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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수 May 17. 2020

선생님에 이어 사진작가? [2017 필리핀]

내가 말하면 직업이 된다.

 많은 어른들이 동남아 특히 동남아 시골지역을 방문하고서는 ‘시간이 멈췄다’, ‘70년대를 보는 것 같다’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신다. 97년생인 나는 교과서로만 봤던, 지금은 다행히도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이런 시절들을 보여주는데 큰 역할을 하는데, 내가 살던 시부얀 섬은 70년대를 뛰어넘은 60년대라는 생각을 해 본다.


 솔직히 나는 마을에서 가장 잘 사는 집안에 있었는데, 가장 잘 사는 집이 한국에선 이제 볼 수 없는 풍경이니 이곳이 어느 곳인지는 대충 상상이 가실 것 같다. 나는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직업이 여러 가지였다. 아픈 곳에 약을 발라주는 초보 간호사, 전 글에서 보셨듯이 체육교사, 지금은 또 다른 직업이라 할 수 있는 사진작가 이야기를 해야 하려고 한다.


 

우리 섬의 노을은 내가 봤던 어느곳보다 아름다웠다고 할 수 있다.

 스무 살 때부터 사진에 관심을 많이 가졌는데, 나이가 나이라 큰돈을 쓸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 항상 카메라를 사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생각으로만으로 남겨뒀는데, 필리핀으로 가기 전에 내 예산 안에서 허락되는 중고 카메라를 알아보았다. 조건은 1번 예산 15만 원 이내(가격도 가격이지만 해외라 잃어버릴 것 같아서.), 2번 밝은 50미리 단렌즈가 포함되어야 함. 3번은 자동초점 기능이었다. 그리고 팔랑귀여서 캐논은 구리다라는 글들을 많이 보아서 니콘 카메라로 정했고, 중고장터를 살펴보던 때에 니콘의 D80이라는 구형(2006년형이었던가)이 50미리 단렌즈가 포함된 금액이 8만 원 정도에 판매를 하는 글을 보고 아 이 정도 가격이면 사도 되겠다고 생각해서 구매했다. 그때는 몰랐다 이 팔만 원짜리 카메라와 렌즈가 지금 내게 글을 쓸 수 있게 해 줄 수 있을지는.


 이 시부얀 섬에 오고 나서는 이 카메라가 정말 나한테 ‘사진작가’라는 타이틀을 부여해주었다. 나는 어릴 때에 부모님이 필름 카메라로 내 유년 시절을 잘 기록해 주셔서 정말 감사할 따름이었지만 이 마을에 아이들 집에 초대를 받고 놀러 갈 때에는 집 안에 아무 사진이 없었다. 당연히 내 하숙집 사람들은 잘 살았기에 가족사진 정도는 있었다. 이 시절에 나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시내 혹은 다른 큰 섬으로 가서 장을 보거나 외출을 하러 나갔는데 그때마다 나는 찍은 사진을 가지고 인쇄하는 가게를 찾아서 사진을 인화하고 그들에게 나눠주었다.


 말도 통하지 않지만 ‘떙큐’ ‘살라맛’ 이 한마디가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참 행복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사진을 주러 산으로 올라갔는데 아이의 아버님이 사진을 보고 정말 행복해하시면서 칼을 하나 챙겨서 야자수 나무로 올라가더니 내가 좋아하는 코코넛 열매를 따서 줬다. 이 순수한 마음이 지금도 그리워진다. 그 코코넛 맛은 아직도 달콤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이 나무로만 지은 집 안에 벽에 붙어있는 내가 찍어준 사진들.. 1년 뒤에 방문했을 때에도 여전히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그들의 사진작가였던 것이다. 뭔가를 받으면서 한 것도 아니지만 돈을 받았을 때보다 더 행복한 기분을 경험했다. 여기서 나는 선생님이었고, 간호사였고 사진작가였다.


-다음 글에는 이 당시 제가 촬영했던 사진들로만 이루어진 게시물이 올라갈 예정입니다. 같이 봐주시면 참 좋으실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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