뤽상부르 공원의 햇살 같은 여유

어느 가을날의 휴식

by 장서은


파리에 머무는 동안 우리에게 ‘휴식’이란 집 안이 아닌 길 위에 있었다. 딸은 엄마 아빠에게 파리의 진면목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 매일같이 우리를 이끌고 시내 여행길에 나섰다. 오늘도 든든한 현지 가이드의 뒤를 따라 파리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뤽상부르 공원(Jardin du Luxembourg)을 찾았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압도적인 풍경 앞에 잠시 말을 잃었다. 도심 한복판에 이토록 거대하고 우아한 정원이 숨 쉬고 있다니,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 파리 사람들의 일상 속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다. 하늘을 가린 거대한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시원한 그늘, 섬세하게 다듬어진 정원수와 형형색색의 꽃들, 그리고 곳곳에 놓인 의자들까지 모든 것이 공원의 품격을 말해주고 있었다. 잘 손질된 정원의 유혹을 차마 뿌리칠 수가 없어 우리는 햇살이 가장 따뜻하게 내리쬐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평온한 일상이 머문 공원의 모습


우리는 그저 말없이 앉아 공원을 바라보았다. 화창한 햇살, 파란 하늘에 떠 있는 새하얀 구름, 공원을 오가는 사람들까지 모든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마음에 들어왔다. 한참을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머물다 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걷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름다운 도시에 이렇게 예쁜 공원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살짝 부러움이 밀려왔다.


알고 보니 이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의 배경에는 한 여인의 역사가 깃들어 있었다. 1612년, 프랑스 왕비 마리 드 메디시스는 남편 앙리 4세가 암살당한 뒤 루브르를 떠나 이곳에 뤽상부르 궁전을 세우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고향의 아름다움을 옮겨온 이탈리아식 정원을 정성껏 꾸몄다고 한다. 한 시대의 비극과 새로운 시작이 맞물려 탄생한 이 정원은 수백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는 기품을 간직하고 있었다.


현재 뤽상부르 궁은 프랑스 상원 건물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 앞의 정원은 여전히 시민과 여행자 모두에게 활짝 열려있다. 생각해 보니 이곳은 단순한 쉼터가 아니었다.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사랑, 역사와 정치가 고요히 스며들어 있는 살아 있는 이야기의 정원이었다.


공원을 나서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오늘 앉았던 햇살 가득한 의자에 편안히 앉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느끼며 감상만 하리라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던 파리의 어느 가을날처럼…


파리에서 어느 가을날의 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