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딸은 엄마와 친구가 되지 못한다. 어머니의 그 말은 나름의 낭만이었겠지만 제 나이도 제대로 세지 못하는 아이에게 그런 말은 하면 안 됐다.
외가에 얹혀살며 술주정뱅이 외할아버지의 폭력을 날것으로 보여주면서,
아버지를 험담하고 아버지와 몇 달간 대화를 일절 하지 않으면서,
나에게 친구 같은 모녀사이를 강요하면 안 됐다.
결과적으로 나는 전형적인 정서적 부모화 아이로 자라났다.
부모화(Parentification)는 아이가 부모나 형제들에게 부모처럼 행동하도록 강요된 역할 역전(role reverse)을 말한다. 극단적인 경우, 아이는 부모의 감정적 생활이 소외되면서 발생한 공허감을 채우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의 어머니는 나를 그렇게 부모화시켰다. 나는 정서적 부모화된 아이이다. 어머니에게 친구의 역할을 요구받았고 허구한 날 싸우는 부모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싸움의 원인이 내 양육 방식이 구 할은 되었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내 정신이 좀먹은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나는 책임감을 다 하려는 아이, 어른 아이로 평가받아왔다. 의젓하고 착한 사고 안 치는 첫째 딸. 어른스러운 애.
사실 나는 내가 '부모화된 아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른스러운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기까지 했다.
내가 부모화된 아이임을 알게 된 그맘때쯤 나는 갖은 핑계를 대며 집을 나왔었다. 내 부모화 역할을 잃으면 안 되니 동물들을 키웠다.
그리고 삐걱삐걱 위태롭게 굴러가던 일상을 어찌어찌 보내던 차에 동생이 스스로를 죽이려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동생을 부모님과 분리시켜야 했다.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정신과나 심리상담에 대해서 제대로 마주했다. 동생을 입원시키고 돌아오는 버스정류장에서 혼자 앉아 울었다. 힘이 하나도 없어서 버스를 몇 개 타지 않고 보내며 나도 병들어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혼자 병원을 찾아가고 책을 읽었다.
구렁텅이 속에서 내가 있는 곳이 구렁텅이인걸 뒤늦게 알았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펼쳐본 어떤 책에서 발견한 부모화 아이라는 단어는 내 심장에 푹 박혀서 나를 하루 종일 울게 했다.
어떻게 던 잘 살아보겠다고 내 역할을 다 해오던 중이었는데, 나름 어른스럽다고 자랑스럽게 여기던 나의 모습이 불안정한 유년기의 산물인 성격일 뿐이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