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성인ADHD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막상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늘 불편했던 제 감정에 대해 생각하곤 합니다.
티브이에서 본 우울증(저의 선입견이었죠) 환자처럼 맥락도 없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거나, 슬픔과 우울감을 인지하고 그런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쉬는 날은 하루종일 아파서 누워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어요.
나갈 준비를 하고, 양말을 신고 나서 신발을 신고 문을 열고 나가는 단계에서 몇 시간이 걸렸습니다.
고향 친구의 결혼식을 가야 하는 날에는 샤워 후에 두통이 심해서 잠시 기절까지 했었습니다.
왜 그렇게 살았는지는 지금도 이해가 안 되지만, 신체화 증상들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아.. 이건 누가 봐도 중증인데?라고 생각하시겠죠.
그래도 출근하는 날은 어떻게든 나가서 열과 성의를 다 해 일을 하고 밝게 지냈어요. 그 순간들이 거짓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아요. 늘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에너지를 방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아무것도 못하겠고, 움직이지도 못하겠고...
일하는 날은 멀쩡하다가도 주말이 되면 머리가 어지러워 걷기도 힘들었어요. 뇌 CT도 찍어보고, 이비인후과에서 여러 검사도 해봤지만 심한 두통과 걷기 힘들 정도로 어지러운 것과 관련된 검사의 결과는 이상 없음.
저는 절대로 우울증이 아니라고 확신했었어요.
누구보다 밝고, 워커홀릭에 덕질을 지구 중심까지 뚫을 기세로 파고들었으니까요. 늘 한 번에 여러 가지를 하고 있었고, 멀티의 상태로 에너지를 소모하고 나면 퇴근 후나 주말에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하고 싶은지조차 모르겠더라고요. 불도 켜지 않은 자취방에서 눕는 것도 편히 앉는 것도 못한 채 서서 밤을 지새우던 날들은 지금 떠올려도 끔찍합니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잊어버리고 살았죠. 이런 이야기를 심리 상담 중에 꺼내게 되었고, 상담가께서 많이 놀라시며 안쓰러워하시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이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도파민 분비에 문제가 있는 성인 ADHD의 전형적인 증상도 증상이지만 우울증이 심했고 아무도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혼자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에서는 업무를 더 타이트하게 푸시해 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워커홀릭은 세로토닌의 저하로 지속적으로 업무를 찾아 나섭니다. 과업을 제시간에 맞추려면 또 엄청난 몰입을 했다가 끝나면 쓰러지듯 누워서 일에 대해 생각하고, 수면 시간은 줄어들고 나이는 들어가며 이 모든 과정이 점점 한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인생에서 큰 변화라고 하는 일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20대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30대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20대에 사기를 당하여 큰돈을 잃었습니다. 회사생활은 자신 있었지만 ADHD 증상이 그렇듯 실수와 자책을 반복하며 자신감을 잃고 커리어를 잘 구축하지 못했습니다.
30대에 결혼을 했고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는다는 것 이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실시간으로 겪으며 인생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다니는 정신과 주치의 선생님의 추천으로 긴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리면 자학개그를 한다거나, 남 얘기 하듯 말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마주하기 힘든 많은 슬픔이 두렵습니다. 평생 덮어놓고 그냥 살면 안 되냐고 따지고 싶어요.
하지만 제가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힘들어도 더 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나조차 불편한 나 자신만큼은 조금 더 편안하게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잠을 자는 것을 진정으로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에게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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