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럽지만 하나 고백할 것이 있다. 한때 나는 신천교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신천지 피해자였다. 대학 신입생 시절, 그때의 나는 아직은 낯선 대학 동기들과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았다. 그때 우연히 학교 1층 부스에서 무료로 진행한 심리검사를 받게 됐다. 심리검사를 하면서 친해진 상담사 언니는 성경공부를 권했고 마침 성경공부에 관심 있던 때여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곧 자연스럽게 신천지에 빠지게 됐다.
당연히 처음에는 신천지인 줄 몰랐다. 하지만 들을수록 강의 내용은 특정 인물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강조했고 교리가 점점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4달 만에 나오게 됐다.
신천지에서 나오는 과정은 미디어에서 보도한 것만큼 폭력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오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 교외까지 나가서 주입되어 있던 신천 지식 성경 해석을 다시 바로 잡아주는 수업을 들어야 했다.(그때 일주일에 주 4회 3시간씩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또 신천지 인들에게 다른 일반 사람들은 데리고 나가지 말라고 협박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 큰 대수였나 싶지만 그 당시 20살 어린 나이였던 내게는 우리 집 앞까지 찾아온 그들의 집착이 무서웠다.
그때 이후로 나는 성경책과 멀어졌다. 사실 성경책은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을 안다. 온전히 거짓말하고 성경책을 오용한 신천지인들의 잘 못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성경책을 보는 게 참 힘들었다. 이 책 한 권으로 수많은 해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버거웠다. 그즈음에 지인의 소개로 법정스님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나는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종교가 뭐예요?라고 물어보면 그냥 "무교"라고 한다. 나는 소위 "신실한 불자"는 아니다. 불교를 종교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하나의 수행법으로 받아들인다. 사실 그렇다. 성경책을 잘못 오용하는 종교인들이 있는 것처럼 불교를 오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부처님을 유일신으로 믿고 맹목적으로 의지한다. 절을 하고 기도하면 소원을 이뤄주시는 분인 줄 안다. 하지만 아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의 길을 알려주는 스승일 뿐이다. [일기 일회]에서 법정스님도 이 부분을 강조한다.
"기억하십시오. 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자기 자신이 부처가 되는 길입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자기실현의 길이고, 형성의 길입니다. 부처는 단지 먼저 이루어진 인격일 뿐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스스로 온전한 인간에 이르는 길입니다." (일기일회 321page)
이처럼 "스승" 부처님은 우리가 삶에서 고통스러운 이유는 바로 내 머릿속에 세워놓은 "이상적인 자아" 때문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현재의 나와 내 머릿속에 세워놓은 "이상적인 자아"가 다를 때 우리는 스스로 비교하며 분별심을 만들고 나 자신을 고통 속에 빠트린다. 그러므로 고통으로 벗어나는 방법은 "이상적인 자아"를 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불교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배우는 일입니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온갖 집착에서, 작은 명예에서, 사소한 이해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자기를 텅 비울 때 모든 것이 비로소 하나가 되며, 자기를 텅 비울 때 그 어떤 것에도 대립되지 않는 지유 로운 자기 자신이 드러납니다."(일기일회 321page)
하지만 현실에서 내 머릿속 "이상적인 자아"를 버리는 것은 쉽지 않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 살게 된다. 사회는 수많은 허들들을 (대학 진학, 취업, 안정적인 직장생활, 결혼, 육아, 노후) 세워놓았고 이를 넘지 못하는 사람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나는 비슷한 또래의 주변 지인들을 비교하며 내 삶이 그들의 삶과 달라지고 뒤쳐지면 불안해한다. 그럴 때면 나는 글을 쓴다. 법정스님이 말씀하시는 "자아"를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어딘가에 순수하게 집중하고 몰입할 때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다. 내가 없는 그 무한한 공간 속에 강물처럼 끝없이 흐르는 에너지가 있다.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다고 해서 혼돈 상태가 아니다. 정신은 또렷하고 아무 번뇌 망상 없는 그 침묵 속에 강물처럼 흐르는 에너지가 있다. " (일기일회)
또한 수 없이 주변으로부터 흔들리는 삶 속에서 법정스님은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라고 말씀하신다.
때때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십시오. 자신이 겪고 있는 행복이나 불행을 남의 일처럼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행복과 불행에 휩쓸리지 않고 물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있으라고 수많은 영적 스승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자기 삶을 늘 주시하라는 뜻입니다. 자기 삶을 주시하고 있으면 고통과 불행이 따라오지 않습니다.
(일기일회 39page)
객관적인 삶을 강조하기 위해 불교에서는 삶을 이렇게 비유한다. 삶에서 불행과 행복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고통이라고 느끼는 순간이 한편으로 또 다른 성공의 기회가 될 수 있고 반대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반대로 고통의 씨앗일 수 있다. 그러므로 불행과 행복을 분별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겨 삶 자체로 받아들이면 내려놓을 수 있다.
"삶 그 자체가 되면 불행과 행복의 분별이 사라집니다. 삶 자체가 되어 살아가는 일, 그것이 불행과 행복을 피하는 길입니다. 번뇌 밖에 따로 깨달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번뇌와 보리 (불교 최고의 이상인 궁극의 깨달음)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경전의 말씀이 있듯이, 그 둘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의 관계입니다."
(일기일회 34page)
요즘 나는 이 말씀이 크게 와 닿는다. 현재 나는 회사를 나와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갑작스러운 부서 폐지로 인해 부서가 곧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유예기간 4달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가야 할지 참 막막하다. 아직도 그 막막함은 진행 중이지만 스님의 말씀처럼 객관적으로 내 삶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현재 상황을 바라보며 깨달은 것은 지금 고통의 이유는 집착 때문이었다. 이 회사를 다니며 내가 원하는 워라벨 좋은 외국계 회사에 다녀서 행복했다. 하지만 그때 느꼈던 행복이 고통의 씨앗으로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행복에 대한 집착이 강할수록 고통은 커져간다. 그래서 불행과 행복을 분별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 느끼는 이 불행이 반대로 행복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지금의 퇴사는 더 잘 맞는 회사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생각한다.
대신 유예 기간 동안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살지는 않을 것이다. 법정스님은 인생은 "일기일회"라고 강조한다.
" 자신에게 주어진 한때를 아무렇게나 보내서는 안 됩니다. 그 한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번 겨울칠 안거 기간에는 먼저 무의미한 걱정 근심에서 벗어나십시오. 현재를 충만하게 살면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가지고 불행해하거나 오지도 않은 불확실한 미래를 가지고 미리 걱정 근심을 앞당기니까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
"지금 이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야 합니다. 순간순간의 연장이 한 생애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이 즐거움만으로 이루어진 곳이 아니기에 나 자신만이라도 즐거움을 만들며 살아야 합니다. 즐겁게 살되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됩니다. 각자 자기 삶의 질서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
(일기일회 313 page)
남은 기간 동안 다음 회사를 위한 스펙을 더 쌓으며 준비할 것이다. 화려한 이직을 위해 지금을 도약의 기회로 삼을 것이다. 스님 말씀대로 "일기일회" 지금의 하루는 평생 단 한 번뿐인 기회이기 때문이다. :)
마지막으로 종교 얘기를 다룬 만큼 이 글을 쓰는 동안 많은 시간 고민했다. 혹여 성경책과 연관된 모든 종교를 비난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법정스님의 말처럼 모든 종교의 목적은 같다고 생각한다.
"어느 절과 교회에 나가고 어느 종파에 속해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전체가 아니라 한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불교이든 기독교이든 회교이든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전체가 아닌 부분에서는 항시 대립과 갈등이 생겨납니다. 내 절 네 절 따지고, 내 종교 네 종교 따집니다. 진정한 신앙의 세계는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고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하느님을 의지했든 부처님을 의지했든 혹은 예언자를 의지했든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일기일회 318 page)