힘든 장소라면 나는 그 만남을 포기하게 된다. 더러 나의 사정에 맞추어 장소를 변경해준 적도 있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그렇게 해달라 할 수도 없고, 결국 처음 제시했던 핫한 공간을 다른 친구와 다녀왔단 친구의 SNS 피드를 보며, 그 친구에게도 나에게도 만남 자체가 서로를 배려해야만 하는 불편함을 주고 있단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또, 이야기 화제가 정말 많이 달라졌다. 


육아를 하다 보니 대화 주제는 대부분 육아에 관한 것들이다. 아이의 성장 발달, 맘카페 핫딜 이야기, 신박한 육아템등. 근데 이런 것들이 미혼인 친구들에게는 대부분 굉장히 생소한 주제였던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러했었고. 그래서 만나면 대화를 맛깔나게 이어갈 수가 없게 되고, 각자의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면 그 역시 큰 공감을 얻지 못해 만남을 끝내고 집으로 오면서 괜스레 무안해지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해서, 나의 사정과 같은 육아맘, 혹은 조카가 있어 어깨너머 육아를 경험하여 공감해줄 수 있는 친구, 아이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친구 정도를 만나는 걸로 나의 만남 대상 리스트가 축약되었다. 


친구라는 이름 옆에 붙던 10년 지기, 20년 지기 이런 수식어들이 사라졌다. 함께 알고 지낸 세월의 중요함을 거뜬히 이겨버리는 것이 바로 아이의 존재 유무라는 것을. 매일 느끼고 있다.



며칠 전 늦은 밤 친한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친한 동생은 100일이 갓 넘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아직 주변에 미혼인 친구들이 많다. 임신 전 함께 어울려 놀았던 꽤 가까운 친구들이 아이를 보러 집으로 놀러 왔었다 한다. 근데 그들이 가고 나서 느껴지는 공허함을 내게 토로하였고, 그 내용은 내가 위에 언급한 것들과 크게 다르지가 않았다. 약속 장소부터, 대화의 주제까지 출산 후 갑작스레 변경된 모든 것이 이제 갓 아이를 낳은 동생에게는 꽤 혼란스러웠던 모양이다.  


친구들 역시 결혼하고 임신하고 육아를 하게 된다면, 그때 우리가 겪었던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그들이 그 상황을 겪을 때까지 지금은 그 관계에 큰 기대를 걸지 말자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질 거라고. 나의 아이에게 관심이 아직 없어도 서운해하지 말자고. 그저 몰라서 그런 거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닐 거라고. 그렇게 다독였다.


나 역시도 미혼일 적에 아이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육아를 하고 있던 친한 친구에게 어쩌다 연락이 닿아도 회사 업무에 대한 고충, 결혼 준비의 어려움에 대해 종일 이야기했었다. 그 당시 나는 스트레스를 푼답시고 매일 같이 쇼핑을 하고 차려입고 맛집 투어를 하며 마치 누군가와 경쟁하듯 SNS에 사진을 남겨 놓았었다.


친구의 아이를 보러 가서도 설거지 한 번을 제대로 안 해주고 손님 대접을 받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그 친구에게 매일매일 육아에 대해 물어보고 심적으로 많이 의지하면서 내가 한 행동들이 생각나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친구는 그때 얼마나 외로웠을까. 나가는 건 고사하고 잠도 못 잤을 텐데. 내 SNS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제일 친하다는 친구면서 어쩌다 연락 온다는 게 고작 본인 힘들다는 이야기뿐이라니. 친구 입장에선 얼마나 많은 자유를 가진 내가 그에게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 거였을까. 그래서 친구에게 그때 미안했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또, 그러함에도 당시 내 이야기를 경청해주고 항상 따뜻하게 대답해주었던 친구에게 어찌나 고맙던지. 그 고마움이 그대로 친구의 딸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커져갔다.

 


물론 이 모든 건 미혼이든, 기혼이든, 아이가 있든, 없든 배려와 관심의 차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 처해야만이 이해가 가능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배려를 해야만이, 관심을 보여야만이 지속할 수 있는 관

계가 된다는 점이 부담스럽다는 것이 포인트다. 이런 고민들로 주변에 하소연하자, 선배맘들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또한 지나갈 거야. 그냥 적당히 그 시기가 올 때까지만 좀만 기다려봐. 아이가 조금만 커도 다시 그렇게 나가서 함께 즐길 수 있어'

 

그 말에 희미한 희망을 걸어두고 애매모호하게 관계를 벌려둔 채로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그렇게 또 살아간다.

부디 너무 멀어져버리기 전에 서로의 삶에 비슷한 부분들이 생기기를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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