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상처를 달고 살았다.
'저어기 정도에 뾰족한 모서리가 있으니 이마를 조심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그대로 이마를 찧는다.
종이 출력물에 손가락을 베인다거나, 열려있는 식기세척기에 정강이를 그대로 부딪힌다.
다칠 줄 알면서 다치는 것은 서러움 이상의 자괴감이 든다.
길을 가다 발이 걸려 넘어지면 동행인은 묻는다.
"도대체 어디에 걸려 넘어지는거야?"
'뭔가 걸렸는데.. 분명 돌부리가 있었을텐데...'
멍이 들고 피를 보는 일이 잦아 지인이 나에게 꼭 성인 ADHD 검사를 해보면 좋겠다고 권유했다. 몇 번의 권유를 정말 가볍게 흘려 들었던 것 같다. 오랫동안 ADHD 약물 치료를 하고 있는 지인도 여러 번 권했다.
'나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조금 많이 피곤하고 우울한 것 뿐이에요.'
문제라고 생각했던 게 문제다.
감기가 걸리면 문제라고 하지 않는다. 아픈 사람에게 문제 있다고 말하지 않지 않나.
나는 정신과를 가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생각했던거다.
내가 문제였다.
편견으로 똘똘 뭉친.
정신의학과에 방문해서 여러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도 세상 밝고 건강한 사람처럼 대답하고 사실보다 더 건강한 답변을 했는데(이게 문제다.) 중증 우울증과 성인 ADHD 진단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 하루도 불안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매일 두통에 시달렸으며 공부와 업무에 있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불신하고 의심하며 자책해왔었다.
증상 중 하나인 과몰입을 빌어 병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한다.
처방받은 약은 먹지 않는다. 약 없이 해내는 걸 증명하기 위해.
누구한테? 뭘 어떻게?
중요한 면접 날 약을 실수로 먹지 못했다며 남편에게 전화에 대고 엉엉 울었다.
하지만 사실은 약을 일부러 먹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뭐가 그렇게 억울하고 화가 났는지 모르겠다.
많이들 하는 말이지만 남들보다 몇 배로 노력해야만 했던 순간들도 억울했고,
어릴 때 좀 더 나를 살펴 일찍 치료를 받게 해주지 못한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농담처럼 나의 인지능력을 비하하던 날들과
나이를 먹을수록 작은 꿈도 갖지 않게 된 쪼그라진 내 자신도 미웠다.
한 달정도 걸린 것 같다.
약을 먹기 시작했고, 누구보다 드라마틱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작업 목록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서 매일이 기적같고 즐겁다.
집안을 청소하고 물건을 정리하는 일을 제대로 해 본 것이 처음이었고,
매일 먹는 두통약이 점점 줄었다.
매일 약국에서 파는 수면유도제를 몇 알이나 먹고도 한 두시간을 채 못잤는데, 지금은 하루라도 잘 못 자면 몸이 천근 만근이다.
불안과 우울의 그림자가 어떤 날은 완전히 없어진 것처럼 기적같은 행복을 맛보고 있다.
이 모든 효과들이 사라질까 두려워서 기록하려 한다.
고양감과 약효가 적응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까봐 두렵다.
나의 가치관과 평생의 습관을 고치고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난관의 높이를 조금씩 높이고 싶다.
내가 먹는 약이, 내가 받는 치료가, 나의 하루 하루가 모여 나에게 도움을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