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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Feb 12. 2022

시련은 나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독일의 한 평범한 정신과 의사는 나치군에 의해 끌려 기차를 탔다. 1500명의 수감자가 타고 있는 기차는 종착역이 어딘지도 모른 채 밤낮을 계속해서 달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기차는 천천히 속도를 낮췄다. 잿빛 새벽의 기운에 비춘 팻말을 보고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했다. 팻말에는 그 유명한 "아우슈비츠" 적혀 있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빅터 프랭클이 실제 3년간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생활을 하며 겪은 경험을 쓴 책이다. 독일 유대인이었던 그는 나치군에 끌려가 강제수용소에서 지옥 같은 생활을 했다. 아우슈비츠의 생활은 항상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장교의 손짓 하나로 누군가는 가스실로, 누군가는 수용소로 갈 수 있었다. 언제 이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누가 선택을 받을 것인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빅터 프랭클은 강한 삶의 의지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가능하면 매일매일 면도를 하게, 자네들이 살아남고 싶다면 노동력이 있어 보이게 하는 게 유일한 방법일세. 병들고 쇠약해져 비실거리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좀 더 빨리 가스 처형실로  갈 걸세. 그러니 명심할 것은 똑바로 서서 걷도록 하는 걸세 P45


하루하루 환경에 순응하며  희망을 잃어가는 아우슈비츠 수감자들과 다르게 그는 매일 면도를 하며 삶의 의지를 되새겼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겪은 시련에 대해 남다른 태도를 가졌다. 그에게 있어 시련은 왜 하필 나에게 주어진 망할 놈의 고통이 아니었다.  나에게만 주어진 유일한 과제이자 독자적인 기회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그 시련을 자신의 과제,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P 477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P 477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P 477


빅터 프랭클은 시련을 대하는 능동적인 태도를 강조한다. 시련을 그대로 받아들여 잠식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태도로 어떻게 하면 그 시련을 잘 극복할 수 있는지를 강조한다. 즉, 우리는 시련을 당했지만 그 시련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799


도스토옙스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게 되는 것이다. P 414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 낼 수 있다. P 490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법정스님이 말씀하셨듯 , 인생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나중에 행복의 씨앗이 되고, 지금 행복해 보이지만 고통의 씨앗이 따른다. 이렇듯 고통과 행복은 인생에서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하는 SET 인 것 같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P 419


어차피 겪을 피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이라면 빅터 프랭클처럼 능동적인 자세로 맞이해보는 게 어떨까? 떠오르기도 힘들었을 수용소의 생활을 책으로 써낸 빅터 프랭클의 글은 어느 유명한 자기 계발서 보다도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아우슈비츠 감옥 생활은 어떤 고통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최악의 시련일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시련을 당당히 마주한 그를 보며, 나 역시 현재의 시련과 고통을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그 시련을 대할 때 무겁고 전투적인 마음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닌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극복해야 한다고 한다. 유머집을 많이 읽어봐야겠다..

 

유머 감각을 키우고 사물을 유머러스하게 보려는 시도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면서 터득한 하나의 요령이다. 고통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수용소에서도 이런 삶의 기술을 실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P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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